, 그리고 아이스 바닐라 라테
오늘은 성당 입구부터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성전 마당을 가득 채운 국화들. 성모님을 축복하는 묵주기도 성월을 맞아 국화축제를 소소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꽃이 한가득이지만 답답하거나 거슬리지 않고, 우리 본당과 참 잘 어울린다는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니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라는 김혜자 님의 책 제목은 이 분위기에서만큼은 맞지 않는 듯합니다. 이왕 맞을 거면 꽃으로 맞는 게 행복할 것 같습니다. 고백하고 성찰할 일이 참 많은 요즘인데, 이왕이면 꽃과 같은 말씀으로 꾸중도 듣고, 위로받고 돌보아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꽃이요, 성전이었습니다.
국화의 꽃말은 색에 따라 다양한데, 사랑, 헌신, 열정, 기쁨, 행복, 영성, 정직, 쾌유를 바라는 마음, 등이 그중 일부이니 국화는 꽃말 욕심쟁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국화는 생김이나 의미나 성전에 딱 어울리는 꽃입니다.
"평화를 빕니다"
저는 미사 중 '평화의 인사'부분이 가장 좋습니다. 모르던 교우들과도 이 시간에는 서로의 평화를 진심으로 빌며 눈을 마주하고 인사합니다. 평화는 사람 사이, 또는 단체나 국가 사이의 화목하고 평안한 상태를 뜻하는데, ‘내면의 평화’ 같이 마음에도 쓸 수 있습니다. 복잡한 세상, 번잡한 마음에 평화란 사실 쉽지 않으므로, 이렇게 주로 기도하며 바라고 추구하는 노력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도 그렇게 나와 타인의 평화를 기원하며 앞과 뒤, 양 옆, 그리고 저 멀리 있는 교우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면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예전에는 어색함의 멋쩍은 미소였는데, 요즘엔 그냥 표정이 그렇게 됩니다. 처음 교회를 찾았을 때, 이 평화의 인사가 무척 어색해 다른 분들과 눈을 잘 마주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합니다. 미사 중 어수선하게 기도문이며 통상 미사문을 찾지 않아도 흐름에 따라 일어서고 앉고, 중간중간 조금 틀리더라도 기도도 할 수 있게 되었듯이 시간이 지나니 인사도 자연스러워진 느낌입니다.
오늘 교리공부 시간과 미사 공통의 주제인 '평화'는 요즘 일상에서 자주 되뇌는 말이기도 합니다.
마음의 평화를 찾게 하소서, 그이의 평화를 빕니다
아직도 문득문득 미운 마음이나 집착의 속내가 들켜지면 바로 평화라는 바람을 고백함으로써 마음을 단정히 합니다. 평화를 위한 나름의 '마음 돌봄' 방법입니다.
성사
오늘은 또, 일곱 가지 성사에 대해 배웠습니다.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님에 의해 생겨났고,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성품성사, 혼인성사의 종류가 있습니다. 이 중 고해성사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는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성사로 꼽힙니다. 고해를 통해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일단 용기를 내야 합니다. 고해를 하면 사제는 보속(補贖, 라틴어: Satisfactio)을 내려주는데, 이는 실천하고 반성하는 일종의 죄에 대한 대가를 의미합니다. 유념할 점은, 고해를 하는 것이 죄를 씻는 시작일지 몰라도 죄로부터 완전한 해방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참회와 반성의 시작일 뿐이며,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스스로 하는 노력과 함께 대상이 있다면 진심 어린 사죄가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죄는 마음의 병이며, 사제는 하느님을 대신해 고해자의 마음을 돌보며 치유와 용서를 전합니다.
교리를 배우며, 문득 저도 고해를 통해 죄로부터 벗어나 평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죄를 온통 드러내 고백하고, 보속을 받고, 그로부터 해방되고, 더는 나쁜 마음과 말과 행위로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는 이 모든 과정이 솔직히 조금 두렵기도 합니다. 고해성사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신비로운 절차라는 기대는 있습니다. 마음의 평화, 그로부터 끼칠 선한 영향력, 그리고 나와 나를 둘러싼 모두의 평화를 가슴 벅차게 원하기 때문입니다.
아침부터 눈은 즐겁게, 마음은 평화롭게 돌보아준 성당 한가득 피어있던 국화와, 교리시간에 배운 성사들, 미사시간의 강론,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공유하는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며 마신 커피는 '바닐라 아이스 라테'입니다. 주로 글을 쓰는 공간은 성당에서 멀지 않은 카페인데, 오늘이 이 카페가 이곳에서 문을 여는 마지막 날이라고 합니다.
쿠즈(Khoose)는 석촌동에 위치한 작은 카페입니다. 작년 가을쯤, 방황의 시간에 발견해 1년 동안 자주 들러 글, 꿈, 인연을 짓고 엮을 수 있었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공간에서, 꽃을 닮은 예쁜 것들을 키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제게는 성당과 의미의 결이 같습니다.
이 카페는 한동안 준비기간을 거쳐 근처 다른 곳에서 문을 연다고 합니다. 어디가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약도 아직은 없습니다. 그래서 마치 오늘이 정말 마지막 날일까 싶어 아쉬운 마음에, '무슨 커피를 안 마셔봤지' 하며 메뉴를 훑어봤습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메뉴를 다 마셔봤고 '아이스 바닐라 라테'만 평소 선호하지 않아 딱히 마신 기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했고, 특별한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자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코 10,21)
재물이든 사람이든, 놓아야 할 때 놓지 못하면 집착의 굴레 속에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삶의 사건들에 지나친 의미부여를 하지 않기로 하고 나서는 평화에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아직은 그저 '느낌'일 뿐입니다) 선택의 기로에서도, 너무 많은 생각이나 의미부여 보다는 심플한 선택이 옳은 결과가 되기도 합니다. 옳은 결과가 별것인가요? 후회하지 않고, 지금 이 시간 이 장면에 어색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발을 누가 잡아끌듯 해 쓱 들어가게 된 성당이나, 골목을 헤매다 목이 말라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많은 가치 있는 것들을 이룬 베이스캠프와 같은 이 카페가 그 증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