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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Sep 29. 2024

가을바람의 바람(hope)

, 그리고 아이스 화이트초콜릿 모카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일요일 아침 풍경은 이랬습니다. 전날 과음한 술로 이미 깨어 버린 잠에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몸을 일으키지 못하다가, 부스스한 머리로 겨우 일어나 씻고 편한 복장으로 카페로 향합니다. 나태하고 무기력한 휴일이라도 매주 루틴이었던 글은 써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이전, 아직 운동에 열정이 있을 때에는 새벽 일찍 자전거를 타거나 등산화를 신고 집을 나서곤 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머리를 만지고 옷을 고르는데 시간을 많이 쓰지 않았습니다. 최근 일요일 아침과는 다소 다른 모습입니다. 요즘에는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씻고, 머리를 빗어 넘기며 드라이어로 고정을 합니다. 옷은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은,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신경 써서 골라 입습니다. 성당의 교중미사에 가기 위한 나름대로 정성을 들이는 과정입니다.


요즘, 가을 하늘이 더없이 드높고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날씨입니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이마와 등으로 흐르던 불쾌한 여름이 지나고, (제발 빨리 끝나지 않기만을 바라는) 쾌적하고 좋은 계절이 된 것입니다. 딱 1년 전, 제가 평소 자꾸 눈길이 가던 '빨간 벽돌의 작은 성당'에 용기 내어 들어가 본 그날도 가을이었습니다. 지금의 예비 신자 과정이 시작된 소중한 인연의 날이었지요. 그 가을은 너무도 활동하기 좋은 외기(外氣) 임에도 한 없이 스스로를 내면에 가둬 움츠리게 한 계절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미완의 마음을 정성과 열정으로 용기 내어 전했음에도 닿지 않았던 계절, 받은 마음보다 준 사랑이 적어 형언하기 힘든 마음의 결핍을 고통으로 느끼던 날들이었습니다.


나이 앞자리가 바뀌기 전, 마지막 남은 어리석음이란 잉여물을 활활 태워 없애려고 했으나, 결과적으로 시커멓고 잘 지워지지 않는 미련이란 재만 잔뜩 묻힌 꼴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런 몰골로 정처 없이 걷다가 만나게 된 붉은 벽돌의 성당. 사실 뭔가 큰 기대를 하고 들어선 문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자주 낮밤으로 그분을 부르는 삶이 되었습니다.




1.


우리 성당으로 가는 길은 수변 도로입니다. 한강의 지천인 탄천을 따라가다 보면 금세 이르게 됩니다. 저는 그 길을 참 좋아합니다. 나무도 무성하고, 길은 좁지만 정체는 거의 없습니다. 그 길에서, 차창 밖의 파란 하늘을 보며 가다가 문득 최근 하게 된 '기도'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떠오르는 대로, 메모장에 글을 적었습니다.


예전에는 기도의 의미를 잘 몰랐다. 여전히 그 본의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최근에 나 스스로 보다는 타인을 위한 기도를 하다 보니, 그 되새겨지는 과정에서 나 또한 마음이 돌보아지는 느낌이 든다. 가톨릭에서 기도는 무언가를 들어달라며 하는 부탁 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불교의 발원과 비슷한 개념일까?


그리고 교리 공부 시간, 오늘 할 공부 주제가 '기도'임을 알았습니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예습은 딱히 하지 않아서 책을 펼쳐본 적도 없었는데, 아침에 집을 나서며 했던 내적 탐구와 오늘 배울 주제가 같았던 겁니다. (앞선 글에서도 '이제는 어떤 현상에 대해 과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했는데, 이런 개연은 여전히 조금 신기하긴 합니다.)


아무튼, 예비 신자가 되고 나서 저는 자주 그 단어를 듣습니다. 신부님의 "기도합시다"로 시작하는 시작 기도와, 공동체 모두가 염원하는 보편 지향 기도, 영성체를 모시며 하는 기도, 주요 기도문과 더불어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잘하지 않는 식사 전 후 기도까지, 기도는 가톨릭 신자로서 가장 많이 접하는 절차이자 표현, 의식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기도의 개념을 불교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불교 재단 대학교를 다녔고, 집도 할머니 대부터 불교와 더 가까운 문화였습니다. 의식의 기억이 흐릿한 어린 시절에도, 할머니께서 알 수 없는 말들로 가득한 불교 기도문을 펼치고 염주를 엄지로 굴리며 외시던 기도는 선명히 기억합니다. 할머니께서는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 100일 기도라는 것을 하셨고, 그 아픈 무릎에도 108배 치성을 드리시곤 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제 어머니께서도 당신 자녀의 수능일은 물론, 젊은 주제에 큰 병치레까지 하게 된 못난 아들을 위해 새벽 기도를 하러 절에 가시곤 했습니다. 모두 기도라는 단어를 접하면 떠오르는 존경과 감사의 장면들입니다.


교리 공부 시간에는 기도를 간절함, 정성, 그리고 '대화'로 설명했습니다. 기도는 막연히 달이나 생일 케이크 앞에서 비는 소원과 같은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주님과 내가 소통하는 일종의 대화법이고, 간절한 마음의 정성스러운 표현이고,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내면 성찰의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불교의 '발원'과도 비슷해 보였습니다. 불교에서는 기도와 발원을 구분 짓습니다. 발원은 '스스로 해내겠다는 다짐'으로 기원이나 기도와는 다르다고 이야기합니다. 가톨릭에서 기도는 이 모든 의미를 포괄한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당 챕터의 공부를 마무리하며, 봉사자께서 우리에게 '간절한 기도의 경험'을 물었습니다. 저는 최근 하는 기도의 주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요즘 미움에 대한 기도를 주로 해요. 내 마음이 편하자고 시작한 기도인데, 결국 그 원인이 누군가에 대한 미움에 있는 것 같아서 더는 미워하지 않고, 그이도 저도 평안과 평화의 길로 이끌어주십사 기도해요"


그러자 봉사자께서는 "아주 중요한 기도를 하고 있다"며 공감해 주었습니다.


기도문은 외우기 쉽지 않아 짧은 것부터 외우는 중입니다. 주요 기도문이라는, 그 쓰임의 빈도와 의미의 중요도에 따라 별도로 분류한 그야말로 중요한 기도문들은 미사 과정 곳곳에 등장하므로 벌써 수개월간 주일에 참여하며 익숙해졌습니다. 여전히 어려운 것은 '자유 주제 기도'입니다. 스스로 바라는 것을 편하게 말하면 된다고 하는데도, 그게 참 쉽지 않았던 첫 기도의 기억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혼자 있을 때, 종종 기도라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두 손을 합장하고, 눈을 감고, 지금 내 마음에 떠오르는 장면이나 단어들을 주어, 동사, 관계사, 목적어로 조합해 '~ 해 주소서'로 끝나는 문장들을 천천히 발음합니다. 내용은 그리 거창한 것이 없습니다. 그 첫 시작은 어떤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밤, 너무 마음이 번잡하고 도저히 끊을 수 없는 불쾌한 생각의 이어짐에 저도 모르게 성호경을 긋고 두 손을 맞잡고 눈을 감았습니다. 정말로 그냥 자연스럽게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폭풍에, 잠시 몸을 피해 숨을 곳을 찾아 들어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거센 파도에 기수를 틀어, 그 속으로 들어가려 했던 것일까요? 성호경을 긋고 시작한 기도에서 제 입에서 나온 말과 표현들은, 누가 시키지 않고 저 스스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했던 '최초의 기도'였습니다. 어딘가에 팔이 부딪혀 아프니 호호 불어 통증을 달래는 임시방편 같기도 했고, 시끄러운 소음이 거슬려 그 자리를 피하려는 행위와도 비슷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기도는 제 삶에 들어왔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저의 마음에 미움보다는 그가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을 심어 주시고, 그의 마음에도 미움보다는 이해와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님을 통해 기도합니다.


(조금 다듬긴 했습니다만,) 그날의 기도입니다. 이 모호하고 짧은 기도는 다음 날 조금 더 구체적으로 했습니다.


주여, 여전히 많이 어색하지만 기도 합니다. 저는 지난 시간 자존심과 이기심을 내세우고 아무런 말과 행동으로 저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이 어쩌면 너무도 마땅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저 스스로 평안만을 바라고, 그런 마음으로 또 다른 이를 삶에 들여 같은 과오를 반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느님 아버지, 부디 제가 저의 과오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오래도록 속죄하며 살게 하시어 그가 평화롭도록 보살피시고, 저 또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아멘.


기도가 끝나고도 한동안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음영이 짙었던 내적 갈등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을 어렴풋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눈을 뜨고 마주 본 장면은 기도 전과 후가 다름이 없었지만 마음만은 이전보다 조금은 편안해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확실치는 않으나,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뜰 때에는 항상 그 무렵 마치 악몽과 같이 반복되던 꿈속 장면이 아침 기분에 영향을 미칠 만큼 또렷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일상에서는 어떤 사건에 대한 마음의 여파가 문득문득 미움의 불씨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체로는 미움의 대상보다는 스스로를 더 돌아보게 되고, 그로부터 매일매일 조금씩 낫는 느낌입니다.


어느 날은 타인을 위한 기도도 해 보았습니다. 개신교 신자인 친구로부터 기도를 부탁받았는데, "너희 교우들에게 부탁하지 그래"라고 웃으며 말하자, '아직은 새내기라 기도빨(?)이 잘 받을 것'이라나요? 웃자고 한 소리였겠지만, 그래도 그날은 친구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진지하게 해 주었습니다.


성당 문을 나서며, 입구 오른쪽 벽에 평소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던 기도문이 그곳에 새겨진 것을 보았습니다.


...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 中


기도는 그렇게, 가을바람과 함께 마음속 바람(hope)으로 들어왔습니다.



2.


성당 전면에는 '하느님의 제단'이 있습니다. 제단에는 신부님이 올라가시어 축복하고 강론하십니다. 신부님 이외에, 정체가 궁금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미사의 과정에 신부님을 보좌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하얀 복사복을 입은 아이 둘은 미사 전 촛불을 밝히고, 제단을 향해 인사하고, 신부님을 곁에서 돕고, 중요한 예식에 종을 칩니다. 그들을 복사(服事), 즉 '따르는 이'라 하고, 그들의 공동체를 복사단이라고 합니다.


오늘 미사에서는 새 복사단 위촉식과 발대식이 있었습니다. 복사단원들과 부모님들이, 본당 중앙에 자리하고 간략하나마 예식을 진행했습니다. '저 아이들은 누구인가' 그 정체가 늘 궁금했는데, 드디어 알게 된 날입니다. 오늘 주임 신부님께서는 강론 시간에 복사단의 책무와 의미와 더불어 신부님의 사제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신부님은 6살 때부터 복사단이 되어 신부님을 보좌했다고 합니다. 미사 중간에 졸기도 하여, 성체를 모시는 중요한 순간에 쳐야 할 종을 치지 않아 신부님이 툭툭 건드려 깨운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고단하고 재미없고,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당을 찾아 신앙의 길을 걷는 모든 이들과 그들을 인도하는 사제를 돕는 복사 일은 참 중요한 의미라고 설명하십니다. 신부님의 이야기는 당신의 사제가 된 과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제를 위한 수련 과정에 함께하는 예비 사제는 모두 제각각 다른 이유로 그 길을 걷는데, 대학교 시절 같이 공부를 시작했어도 실제 사제가 되는 이는 10명 중 1-2명 꼴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어려운 여정인 것입니다. 공부를 잘해서 '쟤는 분명 사제가 될 거야'라고 예상했지만 다른 길을 가기도, 영 소질이 없어 보여 '쟤는 분명 포기할 거야'한 사제가 결국 안수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밖에, 그 결과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강론을 들으며 저는 그 '과정'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를 재정의 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도 과정이고, 미사도 과정이고, 지금 글을 쓰는 것도 독자와의 만남과 공감을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요. 그러니 결과는 손에 넣을 수 없고, 결과까지 손에 쥐려 하는 것은 오만이고 자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좋아하던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거기서 참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김대리는 호기심 많은 신입 사원 장그래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과정이 전부야. 결과는 우리 손안에 있는 게 아냐. 결과까지 손아귀에 넣으려다 보니까 박 과장이 그런 무리수를 두는 거라고"


박 과장은 곧 인간 군상입니다. 신부님 말씀마따나 '반성하고 뉘우칠 줄 모르고, 미안해하지 않고 늘 주위를 탓하기만 하는 오만한 인간'의 전형입니다.


그런데 모세라는 사람은 매우 겸손하였다.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하였다. (민수기 12.3)


미사를 마치고 성당을 나서며 무거웠던 짐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인연도 곧 결과라면, 그간 그걸 억지로 내 것으로 하고자 아등바등하다 보니 무리수가 되었던 과정상의 많은 과오를 직시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지난날들조차 모두 과정에 불과했으니, 이제는 결코 지고 갈 수 없는 무거운 돌을 좀 내려놓고, 정성으로 하는 기도와 행동으로 하는 실천만을 디딤돌 삼아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리라, 다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성당을 향하던 아침과는 또 다른, 조금 더 산뜻하고 따뜻한 가을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기도에 대한 글을 쓰기 전 휘핑크림을 듬뿍 올린 아이스 화이트모카 라떼를 주문했습니다. 보통은 단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렇게 한 번씩 당길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몸 생각을 조금 하느라 시럽은 하나 적게, 우유는 귀리우유로 변경했습니다. 라면에 콩나물과 계란을 넣으며 '영향의 균형은 맞췄군'이라고, 자기 합리화하는 것과 같은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기도도 자기 합리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비판했습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닐 때에는, 실컷 잘못을 해 놓고도 그저 맘 편하자고 하는 기도는 비겁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생각이 두 가지 이유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는 생각보다 그리 간단하지 않은 포괄적이고 미묘하며 신비로운 행위이자 의미라는 것, 둘째는, 어차피 사람은 실컷 잘못을 하고도 스스로 편하든 타인을 위하든 기도 같은 정화의 과정조차 없이 얼버무리고 회피하며 정신승리를 해버리고 만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그 정성이라도 들여 그와 나와 우리를 둘러싼 모두의 평화를 비는 것이 기도를 안 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스 화이트모카 라떼에 시럽을 덜고 귀리우유로 변경하면, 원래의 그것을 온전히 쭈욱 들이키는 것보다는 분명 몸에 좋을 일인 것처럼요. (휘핑크림은 뺐어야 했나 잠시 후회를 하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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