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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Oct 20. 2024

실천의 믿음

, 그리고 산 정상에서 마신 드립 커피

"팀장님은 성당 얘기를 할 때 되게 편해 보여요"


주말을 주제로 이야기하다가 한 동료가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말을 말하자면 성당에서 한 교리 공부며 미사의 강론, 또는 함께 공부하는 교우들의 삶의 이야기가 떠올라 그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확실히 요즘 성당은 제게 편안한 공간이자 여러 잡념들로부터의 해방처입니다. 그러니 그에 대한 이야기가 편한 것은 사실입니다. 종교는 사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하기 적절하지 않은 주제일지 모르지만, 웬일인지 친한 이 동료들과는 그 이야기가 전혀 껄끄럽지 않습니다.


동료 말마따나 성당 이야기를 편하게 하게 된 저는 사실 아직도 아주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없습니다. 요즘도 매주 교리 공부를 목적으로 성당에 가기는 하지만 여전히 절차상 관념상 많은 부분이 미숙합니다. (외형으로만)다 큰 어른이 그 누구의 영향도 없이 새로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어렵다고들 합니다. 자발적으로 시작한 종교 생활이니 더 성실하고 열심히 믿음을 추구해야 마땅하겠지만, 아직 그저 그 공간의 분위기나 신부님이나 수녀님의 따스한 눈빛이 좋기만 한 것은 철모르는 새내기, 예비신자이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성당에 처음 가게된 것을 이야기하자면, 그 계기는 너무 자연스러웠지만 아마도 동기는 꽤 복잡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감정적 위기를 겪을 때, 이를테면 이별이나 소외됨, 배신, 자괴감 등이 밀려올 때 스스로를 점점 더 암흑의 동굴로 밀어 넣고 문을 걸어 잠그기도 하는데, 이럴 때 정말 위험해지지 않으려면 절이든 교회든, 아니면 단풍 든 산이든 정신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장소에 들러 머무는 것이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도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요즘도 문득미움이나 화가 마음에서 고개를 들면 성당 아닌 곳에서도 '워-워' 하듯 성호경을 작게 긋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마치 성당 안에 있듯, 곧 일시적이나마 안정됩니다. 간단하더라도 기도는 제게 효과 좋은 천연의 심신 안정제입니다.


하나의 의무처럼 여겨진 '성당을 간다'는 행위는 제게 그렇게 일상에서도, 또는 위기의 순간에도 그것을 잠시나마 잊고 원래 나의 (멀쩡했던) 존재를 생각해 보는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 공간이 편하고, 공간이나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편하고, 하느님을 부르는 것이 편해졌습니다. 모두 첫 시작 이후 매주 꾸준히 하던 실천의 과실입니다.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오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야고보서 2:14)


얼마 전 있었던 미사에서 신부님이 해 주신 '믿음'과 '실천'에 대한 강론이 생각납니다. 야고보서에서는 '누군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실천이 없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배드로가 그리스도를 '실천자'아닌 '예언자'정도로 오해하는 장면에서도 나오는데, 복음에서는 위정자들의 통치 속에서 박해를 받다가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심으로써 사람들에게 참된 진리를 전한 것이 그리스도의 실천에 기반한 믿음이었고 이는 제자들의 믿음과 차원이 다른 고귀함이라 전합니다.


우리는 자주 소중한 사람에게 말로 상처를 주면서 상대가 나의 속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모질게 행동하는 것에 서운해하고, 어려운 이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하지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은 채 잊고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성당 이야기를 편하게 하면서도, 피곤한 주말 아침엔 하루쯤 성당은 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도 합니다. 그곳에 향하지 않고 그것을 추구한다고 이야기한다면 실천 없는 믿음이 아닐까요? 양껏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거나, 부모님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면서 막상 전화는 하지 않는 실천 없는 믿음은 또한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렇습니다, 스스로의 회고 입니다)




양주에 위치한 불곡산. '작은 설악산'이라 불리는 이 산은 홀로 우뚝 서 있어 날이 좋으면 멋진 일출을, 날이 좋지 않으면 운해와 그 사이 불그스름하게 얼굴을 내미는 첫해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날 산행은 조금 무리해서라도 산행의 정점인 정상 봉우리에서 일출을 보려고 3시 무렵 일어나 준비하고 5시를 막 넘겨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산행은 처음부터 그리 수월하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전 비가 그친 산길은 미끄러웠고, 하늘에는 아직 구름이 가득해 칠흑 같은 어둠이 의지를 억눌렀습니다. 하지만 일행은 꺾이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갔습니다. 저벅, 저벅. 앞 뒷사람이 흙과 돌을 밟는 소리를 들으며, '아 이 길이 맞는구나' 혹은 '일행이 잘 오고 있구나'하며 안심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르다 보니 어느새 날이 조금씩 밝아왔고, 하늘엔 구름이 많이 걷혀 있었습니다.


한시간 남짓 열심히 올라 정상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해는 아직이지만 서로가 잘 보일 정도로 주위는 밝았습니다. 모두 해를 바라던 그때, 우리는 다른 이의 배려 깊은 행동으로 해가 없음에도 먼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행 중 한 명이 가방에서 커다란 보온병 세 개를 꺼냈습니다. 하나에는 직접 끓여 만든 어묵이 담겨 있었고, 다른 두 개에는 뜨거운 물이 가득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행은 커피 드리퍼와 커피 가루, 거름종이를 꺼내서 조용히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들고, 거듭 감탄하는 것 말고는 딱히 도울 수도 없는 일행의 정성과 배려였습니다. 그날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드립 커피를 마시며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었습니다.


내 짐 무겁게 해 가며 남을 위해 준비한 커피는 누군가의 정성이자 실천이었고, 마치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보이기 시작한 해가 더한 감동은 축복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니 오늘의 실천은,


믿음으로 정상에 오르고, 감동의 커피를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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