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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Oct 27. 2024

마주할 용기

, 그리고 non-coffee day

이 글은 일상에서 되새긴 성경이나 미사 강론을 이야기하므로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사방이 어두운 시간, 주일의 가장 이른 미사를 위해 성당에 갔습니다. 국화축제가 한창인 우리 성당 앞마당에 오늘은 국화 말고도 많은 이들의 웃음꽃이 가득 담긴 사진 액자가 이젤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사진에 담긴 사람들, 그리고 우리 성당 추억의 모습들은 비록 어두움 속에 있어도 주위를 환히 밝히는 듯했습니다. 마치 기억 저편의 어둠으로 서서히 사라져 잊힌 듯해도 지금의 나를 오롯이 비추는 어느 시절의 좋은 추억들과도 같았습니다. 미사 시간에 맞추려 일일이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교리 공부까지 마치고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둘러보리라 하고 서둘러 본당으로 갔습니다.


새벽 미사. 성당의 가장 큰 미사는 교중 미사이고, 그 이전에 하는 미사는 새벽 미사입니다. 우리 성당 새벽 미사는 토요일을 제외한 매일 있는데, 오늘은 낮 일정이 있어 교중 미사 참여가 어려워 새벽 미사를 갔습니다. 사실 그 시간에 미사를 본당에서 하는 것이 맞는지,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은 많은지, 나 말고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지 등,... 아직 예비 신자 아니랄까 봐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잠깐 했는데, 역시나 쓸데없었습니다. 성당에 가니 자리에 꽤 많은 신자분들이 앉아서 미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직 세상의 대부분이 눈을 뜨지 않은 시간, 먼저 성수 앞에서 기도하고, 성전에 인사하고, 본당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부지런함에 동참했습니다. 그리고,


"형제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 죄를 반성합시다"


구원을 받으려면 스스로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신부님의 말씀이 오늘따라 더 와닿았습니다. 오늘의 강론 때문이었습니다.



마주할 용기


마르코에서는 용기를 내어 예수님께 자비를 구한 한 눈먼 거지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군중과 더불어 지날 때 멀리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칩니다. 주위의 만류에도 그는 더 큰 소리로 예수님께 자비를 구합니다. 예수님은 그를 부르시더니 자초지종을 물으십니다. 딱한 그의 사정을 들은 예수님은, 그에게 구원을 내리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마르코 10:56)


구원의 사례가 전하는 교훈은 믿음에 의한 용기입니다. 예수님은, 몰매를 맞을 위험을 무릅쓰고 대중에게 둘러싸인 자신에게 구원을 빌며 당당히 앞에선 이를 가엾게 여겨 그의 상처 입고 아픈 영혼을 돌보아 주십니다. 그 이유는, 신분 고하를 따지고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들보다 눈먼 거지의 믿음이 더 귀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자비를 얻을 자격은 신분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하여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7:23)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은 깊은 후회를 남길 것 같아 용기를 내어 그의 마음의 문을 두드렸고, 결국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믿고, 자신을 믿고, 눈앞의 현실을 마주한 채 마치 행진하듯 당당하게 나아가지 못한 이는, 결국 구하되 받지도, 두드리되 열지도, 찾되 발견하지도 못했습니다. 이처럼 믿음 없는 용기는 반 쪽 짜리라 한 사람의 마음도 얻지 못하는데, 하물며 그 큰 구원이요 자비겠습니까.


너무도 떠올리기 싫은 기억조차도 당당히 마주할 수 있어야, 그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이라고 했던 한 친구의 말이 떠오릅니다.


성지 순례


얼마 전에는 새 신자가 되기 위해 꼭 해야 하는 '성지 순례'를 했습니다. 명동 성당, 절두산 성지, 새남터 성지를 차례로 다니며 참배하고, 묵상하고, 기도했습니다. 대체로 천주교가 이 땅에 없던 시절부터, 그것을 구하는 이들을 위해 형언하기 힘든 방식의 희생을 치러야 했던 성인들을 기리는 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힘든 시기에도 적어도 우리가 마음의 도피처인 소도 하나쯤은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종교라는 기반과 성당이라는 공간, 사제며 교우들까지 신앙적 풍요 속에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기꺼이 희생을 무릅쓴 성인들 덕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인들이 이 땅에 있었음은 현재의 영광이며, 그들을 잊지 않음은 후세로 그 영광을 전하는 우리들 최소한의 노력입니다. 언젠가 다시 시간을 내어 성지에서 좀 더 오래 머물며 사색의 시간을 갖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성당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려 했는데, 봉사자분 혼자 계신 데다가 오늘따라 주문이 밀려 구하되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 성당 커피 맛있는데, 아쉬우니 다음을 기약하며 오늘은, non-coffe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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