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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치 미학

by Sir Lem

정해진 일과 없이 살았던 세월의 합이 길다.

몇 년을 내리 살기도 했고, 조각의 삶도 여러 차례였다.

밤낮 구분 없이 지냈던 나날들.

끼니는 허기가 부를 때 챙겼고, 양치는 끼니의 뒤를 이었다.

끼니와 끼니 사이에는 커피가 있었고, 담배는 함께였고, 과자로 부족해 사탕도 있었으며, 긴 잠도 있었다.

거울은 괜찮다 말했지만,

숨어 지낸 충치는 비웃었다.


어제 새벽, 충치가 깨웠다.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날 무척 아프게 했다.

진통제 사러 편의점으로 다.

누구는 내게 '설사가 급했을 때 화장실로 뛰어갔다' 말하더라.

거짓말이다.

전성기의 설사와 충치는 인간의 육체를 지배한다.

게다가, 그들의 간헐적 세력 과시는 전력질주는커녕 걸음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니 가다 서다의 반복은 필연적이다.

사자마자 물 없이 한 알 삼켰다.

'1~2정'이라더라.

한 알 더 삼켰다.

고속도로 휴게소인양 목구멍 벽에 붙어 쉬었다 가려는 녀석들.

침을 모아 삼켜도 게으름은 여전하다.

하여간 요즘 애들은 말을 잘 안 듣는다.

그렇게 어른들의 속을 썩이고, 내 피를 말린다.


난 여전히 아프다.


방으로 돌아와 물을 찾았다.

가진 액체라고는 커피와 탄산음료가 전부다.

내 이 자식들을 변기의 강한 물살과도 같이,

30년 전 손톱으로 꼬집던 동아리 여자 선배와 같이,

몰아치고 잡아 뜯고자 입 안 가득 탄산음료를 머금고, 단번에 삼켰다.


'지들이 버텨봐야'


역시 사람은 기분이 중요하다.

성취감에 휩싸여 몇 초간 고통을 잊는다.

애들 일하라고 보내놨겠다, 이제 고통은 안녕~!

교복 입고 하늘로 오르는 만화 여주인공이 떠오른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난 여전히 아프다.


인터넷을 뒤졌다.

아세트아미노펜 한 알, 이부프로펜 한 알씩 먹어야 효과가 좋단다.

역시 정보는 실행에 앞서야 한다.

이부프로펜 사러, 다시 가다 서다를 반복해 편의점에 도착했다.

없단다.

한편으론 다행이다.

아세트아미노펜 두 알 먹었으니, 이부프로펜 두 알 먹어야 할지, 한 알 먹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다시 인터넷을 뒤졌다.

세 번째, 네 번째 손가락 사이를 아프게 지압하란다.


난 지금 세 번째, 네 번째 손가락 사이도 아프다.


이중고도 이런 이중고가 없다.

두 번째, 세 번째 손가락으로 영상의 그 남자 눈을 찌르고 싶다.


잠에서 깬 후 6시간이 흘러 8시 50분이다.

근처 치과 세 곳 모두 10시에 문을 연단다.

남은 1시간이 지나온 6시간처럼 느껴진다.

기쁨의 시간은 빠르고, 고통의 시간은 느리다.

인생이 그렇더라.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장담하건대 캔디도 이 고통은 못 견디며 운다.


나는 더 아프다.


9시 50분이다.

치과에 다녀왔다.

손톱 만한 두 녀석의 환골탈태가 시급하단다.

예상 견적 100만 원.

구강의 고통은 마음으로 전이했다.


난 이제 마음이 아프다.


커피를 사들고, 인적 드문 곳으로 가 담배를 꺼냈다.

마취한 김에 스케일링 하자던 제안을 거절한 이유다.

커피, 담배 이 조합은 늘 나에게 상념을 던진다.


마지막으로 치과에 간 게 10년 전.

그 사이 하얗던 두 꼬마는 내 삶을 방해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사냐고 주위에서 나불거릴 때, 내 인내를 도와 악물려줬고

고뇌를 삼키려 폭식할 때, 내 소화를 위해 음식을 부숴줬다.

그들은 그저 친절한 공범이요, 침묵의 증인이었으며, 고귀한 희생자였을 뿐이다.


100만 원.

난 살고 싶은 대로 살았다.

누가 뭐라 해도, 내 삶을 원망하지 않았고, 후회하지 않았고, 책임지며 살았다.

내가 속 썩여서 썩은 녀석들, 그 녀석들을 위한 100만 원.

행복의 대가 100만 원은 싸다.


(이 글을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원들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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