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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동맥

by Sir Lem

1. 관상


어려서부터 남들의 말투와 그 사람의 생김새, 행동거지를 연관 지었다.

'그렇게 생긴 사람은 그렇더라'라는 식의 데이터가 쌓이고 중복되며,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사례가 늘었다.

예를 들어, 삼십몇 년 전 인천 용현시장에서 '지랄쟁이'라고 불리던 아줌마의 성격을, 나는 별명을 듣기 전 이미 관상으로 읽었다.

엄마가 동네 아줌마들과 얘기하다가 그 아줌마를 '지랄쟁이'라 불렀을 때의 쾌감 그리고 작은 성취감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시장 어른들을 읽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각 지역에서 올라온 다수의 선·후배와 또래들을 읽고, 사귀고, 멀리했다.

군 면제였기에 대학원까지 6년 내내 동일 인물들을 장기간 분석하며 깊이를 더하기도 했다.

그렇게 잔뼈가 굵어졌다.

캐나다 전문 유학원을 하던 시절은 거의 절정이었다.

수많은 학생, 학부모를 상담하며 관상에 행동 패턴까지 접목해 시간 투자 대비 수속 확률을 높였다.

다시 말해 버릴 명단은 과감히 버리고, 공략할 명단에 집중해 많은 학생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지금 지내고 있는 호텔(이라고는 하나 모텔급에 불과한) 프런트 데스크(라고는 하나 카운터에 불과한) 아줌마와 말을 섞지 않는 이유도,

얼굴에 재수 없다고 쓰여있었는데, 정말 그랬......


2. 동맥?


드라마나 영화에서, 중년 남성이 길을 걷다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장면을 종종 본다.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를 걸어서 왕복하는데, 오는 길에 비슷한 동작을 유발하는 통증을 경험했다.

별 일 아니거나, 아니어야 하는 처지다.

요즘 내가 좀 그렇다.

다행히 눈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의자에 앉아 5분 정도 쉬었더니 괜찮아졌다.

둘째 날, 갈 때 중간에 한 번 그래서 쉬었고, 돌아오는 길에 두 번 길게 쉬었다.

며칠 뒤, 갈 때는 지하철 탔고, 걸어서 돌아올 때 네 번 인가 쉬었지, 아마?

통증을 대개 이런 식으로 묘사하던데,

'가슴 중앙을 쥐어짜거나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으로 나타나며, 왼쪽 팔, 어깨, 턱 등으로 뻗치는 방사통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종류를 달리하는 수많은 고통을 견디고, 쌩까고, 극복하며 살아왔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방치해서 크게 불어난 벌금, 민사 재판 출석 통지, 치과 치료 견적 따위가 놀래키는,

내 개구쟁이 인생을 수놓은 돌발 임팩트들은 귀요미 수준이었다.

처음 느끼고, 정점에 다다르기까지 약 2주.

통증을 일으키는 활동량은 급격히 줄어들고, 강도와 지속시간은 커졌다.

며칠 더 미루다가는 자칫 한 순간에 훅하고 인생 끝날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3. 관상동맥


응급실 갔던 날 오전.

좌뇌는 협심증을 예견했고, 우뇌는 담배 한 대를 권했다.

하여간, 우뇌. 이 새끼가 늘 문제다.

동네 내과 가기 전에 한 대 피웠다.

양치하며 팔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죽을 것 같았다.

200미터가 채 안 되는 거리를 도대체 몇 번을 쉬어 갔는지 참......

엑스레이, 심전도 결과를 본 의사가 당장 응급실 가란다.

사실 좌뇌는 그 전날 밤부터 응급실을 주장했다.

사촌 동생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알렸다.

최대한 빨리 갈 테니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있으라 하더라.

눈앞에 커피매장이 보이길래, 움직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 마시자마자 우뇌 새끼가 또 담배를 권한다.

한동안 못 피울 것 같아서 마지막 담배라 생각하고, 멋지게 피웠다.

동생이 도착해 함께 응급실로 갔다.

착실하게 생긴 꼬마 의사가 CT 결과를 보더니 관상동맥 운운하며 입원을 강력히 권한다.

좌뇌, 우뇌 둘 다 반대했다.

두 달 전부터 SF소설을 쓰고 있다.

입원을 하더라도 소설을 위한 새 계획이 우선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몸이 우선인데', '소설 그거 며칠 미루면 되는 거 아니냐'

몇 놈이 짖어대길래 '내 살아온 인생이 어떻더냐' 반문하니 닥치더라.


4. 김 과장


나보다 나이가 어려 보여서 이곳에선 그냥 편하게 부르련다.

시흥의 어느 병원 심혈관센터 누구.

그 친구 이름을 드러내고 싶기도 하다.

응급실에서 약을 받아 돌아오고 이틀 뒤, 그 친구를 처음 만났다.

오랜 기간 글을 써왔다고 밝혔고, 담배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아! 이 미친놈은 담배 끊을 생각이 전혀 없구나'라는 인식을 깊이 심어주고 싶었다.

왜?

그 친구 관상과 언어 때문에.

대부분의 의사라면 담배를 향한 내 애착 혹은 집착에 대해 "절대 안 된다."로 잘라 말하고, 위험 요소가 배제된 상황에서의 처방과 계획, 조언에 머물렀을 것이라...... 사료된다.

나는 그런 경향을 책임회피로 여긴다.

나야 고작 스텐트 두 개 박은 협심증 환자지만, 그 보다 더 심각한 심근경색 환자의 39%는 심근경색 발병 후에도 계속 흡연하고, 50%는 발병 1년 후에도 흡연하는 것으로 나타났단다.

의사라면 그 39%와 50%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부드러운 대화로 환자 얘기를 좀 더 귀담아듣고, 그의 금연 의지를 재삼 확인하거나 의심해 보는 건 어떨까?

하물며 고지혈, 고혈압 등을 진단받았던 당시의 기억에도 오직 금연이라는 두 글자만 선명했다.

나랑 비슷한 인생 살아온 주변 꼰대, 골초들에게도 물어봤지만 대답은 같았다.

무조건 금연하라 했다더라.

김 과장은 달랐다.

물론 김 과장도 내게 담배 연기만큼이나 해로운, 금연을 종용하는 문장의, 연기를 뿜긴 했다.

하지만 왠지 내 눈빛을 살피는 듯했고, 말끝을 흐리기까지 했다.

나는 시종일관 피워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지금도 변함없다.

원하는 수준의 글을 위해선 하루 반 갑 정도는 필요할 것 같다.

김 과장은 내 얘기를 경청했다.

사무적으로 대충 흘려듣지 않았다.


입원 날짜를 정할 때

수술직후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이동하길 원했을 때

퇴원일, 시간 정할 때


결정이 필요한 매 순간, 그는 내게로 직접 와서 내 입장과 처지를 들어줬다.

그게 만약 회진 차원이었다 하더라도, 간호사를 사이에 두고 내가 그에게 요청한 사항, 그가 했던 응대나 조치에는 분명 성의가 묻어났다.

퇴원 후 받은 처방전에서도 넉넉히 드러났다.

5개 언어 모델(LLM)에 약품·용법을 나열하고 흡연 가능성을 대비한 처방인지 물으니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


김 과장의 관상과 언행에는 교만과 나태의 기운이 없았다.

인정받아 높은 곳에 서려는 욕심 보다, 실수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사는 인물 같았다.

본분에 맞게 역지사지를 실천하는 '착한 의사'로 보였다.


1. 바람직한 길 하나만 가리키며 “그 길만 가라” 하는 건 현실도 아닐뿐더러,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순종적이지도 않다.

다원화 사회 아닌가?

2. 개인적 호의를 확대 해석해 한 인물을 객관화했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관상이란 게 원래 그렇다는 말로 퉁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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