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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ki Jul 12. 2019

새삼스럽게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오늘의 한 줄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간이란 어떤 경우에는, 그 인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내게 꽤나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장 처음 접한 하루키 소설이라는 점도 그렇고 단 한 문장만으로 나를 굴복시켰다는 점도 그렇고 처음 번역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안긴 작품이라는 게 그렇다. 

늘 하는 말이지만 <노르웨이 숲>의 와타나베의 성인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루키 작품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실연과 상실, 그리고 고독으로 빚어진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다. 이들은 과거라는 이름의 덫에서 헤어나고자 괴로워하는 군상들이다. 구원을 찾지만 구원의 길은 소원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어느 정도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하루키는 한 인터뷰에서 “과거라는 덫에 대해 사람은 무엇이 가능한가를 쓰고 싶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내가 이 작품에서 쓰고 싶었던 것은, 첫째로 사람이 직접적인 과거로부터의 영향에 대해서 도대체 무엇이 가능한 것인가 하는 것이며-그것은 도덕적인 문제에 깊게 관련되어 있다-둘째로 사람은 현실과 비현실, 각성과 비각성을 어떠한 형태로 같이 공생할 수 있는가, 요컨대 자기 자신 안에서 어떻게 동시에 존재시킬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하지메와 시마모토의 술래잡기 같은 연애, 상처로만 남게 된 이즈미. 청춘이라기보다는 어른의 모습과 고뇌를 담고 있어서인지 음악 역시 팝보다는 재즈가 눈에 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듀크 엘링턴, 그리고 냇킹콜까지. 책을 읽고 앨범을 사 모을 정도로 열광한 곡들이다.

감미로운 목소리와 호소력 있는 가사들로 가득한 냇킹콜의 <Pretend>는 <The Ultimate Collection>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고통스러울 때는 행복한 척해요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라는 가사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외로움을 숨기는 하지메와 시마모토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소설에서 중요한 키포인트 곡은 듀크 엘링턴의 <Star Crossed Lovers>, 즉 '어긋난 인연의 연인들'이다. 이 곡만큼 두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곡이 있을까. 아련한 피아노 선율에 깃든 색소폰 소리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있어 외로운 밤에 술 한잔 홀짝이며 들으면 더 없이 좋은 곡이다. 빌리 스트레이혼과 함께 만든 이 곡은 <로미오와 줄리엣>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찰리 파커 <South of the Border>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하니 역시 빠질 수 없는 곡이다. 찰리 파커가 만든 곡이지만, 책에서는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버전으로 나와 있다. 

어쩌다 보니 책 이야기보다 음악 이야기가 더 많아진, 새삼스럽게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다. 몇 년 있으면 출간 30년을 맞이하게 되는 소설이라니 그게 더 놀랍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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