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의 순간: 미주신경성 실신에서 배운 것

어느 방화범의 고백

병원에 다녀온 딸이 말했다.

미주신경성 실신이래.”

미주? 뭐라고?

딸아이도 설명이 막히는지 검색을 해보라 한다.


찾아보니 ‘몸의 긴장이 과하게 풀려버려서 혈압이 뚝 떨어지고 뇌로 가는 혈류량이 줄어들어 잠깐 기절하는 현상’을 미주신경성 실신이라 하는데, 일종의 흔한 증상인 듯하다.


어지럽고, 식은땀이 나고, 토할 거 같고. 그러다 쓰러진다(아주 잠깐). 어제 딸아이가 말한 증상과 똑같다.


kitten-4018756_640.jpg Image by Olga Ozik from Pixabay


사건은 어젯밤에 일어났다.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 둘째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제 알바가 끝났나 보다 했다.


“아빠 바빠? 시간 돼?”

대뜸 이렇게 물어보면 불안해진다. 뭔 일이길래.


“응 시간 되지. 무슨 일이야?”

“지금 어지럽고 토할 거 같아. 병원에 가봐야겠어.”


이 시간에 병원을? 응급실을 가야 할 만큼 아픈 건가? 아이가 아프다는 말에 서둘러 외출 준비를 끝내고 났더니 불안과 걱정했던 마음은 사그라지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불안이나 두려움 같은 에너지가 마음속에 생겨나면 내면에 통제하기 힘든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그 목소리는 딸아이를 비난하고 야단치려고 한다.


‘거봐, 제 때 밥 먹으라고 했지. 방학이라고 퍼져있지 말고 제발 일찍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자기 관리가 안되니까 이 사달이 나잖아.’ 따발총처럼 쏘아대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정말 그렇게 아이에게 화를 쏟아냈을 텐데. 어제는 왜 그랬는지 마음속의 날 선 목소리에 깜짝 놀라 숨을 고르며 마음을 추슬렀다. ‘아프다는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건 야단이 아니야. 따뜻한 말 한마디와 밥 한 숟가락, 그리고 안정을 찾게 해야지.’라고 스스로 되뇌며 아이를 맞이했다.


얼굴의 혈색이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다. 그리고 나의 변화된 태도에 아이도 진정을 하고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잠시멈춤.png


내게 아이를 위한 100가지 솔루션이 있다고 해도 분노의 에너지가 담긴 감정을 드러내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화는 먼저 자신을 불태우고 그 불길은 상대에게 옮겨간다. 팃낙한 스님은 이를 ‘집에 불이 난 것을 끄지 않고 방화범을 잡으러 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얼떨결에 마음속에서 작동된 스프링클러 같은 ‘멈춤의 순간’. 그 순간이 나를 살리고 아이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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