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했다고 하면 "왜 이혼을 했느냐?"는 질문을 꼭 받는다. 그때마다 적당히 생각나는대로 얼버무리고 만다. 자랑할만 한 일도 아닌 걸 장황하게 늘어놓는 건 역시 내 성격과 맞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해주고 싶기는 하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 안나 카레니나 (민음사)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구절이다. 이혼도 마찬가지다. 각자 제각각의 이유에서 서로 헤어지는 것 뿐이다.
이혼하기 전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나고 나자 법정에서 마주한 판결에는 의외로 담담해졌다. 우리는 법원 옆의 칼국수집에서 칼국수와 만두를 시켜먹고 나서 각자 제 갈길을 갔다. 비가 내리는 여름의 어느날. 나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구절을 읊조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들은 오히려 쿨했다. 엄마 없는 생활에 빨리 익숙해졌고, 막내는 학교 생활에 더 잘 적응했다. 속이 깊은 큰애는 항상 아빠를 위로해줬다. 한번은 내게 와서 "아빠도 이제 싱글이네."하고 말을 건냈다. 그 말이 길고 긴 미로를 탈출하는 날개가 되어주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신경이 쓰인다. 난 아이들에게 죄를 지었고 아무리 해도 씻겨지지가 않는다. 아이들에게서 엄마를 없애버렸다는 것, 그 상실감이란 것을 받아들이고 씩씩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려온다.
난 아이들에게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한다. 하기 싫어하는 학원을 다 끊고 하고 싶은 것만 하게 하고, 대화도 많이 하고, 요리도 정성껏 준비한다. 요리는 자신있다. 맛있게 요리를 하고 아이들도 맛있어 한다. 하지만 항상 무언가 부족함을 느낀다.
그게 무엇인지 공지영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를 보고 깨달았다. 내가 아이들에게 절대로 해줄 수 없는 그 부족한 맛의 정체는 엄마가 딸에게만 줄 수 있는 '엄마의 맛'이었다. 태고적부터 엄마가 딸에게 은밀히 전수하는 레시피가 있다. 그 수많은 세월을 지나 누적된 DNA. 아빠의 유전자로는 결코 알아차릴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책을 읽고 쓰는 서평은 형식이라는 틀에 갇혀버린다. 겉핥기식의 소개와 책이 좋건 안좋건 미담으로 마무리하게 되고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속으로 삼키는 경우가 많다.
이 글은 그러니까 내 속에 삼켰어야 할 글이다. <딸에게 주는 레시피>를 읽으며 눈물을 쏟아내야 했다. 이 책이 주는 감동이 눈물과는 거리가 있는데도 눈물이 흐르는 이유를 찾기 위해 난 글로 써야 했다.
내게 엄마의 DNA가 없으면 어때. 아빠의 레시피로 최선을 다해 없는 DNA를 만들어 새기는 것은 밥상 위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남을 말 한마디, 손잡아 주는 순간, 웃음소리까지 - 삶 전체가 레시피다.
"위녕,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실은 이거야. 네가 설사 너무 바빠 며칠을 라면만 먹고 산다 해도, 네가 너무 가난해져서 엄마도 떠난 먼 훗날에 신선한 요리를 하나도 해 먹을 수 없다 해도, 너는 소중하다고. 너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일을 절대로 멈추어서는 안돼."
- 딸에게 주는 레시피,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