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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윤숙 Jun 22. 2023

마네 - 회화는 색을 칠한 평면이다

이야기와 입체가 사라진 회화

초등학교 미술시간, 가장 괴로웠던 일중에 하나는 바탕을 칠하는 것이었다. 바탕을 칠하지 않으면 그림은 완성되지 않았다. “나 때는” 그랬다. 종이의 민낯을 다 가리기 전까지 그것은 그림이 아니라 크레파스가 뭍은 종이에 불과했다. 바탕을 다 칠해야 종이는 비로소 그림이 되어 게시판에 전시되었다. 왜 그토록 종이의 맨 얼굴을 가려야 했던 것일까? 이런 관념은 미술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꽤 뿌리가 깊다.


좌) 마사초, <성 삼위일체>, 1425~8년경, 프레스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피렌체 / 우) 17-4 마사초, <성 삼위일체> 원근법 도해


르네상스 이래 근대예술이란 2차원 평면을 3차원으로 조직하는 작업이었다. 원근법과 단축법을 비롯한 회화 기법들이 그럴듯한 가상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이었다. 만져보면 아무것도 없지만 공간과 물체가 실재하는 듯이 그리는 것이 화가의 기본 소임이었다. 당연히 채색되지 않은 바탕은 허락될 수 없었다. 바탕이 드러나는 순간 3차원 가상 세계는 깨어지고 그것이 단지 평면에 칠해진 물감일 뿐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그런데 19세기에 이런 관습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낸 화가가 등장한다. 인상주의 회화의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는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낙선전에 등장한 불손한 그림


인상주의가 세상에 처음 주목받게 된 것은 1863년 낙선전을 통해서였다. 당시 살롱(국가에서 주최하는 공식 전람회)은 출품된 약 5천 점의 그림들 가운데 3천 점 가량을 낙선시켰는데, 거기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그림 1]도 포함되어 있었다. 많은 예술가들은 대규모 낙선을 예술에 대한 “학살”이라며 분개했다. 살롱은 구매자를 만나고 작품 가격을 올리는 주요 창구였고 당락은 화가들의 생계와도 직결된 문제였기에 전시 기회를 둘러싼 논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예술계의 분쟁은 나폴레옹 3세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황제는 어떤 식으로든 살롱 심사위원과 낙선한 화가들 사이에 중재안을 마련해야 했다. 그때 궁여지책으로 마련된 전시가 낙선전이었다. 책임을 피하고 싶은 황제가 작품에 대한 판단을 관중에게 맡겨버린 것이다. 무책임한 해결책 같지만 예술에 처음으로 민주주의가 도입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림 1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 1863, 캔버스에 유화, 208x265 cm, 오르세 박물관, 파리


낙선전은 흥행에 성공했다. 일요일이면 3000~5000 명의 사람들이 전시장에 들어섰다. 화가들은 기대에 찼지만 낙선작들은 결국 웃음거리가 되었다. 사실주의자 쿠르베는 “낙선자 중의 낙선자”였다. 그의 회화 1점은 비경쟁 부문에 출품되었는데도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로 쫓겨나 심지어 낙선전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쿠르베의 낙선은 의도된 것이었다. 사실주의에는 당시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고 기득권 세력을 도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쉽게 말해 사실주의는 정치적이었고 쿠르베는 그 선봉에 서서 낙선이 뻔한 작품으로 스캔들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마네에겐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 그는 심사위원단에게 선택되어 살롱에 전시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럼에도 심사위원들의 비위에 맞는 작품을 그릴 수는 없었다. 예술에 대한 그의 철학과 감각이 살롱과는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 2 알렉상드르 카바넬, <비너스의 탄생>, 1863, 캔버스에 유화, 130x225cm, 오르세 박물관, 파리


그해 살롱의 우승작은 알렉상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 1823-1889)의 <비너스의 탄생>[그림 2]이었다. 비평가들은 이 그림이 외설적이지만 전혀 꼴사납지 않고 아름답다고 극찬했고 황제는 카바넬에게 훈장을 수여하며 이 그림을 사들였다. 이때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은 황제에게 “불손하다”는 평을 들으며 도덕성이 의심스러운 그림으로 낙인찍혔다. 외설적인 누드가 문제였다면 카바넬의 그림도 낙선되어야 마땅했다. 문제는 누드가 아니었다. 카바넬은 누드를 신화로 포장하고, 부드러운 선과 세밀한 묘사를 통해 ‘외설적으로 표현된 여성’을 ‘미적대상인 여신’으로 둔갑시킬 여지를 주었다. 저속한 위선이었다.


마네는 그런 미화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다.  그는 사실 상상력이 뛰어난 화가가 아니었다. 마네는 고전회화와 거장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판화를 즐겨 차용했고 때로는 당대의 화가들의 그림을 응용하기도 했다. <풀밭 위의 점심> 역시 라파엘로의 작품[그림 3]을 모방하여 그린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티치아노의 <전원의 합주>[그림 4]를 떠올리기도 했다. 마네는 이렇게 익숙한 소재에서 신화를 걷어내고 쿠르베의 사실주의를 더해 전혀 다른 그림을 만들어 버렸다. 목동은 브르주아 신사로, 여신은 평범한 여인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좌) 그림 3 마르칸토니오,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 모사(부분), 1515~16, 인그레이빙 판화 /  우) 그림 4 티치아노, <전원의 합주>, 1508-09


이 작은 변화가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를 알아봐 준 사람은 보들레르였다. 그는 “넥타이를 매고, 왁스를 칠한 구두를 신은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위대한가!”라고 마네를 두둔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여신도 아닌 보통 여자가 벌거벗고 남자들과 야외에 앉아 관객을 응시하는 것을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      




사람 보기를 돌같이 하라


그 후 2년 뒤에 발표된 <올랭피아>[그림 5]는 더욱 심한 비난을 받았다. 이번에도 역시 누드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렇게 반쯤 누운 누드는 회화에 매우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고, 마네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고전 작품을 모티브로 삼았다.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그림 6]가 이 그림의 모체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는 여신을 그리지 않고 당대의 여성, 그것도 어린 고급 창녀를 그렸다. 한쪽 발에 걸쳐진 슬리퍼, 장신구와 꽃다발을 들고 시중을 드는 흑인까지 모든 것이 그녀가 창녀라는 것을 말해주는 표지였다. 사람들은 부끄러움도 없이 관람객을 빤히 쳐다보는 매춘부의 모습에 분개했다.


그림 5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 캔버스에 유화, 131x190cm, 오르세 박물관, 파리


그림 6.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 캔버스에 유화, 119 x 165 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주제뿐만 아니라 표현법도 논란이 되었다. 캔버스가 보일 듯한 엉성한 붓질이 첫 번째 문제였다. 앞서 말한 바 대로 회화가 오랜 세월 동안 숨겨왔던 바탕면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볼륨감 없는 인체 표현이 두 번째 문제였다. 올랭피아는 이불과 함께 하얀색 면이 되었고, 흑인 하녀는 벽지와 함께 어두운 검은색 면이 되어버렸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이 이토록 평평하게 색면처럼 그려진 것에 분개했다. 그러면서도 이 그림 앞에서 욕을 해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요컨대 마네는 고전적인 그림에서 두 가지를 제거했다. 그중 하나는 그림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낭만주의 회화와 사실주의 회화까지 남아있었던 일말의 주제가 사라진 것이다. 즉 마네는 그림에서 의미를 제거하여 회화를 오직 선과 색의 유희로 만들어 버렸다. 회화는 마네를 만나 마침내 자신이 2차원 평면이었음을 커밍아웃하게 된 것이다.


마네가 회화에서 제거한 다른 하나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입체감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처사로 느껴졌다. 하지만 존중받지 못하는 인간들이 터무니없이 많은 시대에 천부인권은 실체가 없는 공허한 개념일 뿐이었다.


프랑스는 혁명 이전으로 돌아갔고,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과 함께 많이 것이 바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되는 시대에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을 팔았고 여성의 몸은 매매되었다. 이는 비단 창녀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었다. 고매한 척하는 귀부인들의 결혼 역시 인간을 매개로 한 거대한 거래였고, 상류층 부르주아 남자들은 매춘부와 귀부인을 구매하는 소비자였다. 인간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사물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마네는 그 사실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비난받았지만, 그것은 회화가 2차원이라는 사실만큼이나 명백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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