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베, "나에게 천사를 보여준다면 그려보겠다."
화가든 작가든 모든 예술가는 자신이 실제라고 믿는 바를 표현한다. 구름 위에 우아하게 서 있는 라파엘로의 <시스티나 성모>부터 다른 민족이 처한 비극적인 현실을 그린 들라크루아의 <키오스 섬의 학살>까지 거짓된 그림은 없다. 진실된 화가라면 모두 자신이 생각하는 참된 리얼리티를 구사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840년경부터 1880년경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나타난 일련의 화가들은 '사실주의(realism)'를 선언하며 과거 화가들의 그림과 자신들이 그려낸 '사실'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귀스타브 쿠르베(Jean-Désiré Gustave Courbet, 1819-1877)[그림 1]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다. 나에게 천사를 보여준다면 그려보겠다.” - 쿠르베
쿠르베의 선언을 따라 사실주의자들은 신화, 역사, 성서와 같이 그동안 회화의 주제가 되었던 '이야기들'을 모두 캔버스 밖으로 밀어냈다. 상상적인 것,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은 그림의 영역에 놓을 수 없었다. 대신 이들은 자신의 시대를 세심하게 관찰하여 편견 없이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매우 평범해 보이는 목표지만 당시로서는 자못 혁명적인 것이었다.
쿠르베는 프랑스의 시골마을 오르낭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예술가들이 아카데미와 살롱이 있는 파리로 모여들던 시대에 고향에서 혼자 그림을 그린다는 건 매우 특이한 행보였다. 이렇게 전통과 일반적인 풍속을 무시하는 쿠르베는 한마디로 보헤미안이었다. 보헤미안의 어원은 집시인데, 1830년대 파리에서 활동했던 반시민적 예술가들 일컫는 말이다. 쿠르베는 그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후원자에게 돈을 받았지만 후원자의 요구대로 그림을 그리진 않았다. 노래하고 싶은 곳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싶은 곳에서 춤추는 집시처럼 쿠르베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곳에서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림을 그렸다.
<안녕하십니까, 쿠르베 씨>[그림 2]는 이 화가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언덕 위에서 산책을 나온 세 남자가 만나고 있다. 번듯한 옷을 차려입은 후원자들(왼쪽 두 사람)이 모자를 벗고 공손히 인사를 하는데, 화구를 짊어 맨 쿠르베가 턱을 들고 인사를 받는다. 후원자들이 타고 온 마차는 매우 작게 그려져 있다. 언듯보면 미니어저인지 멀리 있어 작게 보이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이 그림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쿠르베의 그림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림 3] 굴욕적으로 표현된 후원자와 거만한 화가의 자세, 불성실한 공간묘사, 모든 것이 다 문제였다. 그럼에도 쿠르베는 당당했다. 자신은 그저 사실을 그렸을 뿐이다. 세 사람의 자세가 다른 것은 인사를 건네는 타이밍이 달라서였고, 마차가 작게 그려진 것은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주의 화가는 해설자가 아니라 관찰자다. 마차가 놓인 공간이든, 사람들의 모습이든, 본 것을 그릴 뿐 설명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관람자의 몫이다.
1948년, 루이 필립이 폐위되고 급진적 공화주의가 프랑스를 휩쓸었다. 이 혁명에서 처음으로 노동 문제가 주요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노동자는 새로운 정권에서 주축세력이 되었다. 같은 해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며 산업혁명 이후 쌓여 온 산업자본주의의 문제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노동자는 역사의 주역으로 주목받았고 예술의 새로운 주제로 떠올랐다.
1849년에 그려진 쿠르베의 <돌 깨는 사람들>[그림 4]은 그런 시대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누더기 옷을 입고 일을 하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 이들은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가난한 노동자의 표상이었다. 이 그림 역시 많은 이들의 질타를 받았다. 예전 같았으면 성스러운 주제가 아니라 세속적인 장면을 담았다는 게 비난의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노동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이미 낯선 주제가 아니었다. 주제가 아니라 표현이 문제였다.
예컨대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그림 5]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밀레가 노동을 매우 아름답고 숭고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수가 끝난 들녘에서 흩어진 낱알을 줍는 여인들은 분명 가난한 농민이다. 하지만 보기에 전혀 불편하지 않다. 장대하게 펼쳐지는 풍경, 멀리서 흥겹게 일하는 흐릿하게 표현된 인물들, 등이 굽을 정도로 고된 노동을 감당하는 세 여인. 이 모든 것이 보는 사람들을 고귀한 노동의 세계로 인도한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밀레의 그림에서는 노동자의 비릿한 땀 냄새가 아니라 향긋한 건초향기가 난다.
쿠르베는 밀레와 달리 자신이 본 노동자의 현실에 일말의 미화를 하지 않았다. 매우 거대한 크기로 그려진 <돌 깨는 사람들>에는 돌을 깨고 나르는 두 사람이 있을 뿐이다. 배경은 꽤 세밀하게 묘사되었다. 그러나 여느 풍경처럼 지평선까지 뻗어나간 벌판이나 탁 트인 하늘 따위는 없다.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땅이 답답하게 시선을 가로막는다. 누더기 옷을 입고 돌을 깨는 사람들은 그 땅에 갇혀있다. 그것이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하는 노동의 종류도 문제였다. 돌 깨는 일은 농사와 달리 고대부터 노예나 죄수들처럼 사회 최하층계급이 하던 하찮고 무의미한 노동이었다. 어떤 화가도 이들을 그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쿠르베는 어느 날 우연히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세심하게 관찰했고, 자신이 본 것을 그림으로 그렸다. 바로 그 점이 문제가 되었다. 보수적인 비평가 페리에는 <돌 깨는 사람들>을 향해 이런 비판을 가했다.
“돌 깨는 사람도 왕자나 그 밖의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가치 있는 주제라는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돌 깨는 사람이 그가 깨고 있는 돌 만큼 무의미한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페리에(Perrier), 린다 노클린, 권원순 역, [리얼리즘]에서 재인용.
페리에의 비아냥 섞인 비판은 쿠르베에겐 찬사였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쿠르베가 본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에서 돌 깨는 사람들은 흔한 돌맹이처럼 가치가 없었다. 낭만주의라면 존엄한 인간이 그런 비참한 현실에 처한 것에 개탄하며 고통을 감내하는 이들의 모습을 영웅처럼 그려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주의는 미화하지 않는다. 쿠르베는 차갑게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며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묘사할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 사회의 현실을 폭로하는 고발장이 되었고 보수적인 사람들을 분개하게 만들었다.
쿠르베는 늘 주류 사회 밖에 있었지만 결코 현실을 초월한 적이 없었다. 쿠르베가 보헤미안인 것은 결코 그가 사회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가 불러일으키는 논쟁들은 그의 작품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였다. 주류적 가치에서 벗어날 것, 정론에 도전할 것! 이것이 그의 작업 강령이었고 스캔들과 도발, 추문이야말로 그가 진정으로 원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