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탠 Shaun Tan, 도착 arrival

판타지는 괴물의 세상에서 희망을 이야기 한다

by 구윤숙

길을 떠나는 이는 알 수 없다. 무엇을 보고 어떤 일을 겪게 될지. 그럼에도 그의 맘이 설렌다면 그는 여행자일 것이다. 그에겐 적어도 믿을만한 지도가 있을 것이고 언제든 돌아올 집이 있다. 그런데 만약 길을 떠나는 이의 마음이 무겁다면 그는 이주자거나 난민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도착한 곳이 나쁘다 하여 떠난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 도착과 함께 그들이 살아야할 세계가 바뀌었다. 낯선 세계로 떠난 이들의 경험,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숀 탠(Shaun Tan, 1974~)의 [도착 (Arrival)]을 펼쳐서 다른 세계를 정면으로 응시 해 보자.


알지 못하는 세상으로 떠밀려 들어가다

[도착]의 속표지.

책을 펼치면 화면 가득 채워진 600장의 증명사진을 보게 된다. 인종과 나이, 성별이 각양각색인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그들의 초상은 이상하게도 복잡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누구일까? 한 장을 더 넘기면 독자는 알 수 없는 문자를 만나게 된다. 으레 제목이 다시 나와야 하는 페이지에 등장한 낯선 문자는 무엇일까? 책장을 계속 넘기면 그것이 작가가 만들어낸 그림책 세상에서만 통용되는 문자라는 걸 알 수 있다. 당연히 독자는 읽을 수 없다. 궁금하고 답답하다. 이 책에는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글자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독자는 짐작은 가지만 뭔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답답함을 안고 책 속의 세계를 통과해야 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과 글을 쓰는 사람들의 세계를.


다행히 이야기는 익숙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른 아침, 변변한 살림살이가 별로 없는 집안에서 한 남자가 짐을 꾸린다. 가족사진을 고이 싸는 걸 보면 그는 가족을 두고 어디론가 떠나려고 하고 있다. 남자가 떠나는 길을 아내와 어린 딸아이가 배웅한다. 그런데 세 식구가 걸어가는 골목길 위로 괴물의 꼬리가 보이고 그 그림자가 적막한 길에 드리운다. 너무나 현실적으로 남루한 가족의 모습을 그려놓고 작가는 단번에 판타지로 이동한다. 괴물이 지배하는 도시. 아마도 그 때문에 사내가 집을 떠나는 것 같다. 적막하고 어두운 그 골목을 독자는 얼른 떠나고 싶다. 그러나 이별을 마치고 돌아오는 모녀는 다시 그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간다.

503 (3).jpg 길을 떠나는 남자와 그를 배웅하는 가족들.


사내는 어느새 배를 타고 낯선 땅으로 가고 있다. 그 배는 얼마나 거대한지 그가 머무는 선실은 작기만 한데 그가 건너야 하는 바다는 더욱 광대하여 배를 마치 작은 장난감처럼 보이게 한다. 그런데 그 바다보다 더 광활한 것은 하늘이다. 그러나 주인공이 볼 수 있는 하늘은 작은 선실 창문으로 보이는 네모난 하늘뿐이다. 작가는 600개의 작은 그림으로 하늘의 표정을 담았다. 선실 안에서 보낸 그의 시간을 그 수많은 하늘 풍경이 대변해 준다.


그가 도착한 세상은 아주 낯설다. 까다로운 심사를 하고, 체류증을 받고, 자신을 증명하는 서류가 있어야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건 이세상과 비슷한 것 같은데 외관이 너무 낯설다. 분명 아름다워 보이는 그 세계에 머무는 주인공이 힘겨워 보이는 이유는 그가 그 낯설음을 견디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이주노동자인 게 분명하다. 그는 괴물이 없는 세상에 도착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세상속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야 한다.


(좌) 낯선 도시에서 길을 찾아 나서는 주인공 / (우) 주인공이 새로운 땅에서 만난 사내의 회상

사내는 그곳에서 길을 헤매고, 일자리를 찾고,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사내에게 자신들이 그곳에 오기 전에 얼마나 힘겨운 시간을 살았는지를 들려준다. 그들은 모두 어딘가를 탈출해 온 사람들이었다. 소녀들을 가둬두고 노예처럼 일을 시키는 공장, 무의미한 전쟁터를 전전하는 군대, 얼굴을 가린 거대한 이들이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살육하는 도시. 그들은 인간의 탈을 쓴 괴물들이 있는 세계를 빠져나왔다. 숀 탠은 그들의 과거도 판타지를 통해 보여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어떤 이들을 대변하고 있음이 단번에 짐작이 간다. 그들은 인터넷만 켜면 볼 수 있는 난민들이다. 이 책은 너무나 현실적인 이주노동과 난민의 문제를 판타지라는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이 판타지는 참으로 특별하다.


이주자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책들은 많다. 그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들도 많다. 그러나 이주민이 겪는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해주는 책은 드물다. 숀 탠은 영리하게도 판타지를 통해 두렵고 낯선 상황을 극대화하고, 글 없이 자기들끼리만 소통하는 세상을 그려냄으로써 알아들을 수 없는 답답함을 독자가 느끼게 한다. 물론 그 체험은 유쾌하지 않다. 인물의 몸짓과 표정, 작은 음영의 차이들을 보면서 의미 있는 서사를 엮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책장을 펼친 순간 끝까지 보아야할 책무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독자가 그의 외로운 길을 지켜보는 유일한 동반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행이 사내는 그곳에 잘 정착했고, 가족들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괴물이 없는 땅에서 함께 살 것이다. 땅의 형상은 여전히 낯설지만 포근해 보인다. 이주민의 아이가 그곳에서 자라고, 놀고, 공부하고, 누군가를 도우며 살아간다. 이 지구상의 난민과 이주민들의 가정도 그러하기를 기도해본다.




색을 기다리는 최고의 판타지

숀 탠은 이질적인 두 세계를 한 화면에 조합했다. 동식물과 지형이 완전히 다른 그곳은 마치 다른 별 같은데, 너무나 익숙한 바다와 하늘 그리고 남루하고 어두운 현실이 있다. 다행히 그 현실 안에는 우정과 희망도 있다. 이질적인 사물 중 하나는 주인공이 입국심사를 마치고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이동할 때 타고 온 비행물체다. 커다란 풍선과 전화박스 같은 것이 연결된 그것은 아름답지만 아슬아슬한 느낌을 준다. 공중전화는 낯선 곳에서 짧게라도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가장 친근한 수단이다. 그런 모양의 박스가 풍선에 매달려 주인공을 옮겨준다. 그 비행물체의 작동법을 상상할 수 없지만 그래서 더 낯선 세상에 발을 들여놓는 설렘과 두근거림이 느껴지는 형상이 되었다.


이 모든 판타지는 단색으로 그려졌다. 그런데 그것은 색을 잃은 것이 아니라 아직 색을 못 만난 것 같다. 그 자체로 완벽해 보이지만 다양한 색일 입히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보게 하는 단색 그림들. 그 단 하나의 색은 태양빛이 적어 간신히 사물의 형상만 알아볼 수 있는 새벽의 색이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사이의 시간. 이주민과 난민이 겪었을 고통과 희망 사이의 시간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색이 아닐 수 없다.



부연 : [도착]은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이지만 작가의 가정사를 알고나면 더 짠한 감동이 있다. 그 자신이 호주에 정착한 이민자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숀 탠의 아버지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었는데 호주로 이민을 왔다. 중국에서 말레이시아로 거기서 다시 호주로. 그의 집안은 몇대를 걸쳐 더 좋은 땅을 찾아 이주했고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대륙인 호주에 정착했다. 그 때문인지 숀 탠은 이 작품을 약 4년의 시간동안 공들여 작업했다고 한다. 힘겹고 고통스럽고 동시에 아름다운 이주의 기억을 음악과 함께 만나보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 해 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1nJKse-UCFM

keyword
구윤숙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8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