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바꿀 수 없는 고민
“넌 요즘 행복해?” 누군가 물었다. 답할 수 없었다. 지금의 삶이 불행해서가 아니라 질문이 낯설었다. 지금 하는 일이 재밌는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좋은지는 말할 수 있지만 행복을 말하는 건 어색했다. 행복이란 말은 일상회화가 아니라 “난 행복해.”라고 속삭이는 고백이나 “행복하자”고 되뇌는 다짐의 말처럼 느껴졌다. 마렉 비에인칙(Marek Bieńczyk, 1956~)의 [과자가게의 왕자님]은 그렇게 무거운 단어, 행복에 관해 이야기한다. 요안나 콘세이요(Joanna Concejo)는 마법 같은 그림으로 행복에 관한 멋진 해석을 덧붙였다.
골칫덩어리 행복에 잠시 더 머물겠습니다
왕자와 그의 친구 칵투시아, 둘은 달콤한 향 가득한 과자가게에 앉아 맛있는 도넛과 케이크를 즐기고 있다. 좋은 친구와 달콤한 디저트. 행복한 순간이다. 그런데 불쑥 왕자가 이상한 말을 꺼내 들었다.
“행복이란 건 골칫덩어리일 뿐이야.”
왕자가 도넛을 한 입 베어 물며 말했습니다. (…) 칵투시아는 한동안 케이크의 크림만 열심히 먹다가 마침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정말이지 이해가 안 되네. 행복이 행복이지. 무슨 문제라고.”
골칫덩어리 행복.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왕자에겐 한 단어처럼 붙어있다. 반면에 칵투시아는 아이처럼 단순하다. 그녀는 이해하지 못할 친구의 말을 듣고도 즐겁게 케이크의 크림을 즐긴다. 굳이 맞장구를 쳐주지도 않고, 몰라도 아는 척 고상한 말을 늘어놓지도 않는다. 그녀에게 행복은 그냥 행복이고, 모르는 건 그냥 모르는 거다. 왕자는 그녀의 해맑은 모습이 보기 좋지만 그녀처럼 단순해질 수 없다.
왕자에게 행복이 골칫덩어리인 이유는 그것이 현재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뒤늦게 확인하는 아름다운 추억이거나, 언젠가 닿을 거라고 기대되는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루다. 행복은 잡을 수 없다. 왕자는 맛있는 도넛을 먹는 즐거움도 알고 유쾌한 친구와 함께하는 기쁨도 느끼고 있다. 게다가 그런 시간이 행복한 순간이란 것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온전히 행복에 젖어들 순 없다.
“내가 행복해도 되는 걸까, 생각하면 힘들어. 사실 난 한 번도,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좋은 왕자는 아니거든. 내가 가진 것만큼 잘하지도 못했고. 그리고 이 행복에 대한 대가를 확실히 치러야 한다는 생각도 힘들어. 분명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겠지.”
“내 도넛은 2즈워티(폴란드 화폐단위)야.” 칵투시아가 얼른 셈을 했습니다.
칵투시아에게 도넛을 먹는 행복의 대가는 계산할 때 내야 하는 비용 정도다. 그녀는 가벼운 주머니가 조금 걱정스럽지만 지금 누릴 수 있는 기쁨에 집중한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그녀의 가벼운 셈법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멋지고 쿨한 삶의 태도다. 반면 왕자는 머뭇거린다. 자신이 행복할 자격이 있는지 묻는다. 지구 반대편에서 굶고 있거나 전쟁 중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세상엔 공짜가 없으니, 지금의 행복은 미래의 불행으로 되갚아야 할 것이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고 스스로 만든 번뇌이다. 그럼에도 왕자는 칵투시아처럼 가벼워질 수 없다. 왜일까?
칵투시아에겐 이름이 있다. 그림책 안에서 그녀의 직업, 사회적 지위 등을 알 수 없어도 그녀는 칵투시아다. 반면 왕자는 이름이 없다. 그가 어느 나라의 왕자인지, 그저 어느 가정의 왕자님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왕자다. 왕자가 편안히 행복을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는 듯하다. 그는 자기 이름 대신 부여된 역할을 짊어지고 산다. 힘겨워 보인다. 칵투시아는 얼굴빛이 어두워지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럼 여기 더 앉아 있자. 아무 데도 서둘러 가지 말고.”
다행히 칵투시아는 왕자에게 그런 고민 따위는 집어치우고 온전히 행복을 누리라고 섣부르게 다그치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기꺼이 그가 느끼는 골칫덩어리 행복에 함께 머물기로 한다. 세계의 고통에 무관심하지 않고, 행복과 불행의 인과관계를 사유하며,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이 크든 작든 그것을 무겁게 여기는 아름다운 친구와 함께.
아코디언 북, 결국 하나로 이어지는 세계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왕자를 상징하는 거대한 검은 곰과 각투시아를 상징하는 작은 강아지들이다. 곰은 생각에 잠겨 우울한 몸짓을 하고 있다. 반면 강아지들은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작은 사고를 치는데 자기가 벌여 놓은 사건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곰은 한 마리인데 강아지는 여럿이다. 왕자의 고민이 거대하고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반면 각투시아의 욕망은 다양하고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강아지들을 보면서 왕자는 딱 한 번 웃음 짓는다. 그 장면은 사실 일반적인 책처럼 대면을 넘겨 볼 땐 강아지들끼리 노는 장면과 왕자가 있는 장면이 나뉘어 있다. 그런데 접힌 종이를 펼치면 두 장면이 하나로 연결된다. 이렇게 앞뒤로 접힌 종이를 하나로 이어서 만들어진 책을 아코디언 북이라고 한다. 그림 작가는 아코디언 북으로 책을 구성하면서 펼쳐보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그림책을 구성했다.
예를 들어 왕자와 칵투시아는 서로 다른 페이지에서 등장하는데 접힌 종이를 펼치면 둘이 한 의자에 같이 앉아있는 것이 보인다. 우울한 왕자는 자기 세계에 빠져있고 칵투시아는 그런 왕자와 상관없는 것처럼 앉아 있었는데 실은 둘은 곁에 있었다. 아코디언 북의 장면들은 이렇게 좌우를 펼쳐보기 전까지 알 수가 없다.
이런 그림의 구성은 행복한 순간 행복의 이면을 생각하는 왕자의 고민과 닮아있다. 왕자는 도넛을 먹을 때 기아와 전쟁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서로 다른 페이지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연결된 사람들, 단절된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같지만 결국 한 화면에 담긴 이야기들. 그것을 담아내기 위해 작가는 긴 종이 접고 이어가며 작품을 완성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a5v1mBTnj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