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 도르카추크, 잃어버린 영혼

삶의 빛깔을 찾는 기다림

by 구윤숙

영혼 없이 산다. 100년 전 사람들이 들었더라면 깜짝 놀랄 이 말이 이제는 상투적인 표현이 되었다. 바쁘고, 힘들고, 지치고, 지루하고, 알 수 없는 일에 화가 난 채 하루를 보낸다. 열심히 사는데 뭔가 허전 한 삶. 올가 도르카추크(Olga Tokarczuk, 1962~)의 [잃어버린 영혼]은 그런 삶에 찾아온 특별한 어느 날에 대한 이야기다. 요안나 콘세이요(Joanna Concejo)는 거기에 그림으로 ‘기다림의 시간’을 더했다.


영혼을 찾아갈 수 없다. 다만 기다릴 뿐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을 아주 많이, 빨리 하는 사람이었지요. 영혼은 어딘가 멀리 두고 온 지 오래였습니다. 오히려 잘 살 수 있었습니다. 먹고 자고 일하고 운전을 하고… 테니스를 쳤습니다. 다만 가끔 주위가 이상할 정도로 평평한 기분이 들기는 했습니다. 마치 수학 공책의 가지런한 모눈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은 잘 살고 있었다. 그가 느낀 이상 징후는 세상이 가끔 모눈종이처럼 평평하게 느껴졌다는 것뿐이다. 그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좌표 위를 바쁘게 움직이는 점과 같이 살았던 것이다. 수학에서 점은 위치만 있을 뿐 부피와 질량을 갖지 않는다. 그 위치가 높든 낮든, 좌에 있든 우에 있든 점은 그냥 점이다. 때문에 검정으로 찍든 형광펜으로 표시하든 차이가 없다.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도 그와 같았다. 사회적 위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세계가 없었고, 개성이 없는 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의 의미가 없었으며, 즐거운 활동을 해도 공허함을 메울 수 없었다. 영혼의 빈자리는 분주하게 살아서는 채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다행히 ‘어느 날’이 찾아왔다.


어느 날, 출장길의 호텔방에서 잠이 깼을 때 그는 자기가 어디에 왜 와있는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자기 이름마저도 기억나지 않았다. 숨이 막힐 것 같았고, 사무치게 외로웠고, 거울 속 자기 모습이 뿌연 연기처럼 보였다. 그는 겨우 가방에서 여권을 찾아 자기 이름이 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매끄러운 모눈종이 같은 삶에 이질적으로 툭 튀어나온 ‘어느 날’이 찾아온 것이다. 혼돈스럽고 괴로워 보이는 이 날은 실로 선물과도 같다. 꽤 괜찮아 보였던 자기가 실은 아팠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알게 되었으니 치료도 가능하다. 그는 이제 나을 수 있다.


남자는 현명하고 나이 든 여의사를 찾아가 진단을 받았다.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 영혼들은 그래도 자기가 주인을 잃었다는 걸 알지만, 사람들은 보통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 환자분은 자기만의 어떤 장소를 찾아 편안히 앉아서 영혼을 기다려야 합니다.”


보통 의사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처방이 돌아왔다. 다행히 그가 찾아간 의사는 인간의 영혼은 모른 채 신체만 들여다보는 현대의 의사가 아니었다. 그녀는 오히려 원시사회에서 신성하고 종교적인 영역과 의술을 동시에 담당했던 샤먼과 같은 현명한 노인이었다.


남자는 의사의 말대로 한 곳에 거처를 정하고 기다린다. 별것 아닌 이 해법이 이 이야기의 특별한 지점이다. 영혼을 찾기 위해 모험과 고난 따위는 필요 없다. 오히려 고요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역으로 그것이 현시대를 사는 우리에겐 가장 큰 모험이요 도전 거리이다. 휴대전화를 놓아야 하며, 온갖 가십과 멀어져야 하고, 삶의 불안을 조장하는 말들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영혼이 찾아온 순간 남자의 삶에 빛깔이 생기고 있다. 이제 곧 영혼에겐 안식처가 생길 것이다.

남자는 그렇게 몇 달을 보냈고 ‘지치고, 더럽고, 할퀴어진’ 모습으로 숨을 헐떡이며 찾아온 영혼을 만났다. 영혼이 더 자신의 반쪽을 찾길 바랐던 것이 분명했다.


놀라운 건 그의 영혼이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혼은 분명 남자와는 취미, 취향, 좋아하는 농담 등이 다를 것이다. 영혼과 함께 하는 삶이란 이렇게 ‘나와 가장 먼 존재’를 의식하고 돌보는 삶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앞으로는 그런 삶을 살기로 한다. 그래서 그는 삶의 속도를 낮추었고, ‘시계와 트렁크 따위를 전부’ 땅에 묻었다. 시간을 쪼개어 많은 일들을 하고, 장소를 옮겨 다니며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는 바쁜 삶은 죽음을 맞았다. 그러자 매일매일이 특별한 삶이 탄생했다. 꽃은 모두 다른 색으로 피었고, 손수 수확한 호박만으로도 몇 해 겨울을 조용히 보내기에 충분하다는 걸 깨달았다. 몸과 영혼이 서로를 가꾸며 살아가기에 많은 것이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인생의 변곡점을 담은 편집


속표지의 위치부터 이 책은 특별하다. 보통 그림책에선 표지의 뒷면과 맞닿은 면지를 넘기면 속표지가 바로 나온다. 그런데 이 책은 보통 그림책과 다르게 속표지 전에 5장의 그림을 배치했다. 영혼을 잃어버리기 전과 후를 속표지를 기점으로 나눈 것이다.


텍스트의 배치도 특별하다. 속표지를 넘기면 오른쪽 페이지에 빼곡하게 텍스트가 채워져 있다. 역시 그림책이라는 장르에선 잘 쓰지 않는 배치다. 영혼을 만나기 전까지 모든 이야기가 거기 다 들어있다. 텍스트 왼편에는 바쁜 카페의 한 구석에 공허하게 앉아있는 한 남자의 그림이 있는데 그가 주인공인지는 알 수 없다. 영혼에 무심했던 시간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림 작가가 무게를 실은 장면은 남자의 기다림과 영혼의 여정이다. ‘기다렸다’와 ‘찾아왔다’라는 짧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시간들 말이다. 왼편에는 주인을 찾아오는 영혼이, 오른편에는 한 장소에서 서성이며 영혼을 기다리는 남자가 그려진다. 텍스트는 없고 화면은 더없이 고요하다. 그렇게 10장쯤 이어지는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남자와 영혼이 만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때부터 남자의 인생에도 색이 입혀진다. 그리고 모눈종이가 사라진다. 그의 삶은 더 이상 다른 이들과 같은 평면 위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혼을 만나자 삶의 위치가 아니라 삶의 빛깔이 의미 있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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