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없이 사는 ‘나’에게 남은 단 하나의 이야기
텔레비전 토크쇼에 초대되는 사람들은 참 이야깃거리가 많다. 실패와 좌절 그리고 노력이 빚어낸 멋진 인생 스토리가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그런데 숀 탠(Shaun Tan, 1974~)의 [잃어버린 것]에 등장하는 ‘나’에겐 그런 얘깃거리가 없다. 그는 단지 매일 똑같은 지하철에 몸을 싣고 얼굴과 이름 없이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 그가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나를 꺼내 놓는다.
이상하고, 슬프고, 버림받은 것이 분명한 너와 함께 걸을 때 내가 가장 아름다웠다
주인공 ‘나’도 한 때는 이야기를 꽤나 잘하는 사람이었다. ‘웃음을 터뜨리는 이야기’, ‘너무나 끔찍해서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 등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몇 년 새 어른이 되었고 그런 이야기들은 의미를 잃고 잊혀졌다. 그런데 누군가 그에게 이야기를 하나 청했을 때 이름도 알 수 없는 ‘그것’과 만난 여름날이 떠오른다. 별일 없이 병뚜껑이나 수집하던 백수 시절, ‘그것’과 만난 그날이.
내 말은, 그것이 정말로 기묘한 모습이었다는 거야. 슬프고, 버림받은 듯한 모습……. 사람들은 아무도 그것이 거기에 있다는 걸 알지 못하는 것 같았어.
'나'는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것’을 한참 관찰하고, 말을 걸어 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즐겁게 놀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여름날 바닷가, 바쁜 사람들과 쓰레기들이 섞여 있는 그곳에 ‘그것’은 ‘버려진 것’이 분명했다. 아무도 그것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버려둘 수 없었고, 결국 집에까지 데리고 왔다.
‘그것’을 본 어른들은 낯선 손님에게 즉결심판을 내렸다. 어른들에게 버려진 것은 그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지켜볼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발이 더럽구나!” 어머니가 비명을 질렀어. “온갖 이상한 병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아버지가 경고했지. “발견했던 곳에 도로 갖다 두렴.” 두 분이 동시에 명령했어.
‘나’는 궁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신문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혼란한 일상생활에 질서를 되찾고 싶을 때 버려두고 싶은 것을 정리해 주는 곳이 있단다. 이름하야 연방잡동사니국! 국가는 개인의 삶의 무질서와 혼돈까지 관리하고 싶은 모양이다. 서류만 적어내면 처리해 준다니 편리한 것 같긴 한데 막상 그곳에 도착하니 버려진 것은 작고 슬픈 소리를 낸다. 그리고 어디선가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것을 정말로 염려한다면, 여기다 두어서는 안 돼요. (…) 여기는 잊혀질 것이나 버릴 물건, 없앨 것 따위를 두는 장소랍니다. 자, 이것을 받아요.”
목소리의 주인공인 듯한 청소부 한 사람이 다가와 슬며시 작은 종이쪽지를 내밀고 사라진다. 바닥을 바라보는 게 일상인 청소부의 눈에는 보이는 것 같았다. 버려져서는 안 되는 것, 그것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받아든 쪽지에는 구불구불한 화살표 하나가 있었다. ‘나’는 알 수 없는 그 기호 하나를 믿고,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모호함을 견디며, 그곳을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결국 비밀스러운 공간의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온갖 기괴한 것들이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버려진 것도 그곳이 마음에 드는지 만족스런 소리를 낸다. 그래서 ‘나’와 ‘그것’은 거기서 헤어졌다.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그는 이제 좀처럼 버려진 것들을 보지 못한다. 그는 잃어버린 것이다. 공생할 수 없을 것 같이 위험해 보이는 것, 출처를 알 수 없는 미묘한 것, 사람들의 관심을 살 수 없는 하찮은 것의 작고 슬픈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그 특별한 능력을. 그럼에도 그는 자기 생의 단 하나의 이야기로 버려진 것과의 만남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그런 존재와 교감했던 순간이 자기 삶을 의미있게 만든다는 것을 아직 느끼고 있기 때문이리라.
콜라주, 버려진 것이 그림이 되는
이 책에서 눈에 띄는 표현 방법은 콜라주다. 피카소와 브라크에 의해 처음 세상에 등장한 이 기법은 이제는 참으로 흔해졌고, 숀 탠의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콜라주가 되기 위해 재료는 일단 그 본래 쓰임을 잃어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잃어버린 것'으로 [잃어버린 것]을 그린 것이다.
콜라주를 위해 작가는 우선 ‘나’와 같은 수집가가 되어야 한다. 쓸모없어 보이는 병뚜껑을 모으고, 철 지난 잡지와 신문을 쌓아둔다. 그곳엔 심지어 한 번도 읽어본 적 없고 읽을 생각도 없는 전문 서적이나 모르는 문자로 된 책들도 있다. 온갖 것이 작가의 수집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황금이나 보석과 같은 것들은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 콜라주 작가는 오히려 비에 젖은 흔적이 남은 종이 조각이나 빛바랜 털실뭉치 같은 평범하고 하찮은 것들을 소중히 여긴다.
‘버려진 것’의 형상 역시 콜라주처럼 이상한 것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다. 붉은 용광로 같은 몸통과 집게발, 작은 종과 반짝이는 노란 별까지. 생명체인지 로봇인지 알 수 없는 그 형상은 자연과 문명에서 이중으로 버려진 것들로 만들어 낸 멋진 콜라주다. 그런데 그것의 몸 안에는 우리가 버렸고 세상에서도 지워졌지만 여전히 반짝이는 소중한 것들이 담겨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