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움과 위로, 삶을 시작하는 키워드
유난히 깨어나기 싫은 아침이 있다. 이불 밖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오든 쌓여있는 일들이 무엇이든, 그 모든 걸 무시하고 누워만 있고 싶은 아침.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그런 날이 더 많다고 한다. 유난히 아침잠이 많은 게 아니라, 어젯밤 잠을 설쳐서 일어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무기력이 나를 덮쳐서 일어나기 싫은 아침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깨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게 힘들게 하루를 시작했던 어느 날 [태어난 아이]가 나타났다.
다시 깨어나기 위하여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날마다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우주 한가운데에서 별 사이를 걸어 다녔습니다. 별에 부딪혀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태양 가까이 다가가도 뜨겁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태어난 아이]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는 소방차, 도둑을 쫓는 경찰, 빵가게의 냄새, 넘어져서 생긴 상처 등 일상의 모든 일들이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는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구경하며 자신을 둘러 싼 그 모든 것을 무심히 바라본다. 나에겐 이 아이의 행동이 눈은 떴으나 이불 밖으로 나오기 싫은 날 누운 채로 휴대폰이나 TV를 켜고 다른 이들의 일상을 무심히 바라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무엇을 보든 안전하고, 어떤 정보에 다가가든 아무렇지 않은 시간들. 작가는 그 무심한 시간에 주목하는 것 같았다.
인간은 느끼고 욕망해야 살 수 있다. 뱃사람들이 바람과 조류와 공기의 변화를 읽으며 바다를 항해하듯 자신의 감정을 잘 읽고 해석하는 일은 삶의 방향을 잡는데 꼭 필요한 능력이다. 더구나 잘 느끼되 그런 감정들이 자기를 잠식하지 않도록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엄청난 능력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려면 일단 느껴야 한다. 사노 요코의 유쾌한 통찰은 그 첫 느낌이 ‘부러움’이라고 보는 것이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어느 날 어떤 아이가 다쳐서 엄마 품으로 달려가 울고 반창고를 붙이는 걸 보게 된다. 반창고.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갑자기 반창고가 붙이고 싶어졌다. 한 때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말이 유행했었는데 아이는 부러움 때문에 삶을 시작해 보고 싶다. 그래서 아이는 태어나기로 결심하고, 마침내 태어난다.
반창고가 붙이고 싶어 태어난 아이. 멋진 비유다. 상처 받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 상처를 가려주지만 상처가 있음을 숨기지 않는 반창고.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걸 떼어 올 수 없고, 종종 타인의 손길을 빌어야 붙일 수 있는 그것을 다른 말로 번역하면 위로일 테다. 좀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공감일 것이다. 타인과 공감하는 삶을 살고자 인간은 태어난다.
태어난 아이는 하루를 살고 밤이 되자 이렇게 말한다.
“이제 잘래. 태어나는 건 피곤한 일이야.”
[태어난 아이]는 말한다. 삶은 피곤하다고. 무엇을 원해 삶을 시작했든 위로와 공감보다는 상처가 먼저 오고, 고작 하루를 살았을 뿐인데 심신이 무거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잠들고 다음날 아침이면 다시 깨어나 세상으로 걸어 나간다. 매일 반복되는 그 깨어남은 사실 언젠가 나의 상처에 공감해주고 위로해 줄 누군가가 찾아 올 거라는 희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설령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더라도 하루쯤은 더 견딜 수 있을 거라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용감하게 하루를 보낸 자신에게 위로를 보내보자.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나처럼 힘들게 하루를 시작했을지 모를 가족과 친구들에게 아주 작은 희망의 말을 던져보자. 반창고처럼 흔하고, 별것 아닌 것 같은 공감의 말.
“수고했어.”
“고마웠어.”
모순을 담은 그림
[태어난 아이]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날카로운 선으로 표현된 형태다. 짐짓 공격적으로 보이는 선들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세상을 돌아다니며 어떤 것에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는 장면들과 잘 어울린다. 무뎌 보이는 그 말이 실은 너무나 긴장되어 날카롭게 곤두서 있음을 숨기고 있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부딪히고 데이는 순간에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런 걸 스스로 자각 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다’고 여기면 위로받을 수도 없고, 상처받은 타인을 위로 할 수도 없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다는 말로는 숨길 수 없는 날카로움이 그 사람 주변을 꽉 채우게 된다.
이 책 그림의 두 번째 특징은 각 화면에서 단 두 가지 색상만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 두색은 대개 초록과 빨강 같이 보색이거나 파랑과 노랑처럼 색상차이가 큰 색들이다. 이런 색들은 미술 시간에 배운 색상환에서 찾아보면 가장 멀리 있는 색이다. 그런데 그 둘이 보색대비와 색상대비를 이루며 서로 잘 어울린다. 가장 다른데 잘 어울릴 수 있는 보색.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채 세상을 돌아다니던 아이가 멋진 보물이 아니라 단지 반창고를 얻기 위해 태어난다는 아이러니를 표현하기 위해 보색만큼 어울리는 색도 없을 것 같다. 이는 삶에 가장 극적인 기쁨을 만들어 내는 공감과 위로의 순간이 상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역설과도 잘 통한다. 상처와 위로. 강한 대비가 만들어내는 삶의 아름다움. 그걸 담기 위해 작가는 그렇게 멀리 있는 두 색만을 한 화면에 놓아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