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의 나이에 살아야 하는 '이런' 삶은 무엇일까
여자 나이 서른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얼마 없는 푼돈을 박박 긁어모아 해외 유학을 떠날 때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대부분 비슷했다. 돌아와서 다시 자리 잡으려면 힘들지 않겠어? 결혼은 언제 하려고. 돈은 다시 어떻게 모을래? 그때 나를 향해 쏟아졌던 주변인들의 걱정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나의 밑도 끝도 없이 '불안정한 삶'이었다.
서른. 친구들이 슬슬 사회적인 안정을 찾기 시작하고 평생을 함께할 인연을 만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가던 시기. 나는 사회에서 간주되는 '그 나이에 맞는 정상적인 궤도'를 막 이탈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만의 자유로운 삶을 살겠어! 하고 외치는 영혼도 못 되는 주제에 말이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결코 모른 척할 수 없었던, 삼십 년간 익혀온 사회적 습성으로 단련된 나의 영혼은 적당한 때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 것이 '안정적인 삶'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불안하게 떠나와 어느새 한국이 아닌 곳에서 훌쩍 넘겨버린 삼십 대. 그 십 년의 시간 동안 나는 모래알처럼 자잘하게, 굼벵이보다 느리게, 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내가 자리 잡을 터전은 한국이 아닌 캐나다가 되었고,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결혼을 했으며, 필요하다면 한번 더 박박 긁어모을 수 있는 푼돈을 가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지금 나의 삶은 '불안정'과 '안정' 사이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을까. 서른의 내가 생각하던 적당한 때는 아니었지만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족을 이뤘고 주말에 더욱 감사할 줄 아는 직장인으로 복귀했으니, 이 정도면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면서 나는 이곳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을 떠올렸다. 흔히 생각하는 '이 정도의 나이에는 이런 가정을 꾸리고,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와 같은 고정관념, 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했다는 이유로 정답이 되어 버린 '이런'을 버리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을 택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가족의 모습을 말이다.
#_ 아내와 아내
캐나다에서의 첫 직장 생활. 휴게실 구석에서 조용히 점심을 먹고 있던 내게 A가 다가와 긴 웨이브를 찰랑거렸다. 나 머리 새로 했는데, 어때 보여?라는 의미를 담은 몸짓이었다.
이렇게 웨이브를 해보긴 처음이라 좀 어색하네. 그래도 와이프가 좋아하니까 참아보려고.
와이프?
응, 몰랐어?
A는 이제 막 직장 생활을 시작한 내가 놓친 정보를 알려주려는 요령으로 결혼반지를 낀 왼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덕분에 나는 A가 유부녀라는 정보를 습득했지만, 왜 그녀에게 '와이프'가 있는지에 대한 추가 정보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 이게 우리 웨딩 사진이야. 어리둥절해 있던 나에게 A가 보여준 휴대폰 속 사진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두 명의 신부가 서로를 마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동성 커플의 결혼이 합법인 캐나다. 하지만 해외 생활이 익숙지 않았던 내게 그것은 무척 낯선 가족의 형태였다. 특히 A와 그녀의 아내는 lipstick lesbian, 즉 화장을 하거나 치마를 입는 등 외모적으로 여성스럽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레즈비언이었기에 더 눈치채기 힘든 경우였다. 사실 그날 이후에도 나는 여성스러운 A에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공들여야 했다.
동성 커플들도 여느 부부들처럼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A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고민 끝에 입양 대신 A의 아내가 정자은행을 통해 임신과 출산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아내의 육아를 돕기 위해 잠시 휴직을 하기도 했던 A의 모습은 가족을 위하는 여느 부모의 모습과 꼭 같았다. 지금까지도 A 부부는 생물학적 아버지와도 꾸준히 교류를 맺으며 아이의 성장과정을 알려주고 있다고 했다.
A의 가족은 대부분의 가족들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A의 삶은 불안정한 것일까? 내가 본 그녀는 분명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나는 그녀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불안정하게 여기는 이유는 내가 가진 '다름' 때문이 아니라,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A의 가족. 삶을 사는 방식에는 한 가지 정답만 있진 않을 터였다.
#_ 부부 아닌 파트너
여자 친구를 사랑하지만 결혼을 하고 싶진 않아.
T가 내뱉은 속내의 중심에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그 여자 친구가 나였다면 그의 말은 아마도 사랑하지만 결혼을 하고 싶진 않다=결혼을 결심할 만큼 나를 사랑하진 않는다=불안정한 관계=헤어짐 식으로 해석되었으리라. 더욱이 내가 T의 여자 친구처럼 열 살이나 연상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T의 여자 친구는 나와 달리 (예쁘고 능력도 있으면서)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연인으로서 T가 보여준 모습을 믿었고 그가 결혼을 원하지 않는 것을 존중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결혼을 통한 부부 대신 동거를 통한 파트너가 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 Common law relationship:
법적으로 결혼을 하진 않았으나 동거를 통해 그와 비슷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아이를 공동 양육하거나 공동 재산 또는 계좌를 소유하며, husband와 wife 대신 partners 또는 spouses로 불린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결혼과 동거가 지니는 차이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헤어질 시 재산 분할 기준이 다르다는 것,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서로를 남편과 아내 대신 파트너라고 칭하는 것, 남자의 성을 따르는 대신 각자의 성을 유지하는 것 정도? (요즘은 기혼 여성도 본인의 성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남편과 나의 성을 합친 Raykwon을 쓰기도 하지만 법적으로 남편의 성을 따르진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차이가 과연 두 사람의 실질적인 관계에 영향을 주는 것일까?
서로의 인생 파트너로 가족이 된 지 5년 차. T 커플은 여전히 새로 시작하는 연인처럼 달콤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같이 사는 집에서 자식처럼 여기는 강아지를 키우며, 특별한 날마다 함께 서로의 부모님을 찾아뵙는다. 내게 그들의 모습은 법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을 뿐 여느 부부의 그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T가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을 때, 나는 두 사람의 완벽한 관계를 '결혼'이라는 제도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불안정한 삶'이라 단정 지었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그것은 단순히 T와 나의 개인적인 성향의 차이였음을 깨닫는 중이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말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삶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부족하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든,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불안정한 삶'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_ 전업 주부의 꿈
프로그램 개발자였던 E의 현재 직업은 전업 주부. 아내가 출근을 하는 주중에는 두 아이의 도시락과 등하교 준비가 모두 그의 몫이다. 전쟁 같은 오전 시간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을 픽업하러 가는 오후 세시까지, 짧은 서너 시간만이 오롯이 그를 위해 주어진다.
이십 대 중반. 그는 남들과 비교하면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대학에서 만난 여자 친구와 순탄한 연애 시절을 거쳐 이룬 가정이었고 곧바로 아이들이 태어났다. 그의 삶은 모든 것이 '적당'해 보였다. 실제로는 이루기 어렵다는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은 그를 두고 하는 말 같아 보였다.
나 회사 그만뒀어. 보드 게임 개발해보려고.
E가 퇴사 소식을 전하던 날,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보드 게임을 좋아하는 그의 성향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안정적인 인생의 중심에 있던) 한 집안의 가장이 꿈을 좇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한 순간 백수가 된 그는 전업 주부로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며 틈나는 시간마다 보드 게임을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3년째. 그의 일상은 아직까지 큰 변화 없이 계속되고 있다.
상황은 다르지만, 나는 E를 통해 서른의 나이에 한국을 떠나던 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나이에 맞는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하며 '불안정한 삶'의 표본이 되었던 그때의 나를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에게 묻고 싶었다. 모두가 불안정을 안정으로 바꾸기 위한 삶을 사는데, 어떻게 혼자서 겁 없는 역행을 할 수 있느냐고.
하지만 E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아니, 그의 가족 모두가 침착했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던 아내는 E의 꿈을 지지하며 풀타임 직장인이 되었다. 가족 중 누군가는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면 누군가는 집안일을 책임져야 했고, E는 전업 주부의 역할과 보드 게임 개발 모두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일하는 엄마와 집안일을 하는 아빠가 특별히 다르게 느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E의 꿈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성공적으로 보드 게임을 제작하지도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누군가에겐 더 이상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 처음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E의 가족은 차분히 그 변화를 받아들이며 든든하게 그의 지원군이 되어 주고 있다. E의 꿈이 언제 빛을 발하게 될진 몰라도 그 꿈을 믿어주는 가족과 함께라면, 그 삶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마흔이 다가오는 나이. 나는 여전히 '적당하게 안정적인 삶'을 꿈꾼다. '안정'이라는 기준은 저마다 달라서 누군가의 '적당하게 안정적인 삶'은 이미 내가 이룬 것일 수도, 혹은 감히 도달할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 누군가에겐 마흔의 내 모습이 서른의 그때와 다를 바 없이 제자리걸음일 수도 있겠고. 그래도 지금의 내겐 타인의 시선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지금 나의 삶은 '불안정'과 '안정'사이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을까.
남편과 손잡고 동네를 걷다가 카페에서 책 한 권 읽고 집으로 돌아오는 주말의 시간. 내가 생각한 '이 정도의 나이에는 이런 가정을 꾸리고,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의 '이런'을 실천하고 있는 요즘이다.
지금 나는 '적당하게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삶이 계속되기를 꿈꾼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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