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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하는 킴실 Jan 05. 2025

치명적인 귀염뽀짝

무해력(Embracing Harmlessness)의 준거 영역에 대해

솔직히 처음이다.

제목은 매년마다 어디선가 듣고 봐왔지만 이 책의 페이지를 넘겨본 것.

트렌드 코리아 2025



'어차피 빠른 속도로 변하는 트렌드를 굳이 일일이 알아서 무엇하리, 난 이미 피곤하고 할 일이 많잖아.'

아직 한 번도 안 읽어본 분들이 있다면 나와 비슷한 연유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일단 선정된 열 가지 트렌드 키워드를 훑어보면서 이미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점은 선정된 키워드가 주로 두 가지 단어가 합쳐진 합성어 같은 느낌인데 해당 키워드와 한 줄 해석을 보면 바로 전체적인 이해가 돼버리는 단어 선정의 적절함 때문이었다.



아무튼 거두절미하고 내가 유심하게 본 챕터는 '무해력'이다.


작거나 귀엽거나 서툴지만 순수한 것들이 사랑받는다. 이처럼 작고 귀엽고 순수한 것들의 공통점은 해롭지 않고, 그래서 나에게 자극이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며, 굳이 반대하거나 비판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을 '무해함'으로 범주화하고, 이렇게 무해한 사물들의 준거력(referent power)이 강해지는 현상을 '무해력'이라 부르고자 한다.

(트렌드 코리아 2025, p.227 부분 발췌)



나는 귀여운 것에 대한 열망보다는 매력적이고 고유한 쪽에 대한 관심이 좀 더 많은 편인지라 평소 귀여운 것을 수집하거나 귀염뽀짝한 것을 소유하고 싶어서 지갑을 여는 일은 잘 없는 편이다.

아, 그래도 가방에 거는 키링은 나도 관심이 많다는 걸 자판을 두드리면서 지금 막 깨달았다.



역시, 나에게도 무해력은 순간순간 행사되고 있었다.

책을 읽다 보니 미니벌스의 홈가전, 어항, 작은 주스, 핑크 도넛 따위를 나도 만들어서 수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버리기도 했는데 품절되어 비싸게 팔리고 있어서 빠른 손절 했다.

귀엽고 무해하기까지 한, 너무나 작고 아기자기한 미니벌스 제품들은 나에게 마치 16부작 중 10여 편은 남은 인생 드라마처럼 내일을 향한 기대감 마저 품게 할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말이다.


깨알 같은 타피오카 표현력 보소



무해력의 여러 모습들 중에서 나는 아마도 '앙증 깜찍, 작아서 무해한 것'에서 힐링을 얻는 편인가 보다.

또 다른 모습에는 푸바오나 레서판다처럼 '귀여워서 무해한 것', 모든 면에서 출중해 보이는 사람의 의도치 않게 어떤 부분에서 '서툴러서 무해한 것'이 있다고 한다.




코로나 블루 시기에 많은 사람들을 열광하고 줄 서게 했던 '푸바오'.

나는 푸바오를 싫어하거나 다른 감정이 있는 건 전혀 아니지만 굳이 어마어마한 줄까지 서가며 펑퍼짐한 엉덩이를 바닥에 깔고 대나무 먹방을 해치우는 저 판다를 보며 감탄해야 하나?라는 사람이었다.

먹고 눕고 사랑하라




무해력에 대한 카테고리를 읽어가며 나름의 고찰과 멍때림을 반복한 결과, 직업병이 또 도졌다.




자극이 난무하는 무한 경쟁 시대에 너무나 작고 앙증맞아서 혹은 보기만 해도 Sooooo 귀염뽀짝해서 나의 마음을 치유해 주고 잠시나마 나의 생각을 정화해 주는 것이 무해함의 순기능이라면.

너무 작은 소품은 뭐가 뭔지 구분이 잘 안 가서 불편하기만 하고, 제 아무리 세상에서 제일 귀엽기로 소문난 존재일지라도 시각의 손실로 인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라면 무해함의 영향력은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든 것이다.




아마도 순수대충 무해력, 서툴러서 무해한 어떠한 것들은 무해력을 끼칠 수 있을 테지만 그 외 시각적인 요소들로 어필되는 치명적인 귀여움과 너무나 작고 소중함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어 무해력이 도무지 도달하지 못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챕터의 끝자락에 도달하는 순간 이런 내 마음을 슬쩍 들키기라도 한 듯 응어리를 풀어주는 문장을 만났다.



무해한 예능, 무해한 인간관계, 무해한 이슬람, 무해한 돈벌이 등... (중략)
무해함을 이토록 강조한다는 사실은 이미 그만큼 우리를 해치려는 것들이 많아졌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무해력은 단지 귀여운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살아남는 생존의 비결이 됐다.

(트렌드 코리아 2025, p.249 부분 발췌)



흑심을 채우려는 게 아니고요


남보다 일단 내가 먼저 한 발이라도 앞서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치고 올라가야 생존할 수 있는 과열된 이 사회에서 당신도 나도, 우리 모두 사실은 지칠 때가 많다.



무해한 사람이 될게요, 당신에게 상처 주거나 해치지 않을게요.
그냥 옆에 잠시만 있다 갈게요.


예전에 한 때 유행했던 프리허그가 생각난다.

FREE HUG가 그토록 유행했던 이유도 무해력이 이슈 되고 있는 이유와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한다.



우리 서로에게 무해한 사람이 되어봐요.

무해한 눈빛과 무해한 마음으로.

잘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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