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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스러웠던 화장실과 주유 해프닝

당시에는 당황스러워서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by 크엘

문화는 정말 다양하다.

타국에서 어릴 때 살았던 경험 덕분에 나는 타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데에 스스럼없는 인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늘은 다소 혐오감을 감수하고 쓰는 주제지만 사람에겐 먹고 싸는 게 중요한지라 한 번 다뤄보고 싶은 주제이다.

불쾌감을 느끼시는 분은 사전에 패스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



현지에서 처음 학교에서 화장실을 갔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문이 없었!

신호는 자꾸 와서 죽겠는데 주기적으로 냇물 흐르는 소리도 난다. 소리 나는 곳을 보니 저 끝에서 자동으로 화장실 물이 내려지고 있었다.

가까운 칸에 사람이 앉아있어서 다른 칸을 슬쩍 들여다본다. 당장 급하니 사람이 없는 칸에 들어가서 볼일을 보고 나오긴 했는데 뭔가 찜찜했다. 친구들에게도 조금 떨어져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독립된 공간, 타인의 시선을 느끼지 못하는 곳에서 뒤처리를 하는 게 아니라 반 정도는 공개된 공간이었다. 칸은 나눠져 있어서 다 보이지는 않지만 문은 없고 밑에 일자로 연결된 또랑 같은 구조인지라 물이 흐르면 다른 사람의 XX이 보였다. 오마이가쉬~~반 친구 피셜, 그때 당시에는 이것도 나름 깨끗한 신식이었단다. 생각해 보니 집 근처에 있는 무료 공중화장실은 아주아주 깊은 푸세식이었다. 밑을 내려다보면 내 눈만 베린다... 안 본 눈 사요~


다 커서 중국으로 출장을 갔는데, 우리네 화장실처럼 단독으로 나누어진 개별적인 공간에 들어가서 볼일을 보는 시스템이 대부분이었고 어떤 대규모 공장이었던가? 딱 한 곳에서 어렸을 때 그 화장실을 다시 만났었다.


시골도 한번 가봤는데 거기는 붉은 흙에 물이 고이면 발이 푹푹 빠지는 곳이었다. 화장실은 그 단단한 흙을 고랑 파듯 파내고 주변에 벽을 세워둔 구조인지라 일정 기간이 흐르면 누군가가 들어가서 오물을 퍼내야 했다.


우스갯소리로 시골에서는 실내에 변기가 설치된 곳에서 해프닝이 발생한다고 했다. 간혹 날씨가 너무 급격하게 추워져서 수도관이 얼은 줄도 모르고 볼일을 봤다가 물이 안 내려가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정말 다행인 것은 듣기만 했다. 그들은 직접 체험하고 보고 말하는 거니까. 따쉬... 상상하기 시르다 정말... 그래서, 암 쏘 럭키...



아이 때 내가 살던 동네에는 개인자가용을 끌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정부기관에 재직하는 분들이 홍치红旗 브랜드의 차량에 탑승하신 건 몇 번 지나가며 우연히 본 적이 있다. 대부분은 자전거를 이용했고 나도 3년 정도 타고 다니니 페달에서 발을 떼지 않고도 정지선에 맞춰 자전거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서 그런지 종아리가 아주 튼실해졌다. 자전거 부작용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사실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잠시 삼천포로 빠지긴 했는데, 그래서 엄마 지인을 통해 내 생일날 학교 앞에 외제차를 대기시켰다가 부잣집 아가씨처럼 하교했던 날은 아이들의 엄청난 주목을 받는 날이기도 했다. 왠지 너무 부끄러웠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차에 탑승했다.

성인이 되어 중국에는 한국에서보다 더 많은 외제차를 볼 수 있었다. 내연기관차가 성행하던 시절이었고 우리는 현ㄷ, 기ㅇ차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중국은 외제차(합자기업)가 압도적이었다. 요즘은 중국산 전기차로 싸아악 바뀌었다.

아직 내연기관차가 대세였던 그때 거래처 대표를 길가에서 1시간 정도 기다렸다. 연락도 안되고 길에 서서 1시간이라니... 만나서 자처지종을 들어보니 10분 거리 앞에서 연료가 다 떨어져서 그 먼 길을 걸어 가장 가까운 주유소로 걸어가서 기름통에 연료를 받아다가 넣고 왔다고 하는 것이다. 손님을 맞이하러 가는 길이라서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좋은 차로 맞이해야 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무거운 통을 날랐다고 한다. 약속에는 늦었지만 우리를 귀히 여겨 준 그 예쁜 마음씨에 너무 감동했더랬다. 한국이었다면 자동차 보험사에 전화해서 출동서비스를 받았을 텐데 혹시 그런 서비스가 없을지도 모르고, 혹여나 있었는데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이면 민망할 수도 있어서 너무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도 못했다.


당시 상황 때문에 당황스러워서 생각지 못했던 친절함이 그 안에 배어있었고 지금 그때를 돌아보니 참 고마운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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