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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와 광장춤, 태극권

당시 최강의 이동수단과 즐길거리

by 크엘

지금은 사라진 자전거 부대, 90년대 후반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통학, 통근을 했다. 차도에 차보다 많은 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동남아의 어떤 나라에서는 누구나 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지 않는가? 그런 느낌이었다.

남녀노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탈 줄 알았고, 타고 다녔다. 버스도 물론 있었지만, 자전거는 한 번 구매하면 오랫동안 탈 수 있으니 버스보다 돈을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전거 바퀴에 펑크가 난다고 해도 수리점이나 길가에서 수리를 해주는 분들은 어디에나 많았다. 게다가 그때 돌아다니던 버스는 굉장한 나무늘보 같았다. 자전거를 타고 5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면 버스는 40분 정도 걸리니까 차라리 돈들이지 말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게 훨씬 경제적인 선택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심지어는 추운 겨울에도 빙판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아끼는 만큼 자전거 도둑도 참 많았다. 잊지 않고 열쇠를 잘 채워두고 다녀야 했다.

나도 그렇게 조금씩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눈이 갔었고 특히 빨간불 앞에서 자전거 페달에서 발을 떼지 않고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감탄했더랬다. 결국 배워서 등교할 때 타고 다니게 됐다. 덕분에 튼실한 종아리가 생겼지만 자전거를 타면 싱그러운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빠르게 지나가는 주변 풍경덕에 속도감을 느끼며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1시간가량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건강해지고 살도 빠졌다. 내가 사는 도시의 새로운 면모도 많이 알게 되었다. 조금 충격적이었던 건 워낙 사람들이 자전거를 일상에서 많이 타고 다니다 보니까 치마를 입은 분들도 치마 아랫단을 잘 여며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이디어가 좋았다. 그리고 황사가 워낙 많은 동네인지라 얼굴에 스카프를 쓰고 다니시는 분들이 정말 많았는데 앞이 안 보이면 어쩌나 하고 대신 걱정해주기도 했었다.

매일같이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 맞다. 매일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니 나도 드디어 페달에서 발을 떼지 않고도 제자리에서 자전거를 멈춰 세울 줄 알게 되었다. 그때 얼마나 으쓱으쓱 했던지 모른다. 지금은 하라고 해도 못한다. 여의도 광장에서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보려 했다가 중심도 잘 못 잡고 계속 넘어지려고 해서 후딱 반납해 버렸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오늘은 왼쪽 골목으로 내일은 오른쪽 골목으로 다니며 도시의 여러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쪽 길로 가면 맛있는 두부 간식을 파는 아주머니가 계시고, 저쪽으로 가면 항상 유리를 깨끗하게 청소해 놓은 약국이 나온다. 조금 더 가게 되면 맛있는 빵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공원에서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춤을 추는 모습.jpg


어느 날은 전자상가를 가던 길에 도로 옆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다. 보통은 넓은 공원에서 광창우广场舞라고 부르는 광장춤(광장무, 집단가무)를 추는데 길가에서 추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길게 늘어서서 길을 따라 움직이며 춤을 추시는 모습이 참으로 신기했다. 더 신기했던 기억은 그 와중에 저 멀리서 어이~~ 나도 끼워줘야지~~라며 크게 외치는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는 엄청 빠른 속도로 자전거를 타고 와서는 춤추는 사람들과 아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더니 대열에 쏙~하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이 아니었다.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 호구조사가 들어가는 걸 보고 알게 된 것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누구든 받아주면서 춤을 추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공원에서 중국 전통복장을 입고 태극권하는 할아버지.jpg


큰 공원에 산책가게 되면 항상 태극권을 하시는 연세 많으신 분들이 계셨다. 너무 진지하고 집중하고 있는 모습에 단 한 번도 말을 걸어본 적은 없지만, 조용히 내공을 쌓는 무림고수 같은 모습이 말 한마디 나눠보지 않았어도 참으로 인상 깊었다. 아이의 시선으로 본 외국은 항상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 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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