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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큰철 Aug 27. 2019

무너지는 경계에 서서

<독서의 역사>를 읽고

독사라는 직업이 있었다. 노동자들이 줄줄이 앉아 시거를 마는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동안 그들의 옆에서 책을 읽어주는 역할이다. 지루한 작업시간 동안 독사가 읽어주는 책 속의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시간도 금방 가고 일의 능률도 올랐으리라. 그리고 모두가 같은 이야깃거리를 공유하니 쉬는 시간에도 심심할 틈이 없었겠다.


책을 읽어주는 독사의 역할은 지금의 오디오북과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독서의 경계를 어디까지 봐야 하느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쳐놓는다. 명상 수업 때 듣는 선생님의 좋은 글귀가 독서라고 할 수 있을까. 라디오로 듣는 이야기도 독서의 범위에 들어갈까? 그 이야기에 음률이 추가되어 우리가 흔히 듣는 노래가 된다면 어떨까. 한술 더 떠 영상까지 얹어 영화가 된다면 그 영화를 보는 것도 독서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흔히 독서를 한다고 말했을 때, 무슨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한 독서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콘텐츠에 휩쓸려 살고 있다. 재밌는 것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남들 보는 거 다 찾아보기도 벅차다. 그러다가도 내 시간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이 든다. 나는 딴짓하면서 책을 읽을 수 없다. 책 읽을 땐 음악도 듣지 않는다. 이런 준비 조건들이 자연스럽게 나만의 시간을 갖도록 만든다. 물론 음악이나 영화를 보면서 내 시간을 만들 수도 있지만 너무나 산만한 나의 집중력이 문제다. 책은 읽지 않으면 진도가 한 발자국도 넘어가지 않기 때문에 강제로 독서 모드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장점이 있다."

올초에 <독서의 취향>이라는 글을 썼다. 나에게 독서란 "내 시간을 갖는 것"이다. 산책을 하거나 멍 때리면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통로는 독서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익숙한 텍스트가 주는 편안함이 있다. 복잡한 용어가 난무하거나 영어로 된 책을 읽으면 통로는 절대 열리지 않는다. 적당히 다른 생각이 떠오를 여지가 있을 때 재밌는 생각이 팍팍 떠오르곤 한다.


익숙한 소리, 편안한 영상은 어떨까  

슬로 콘텐츠라는 게 있다. 자연풍경, 소가 풀을 뜯어먹고 파리를 좇는 모습, 기차가 운행하면서 나는 소음과 그 풍경을 담은 영상이다. 90년대 노래방 배경으로 나올법한 영상들을 일부러 찾아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가만히 보다 보면 멍해진다.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듯 하지만 이는 산책할 때, 독서할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구성만 잘 갖추면 독서의 효과를 주는 영상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다. 느린 화면 전환과 전개 방식으로 책을 읽은 느낌을 주는 영화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도 1963년 자신의 첫 영화  <sleep>에서 시인인 존 조르노가 잠자는 모습을 장장 5시간 동안 보여줬다고 하니 빠르고 자극적인 것만을 추구할 것 같던 영상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음 세대의 독서방법 

이쯤 오니 미래의 사람들도 책을 읽을지 궁금하다. 내가 영어책로된 책을 읽으면 독서하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듯이 텍스트보다 영상이 익숙한 미래세대 들은 다른 방법으로 독서의 효과를 찾지 않을까? 과도기에 살고 있는 텍스트 세대의 입장에서 이해하기도, 추측할 수도 없지만 흥미진진한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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