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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UNGIL큰길 Feb 01. 2022

담배 연기 가득한 술집, 혼자 생맥주 3잔




비록 원래 가려던 좋은 레스토랑에 가진 못했지만 가끔 방문하는 곳에 오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이 식당에서 종종 혼밥이나 혼술 하는 사람을 봤던 터라 나 혼자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많아 쾌쾌한 담배 연기와 냄새는 좀 거슬렸다. 그 외에는 나무랄 게 없었다. 직원들도 친절했고 허기진 배를 달래기에 음식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나라에서 구하기 힘든 생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나는 이내 음식과 맥주를 주문했다.


기다리던 500cc 한 잔과 터키식 바비큐가 나왔다. 먼저 맥주를 쭈욱 들이켰다. 역시 빈속에 마시는 맥주의 맛이 일품이었다. 이내 불 향기 가득한 치킨을 입에 넣으니 행복이 따로 없었다. 허기진 배를 달래는 동안 머릿속에 계속 맴돌던 불편한 생각들이 잠시 잊히는 듯했다. 음식과 맥주로 배를 채우며 나름의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고 있던 중 전화 진동음이 울렸다. 아내였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이번엔 카톡 메시지 표시와 함께 진동이 울렸다.


“아빠 어디야? 왜 이렇게 늦게 와?”


아내의 전화기로 아이가 카톡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아마도 전화를 걸었던 것도 아내가 아니고 아이였던 것 같다. 카톡을 확인한 후 회신을 할지 말 지 망설이던 중 또다시 전화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귀가가 늦는 아빠 걱정에 전화와 카톡을 연이어 보내고 있는 아이를 생각하니 순간 짠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민석이니?”


“여보세요. 아빠!, 아빠 왜 집에 안 들어와? 또 술 마셔?”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어색하지 않게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아니야. 일이 많아서 오늘부터 계속 집에 늦게 들어갈 것 같아. 아빠 기다리지 말고 일찍 자. 알았지?”


아이는 내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안심이 됐는지 ‘응, 열심히 해’ 라며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이를 안심시키려 거짓말을 한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고, 한 편 나를 걱정해주는 아이 생각에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하며 순간 여러 감정이 오고 갔다. 아이 생각에 불과 몇 분 거리의 집을 한 걸음에 달려가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혼자 만의 시간을 더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음식과 함께 맥주 500cc 세 잔을 마시니 배가 가득 차올랐다. 더는 마실 수가 없어 배도 꺼칠 겸 잠시 숨을 돌리며 주변을 천천히 살펴봤다. 술집에는 현지인으로 가득했다. 사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백인에 가까운 피부색을 하고 있어서 누가 현지인이고 유럽인인지 알 길이 없었다. 확실한 건 식당 안에서 동양인은 나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식당의 실내 풍경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그동안 누군가와 함께 왔던 익숙한 장소였지만 혼자 와서 술을 마신  처음이라  그랬던  같다. 동양인 혼자  마시는 모습에 호기심을 느꼈는지 이따금씩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곳에서 나는 ‘이방인이었고, 마치   곳을 여행하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취기가 올라와서 느껴진 기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일상에서 벗어난 낯선 행동에 나의 시야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익숙한 생활 곳곳에도 낯선 환경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도…만날 퇴근하면 집에 들어가기 급급했었는데 ‘가끔씩의 의도적 일탈도 나쁘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저녁 10시가 되자 점원이 다가와 가게 문을 곧 닫는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약간 들뜬 마음에 한 잔 더 하고 싶었지만 그 시간 갈 곳도 더는 없었다. 짧았던 일탈을 접고 집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아내와의 싸움으로 인한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내 기분은 한 층 가벼워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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