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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UNGIL큰길 Feb 09. 2022

아내와 싸운 후 나는 왜 인생계획을 세웠을까?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왔다. 집안은 고요했다. 나도 조용히 씻고 비어 있는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전날과 마찬가지로 아내와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출근을 위해 집을 나왔다. 집에서 나오면서 들었던 생각이 “오늘 저녁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나?”였다. 다행히 퇴근 후 탁구 모임이 있었다. 탁구를 치고 나서는 보통 간단히 술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곤 했다. 이번에도 퇴근 후 탁구 모임은 어김없이 저녁 식사까지 이어졌다.


코로나로 모인 사람은 나를 포함해 세 명뿐이었다. 근처 술을 파는 식당으로 선택한 곳이 어제 혼자 갔던 그곳이었다. ‘이틀 연속 같은 곳에서 술을 마실 줄이야.’ 그래도 다른 누군가와 갈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취기가 올라오자 다른 사람들에게 내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래도 꾹 참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런데 그 다짐은 곧 무너지고 말았다.


“사실 저는 지난 12월 31일 이후 아내와 싸움이 있고 나서 2주 넘게 이야기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저녁을 집에서 먹은 적이 없습니다.”


내 이야기가 아니었다. 함께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분이 한 말이었다. 나는 지금의 내 상황과 똑같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12월 31일은 지금 함께 있는 우리 셋을 포함해 총 네 가족을 초대해 그분의 집에서 파티를 했었던 날이기도 하다.


“왜요? 12월 31일이면 댁에서 가족들 모여서 자정까지 파티한 날 아닌가요?”


그날 우리 때문에 부부싸움이 있었던 듯했다.


“예. 맞습니다. 모두들 가시고 정리를 하는데 아내가 짜증을 내더군요. 저는 그런 아내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초대를 받아서 간 모임이긴 했지만 다섯 가족 모임을 준비하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아내와 싸운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이야기를 하면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실 저도 며칠 전 아내와 싸운 이후로 집에 들어가기 싫어 밖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여기에 혼자 와서 술을 마셨었습니다.”


이곳에서 전 날에도 혼자와 술을 마셨다고 하니 다들 놀래는 눈치였다.


“혼자서 술을 마실 일 있으면 연락을 주시지 그랬어요?”


“아니에요. 나름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가졌고, 그 시간이 제겐 아주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서로 비슷한 상황의 상대를 보니 어느 정도 위로가 되는 듯했다. 그리고 그를 통해 나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듯했다. 술과 함께 이야기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다시 다음 날이 되었다. 아내와는 아무런 진전이 보이지 않았다. 이틀 연속 술을 마시니 몸의 피로도 쌓이는 듯했다. 출근길 ‘오늘 저녁은 어디서 뭐 하나?’라는 생각과 함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몸이 피곤해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의 무계획은 퇴근 시간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퇴근 후 나는 무언가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중장기 목표와 함께 목표 달성을 위한 실행 계획표였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아내와 싸운 후 일탈을 생각했던 나였는데 지금은 목표를 세우고 있다니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마도 2022년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다른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목표를 세우며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을 하나하나 적어보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목표가 하나씩 정리되며 실행계획을 위한 칸을 만들어 가자 가슴도 뛰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삶의 의욕인가?”


몇 시간 집중을 하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벌써 저녁 9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시계를 보고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알아차리자 배고픔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회사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일식당이 새로 생겨 가보기로 했다. 시간이 늦어 식당 문이 닫혀 있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때까지 열려 있었고 음식 주문도 가능했다. 나는 연어 채소 덮밥과 캘리포니아롤을 주문했다. 배가고파 평소 먹는 양 보다 많은 양을 주문했다. 약 20분이 지나서야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그러나 내가 음식을 다 먹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고 나니 뱃속이 편안해졌고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제 다시 집으로 잠을 자러 들어가야 했다. ‘이 시간쯤이면 아내와 아이가 자고 있겠지?’ 여전히 나는 집에 들어가길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의 변화가 조금씩 생기고 있음을 느꼈다. 아내를 향햔 화가 조금씩 수그러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뱃속이 충만해지니 마음도 평안해져서 그런 것일까? 아님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시간이 해결해주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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