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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근 Jan 03. 2018

스타 디자이너의 개념은 정답인가?

좋은 개념과 이기는 전략은 고객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국내 디자이너보다 외국 디자이너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가 참여 했다고 홍보해야 마케팅에 유리할 것이다. 디자인 강국인 영국은 70년 전부터 정부가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닫고 국가 성장 전략으로 삼고 육성했다. 하지만 우리는 먹고사는 일이 먼저였기에 출발도 늦었고, 정부나 민간 기업에게 디자인은 이차적인 존재였다. 외국의 좋은 디자인을 로열티없이 모방하면 되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이러다 보니 디자인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보다는 눈에 보이는 예쁜 모양에만 관심을 가졌다. 한양대 홍성태 교수는 

“디자인에서 앞선 나라의 디자이너가 한국 디자이너보다 잘하는 것은 그림이 아니라 ‘리서치와 포지셔닝’이다. 디자인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사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 샘앤파커스, 2012)

외국 디자이너와 협업을 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디자인 개념을 설득하기 위해 역사적인 사례부터 최근에 트렌드까지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보여준다. 자신의 개념이 단순히 번뜩이는 영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에 비교해 국내 디자이너는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기보다는 “그냥 멋있지 않아요?”, “예쁘잖아요”라는 말로 고객을 설득하려 한다. 그림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에 정답은 없지만, 설득은 꼭 필요하다. 이제는 우리의 디자인도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글로벌 고객 설득을 위해 논리적인 근거를 찾아내는 훈련을 우리는 좀 더 해야 한다. 그들의 문화, 언어, 생활 습관까지 관찰하고 고민해서 디자인 개념을 끌어내야 한다.


하지만 돈이 많은 고객은 디자이너의 이런 고민을 통한 결과보다는 자본의 힘을 보여주는 데 더 관심이 많다. 1997년 준공한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Bilbao)을 디자인한 스타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 1929~)에게는 그의 건물을 갖고 싶어 하는 개인과 기관들로부터 설계 요청이 쇄도했다. 그들은 크게 다른 건물을 원하지 않았다. 자신들도 같은 지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복제품, 그저 관광객 유치와 명성을 위한 크고 현란한 건물을 원했을 뿐이다. 렌조 피아노(Renzo Piano),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 자하 하디드(Zaha Hadid) 등의 스타 건축가에게 인간이나 사회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건물이 아니라, 그저 누가 그 건물을 디자인했고, 거기에 누가 돈을 냈는지를 큰소리로 외쳐줄 상징적인 구조물을 설계해 달라는 간곡한 요청이 들어왔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건축비평가 마일스 글렌다이닝(Miles Glendinning)은 ‘거대 자본과 거대 건축물 간의 완벽한 결혼’이라고 표현했다. 

“건축의 자본주의적 혁명에 대해 미사여구를 잔뜩 늘어놓는 사람은 이런 건축물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광고의 역할까지 해준다며 들떠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있어 건축이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장에서의 우위를 추구하려는 ‘과도한 합리성’에 나온 ‘권모술수에 능하고 냉정한 마키아벨리(Machiavelli, 1469~1527)같은 사업가’가 되는 방편에 불과하다.”라고 거대 자본이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을 냉철하게 분석했다. 


서울에도 스타 건축가가 디자인한 건물이 많다.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강남 삼성동의 ‘구 현대산업개발 사옥(아이파크 타워)’을, ‘렌조 피아노’는 광화문 ‘KT 신사옥’을, ‘자하 하디드’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을 디자인했다. 이 건물들이 글렌다이닝이 이야기한 ‘거대 자본과 거대 건축물의 결혼’이라 이야기하면 너무 곡해한 것일까?

[ 다니엘 리베스킨트_Daniel Libeskind ]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아이파크 타워 준공 후 국내언론과 한 인터뷰 내용이다. (동아일보, 2005년 2월 18일)

 “이방인(Stranger) 차원에서 느낀 것이긴 하지만, 서울과 강남의 인상은 역동성과 흥분으로 요약됩니다. 그런 힘 있는 거리 분위기와 호흡하기 위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해체적 설계를 기획하게 됐습니다. 건물 외부는 자연을 상징하는 거대한 원과 첨단기술을 상징하는 빨간 사선 문양들로 구성했고, 건물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관통하는 원통 막대기는 ‘소통’을 뜻합니다. 사람들이 건물과 대화하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아이파크타워는 도시인들을 끊임없이 각성하게 만드는 ‘지식의 원천’이며, 건물 안에서 일하는 사람, 건물, 건물 밖에서 보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3차원 연극무대의 중심점’입니다.”이라고 말했다. 


삼성동을 지날 때마다 이 말을 생각하며 건물을 바라보지만,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기억나는 건, 주 출입구에 캐노피(canopy)가 없어 비가 올 때 우산을 펴고 접기 불편해 짜증나던 일 뿐이다.

[ 삼성동 '아이파크 타워' 전경과 주 출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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