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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근 Jan 11. 2018

솔직함과 당당함

자신앞에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고양이 추울까봐 길에 앉아 품어주는 꼬마 아이'라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봤다. '날이 추운데 꼬마 아이가 고양이를 부르자 다가와서 품에 안고 있었다'고 한다.

쓸데없는(?) 생각만 하는 어른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꼬마 아이는 추워하는 고양이가 품안에 달려들자 자신의 온기를 나눠줄 생각만 했을 것이다. 내가 추우면 남도, 동물도 추울것이라는 솔직함이 당당함을 만들어 누가 보든 말든 아예 바닥에 앉아있다. 




'솔직하다'는 '거짓이나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음'을, '당당하다'는 '남앞에 내세울 만큼 모습이나 태도가 떳떳함'을 뜻한다. 난, 어른이 되고 나서 솔직함으로 당당함을 느껴 본 적이 있나?


예수님은 어린아이에 대해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마가 10장 14절, 누가 18장 16절)이라고 했다. 

중국의 철학자 이지(李贄, 號는 卓吾, 1527~1602)는

 “무릇 동심(童心)이란 진실한 마음이다. 만약 동심이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이것은 진실한 마음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동심은 왜 없어지는 걸일까? 처음에는 견문이 귀와 눈으로부터 들어와 우리 내면의 주인이 되면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 도리와 견문이 나날이 많아지고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이 나날이 넓어진다. 이에 아름다운 명성이 좋은 줄 알고 명성을 드날리려고 힘쓰게 되니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또 좋지 않은 평판이 추한 줄 알고 그것을 가리려고 힘쓰게 되니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분서(焚書)」 , 동심설(童心說)


예수님과 이지(李贄)는 '어린아이 마음만이 온전히 사랑이라는 선물을 받아들일 수있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이지(李贄)가 말하는 동심이 없어지는 원인은 현재를 사는 우리의 모습을 꿰뚫고있다. 남과 비교하기 위한 잘못된 교육, 돈이면 다 되는 자본주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아야 사람으로 인정받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살다보니 동심을 잃어가는 것이다. 

동심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면 바보취급을 받는다. 주변에 모두 이용하려는 사람만 득실거린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기 싫은 일들은 남에게 시킨다. 말로만 해서 생색낼 수 있는 일은 모두 자기가 한 일이다. 일도 안하면서 성과만 챙기려는 탐욕스런 어른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철학자 강신주는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_무문관, 나와 마주서는 48개의 질문(2014, 동녘)] 이란 책 머리말에 '어른'에 대해 이렇게 썼다.

마침내 알아 버렸습니다. 옛날 부모님들도 사실 어른이 아니었다는 슬픈 사실을요. 그렇습니다. 나이를 먹었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힘과 자유가 없다면, 어른이라고 해도 어른일 수 없는 법이니까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아야 어른입니다. 싫은 건 싫다고 하고 좋은 건 좋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어른입니다.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자기 삶을 지킬 수 있는 힘과 자기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본질적으로 어른이 될 수 없음을. 그리고 힘과 자유는 나이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용기를 갖고 싸워 얻어야 하는 것임을.


조직생활을 하는 직장인에게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아야 어른'이란 말은 직장생활 힘들게 하라는 이야기다. 세상에 솔직한 조직은 없다. 종교, 군대, 기업, 국가 등 사람이 모여 만들어지는 조직은 태생적 특성상 모든 것에 솔직하면 유지할 수 없다. 오죽하면 노자(老子)가 도덕경(道德經, 36장)에서 '국가의 이로운 도구는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된다(國家利器, 不可以示人).'라고 했을까.

하지만 조직이 하는 일이 남의 불행위에 내 행복을 쌓는 것이라면 그것에 대해서는 솔직해야 한다. 그래서 당당해져야 한다. 그것에 실패한 사람들의 모습을 우린 매일 신문에서 볼 수 있다.



영화 '1987'을 봤다. 난 1987년 당시 대학 3학년, 그 시간의 중심에 있었다.

딸이 물어본다. "아빤, 그 때 뭐했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응, 열심히... 이것 저것 했어."

"아빤, 데모같은 거 못했을 것 같애"

"왜?"

"나랑, 성격이 비슷해서.... 앞에 나서기 싫어하잖아..."


그 시절 자식을 서울로 유학보낸 부모에게 신문에 나오는 모든 사건은 걱정과 고통이었다.

전화드리면 데모하지말라는 이야기뿐이었다. 잘못되면 영화에서 보듯이 한 가족이 무너지는 시대였다.


난, 제주에서 유학온 소심한 대학생이었고

아버님은 공무원이셨다.

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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