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근 Dec 27. 2018

'단지'가 집에 왔다_10일 만에 집안 점령하다


'단지'가 집에 온 지 10일이 지났다.

첫날과 둘째 날에는 딸 방 침대 밑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다들 잠든 밤에 조용히 나와 사료와 물을 먹은 흔적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3~4일이 지나자 딸 방에서 사냥놀이도 하고 방석에서 놀기도 한다. 아직은 거실로 나오는 건 두려운 모양이다. 내가 다가가면 침대 밑으로 숨어 버린다.

[  딸 방에 누워있는 '단지' . 새로운환경이 아직은 낯설은 표정이다. ] 


집에 아무도 없을 때 혼자 거실이나 다른 방을 탐색한 것이 분명하다. 5일째 되던 날,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 보니 아들 방 침대 위에서 자고 있었다. 그것도 퍼질러(?) 잔다. 내가 손을 대자 화들짝 놀라 딸 방 침대로 피신한다. 잠시 후 딸 방에서 고개를 내밀고 거실에 앉아 있는 나를 쳐다본다. 마치 '저 사람은 누구지?'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 아들 방 침대에서 퍼질러(?) 자는 '단지' ]



요 며칠 집에서 올 한 해 일도 정리하고 글도 써야 해서 '단지'랑 나랑 둘만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거실에서 일하고 있으면 슬슬 다가와 냄새도 맡고 눈치 보다가 내가 움직이면 도망간다. 그리고 어디로 숨었는지 30분 동안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다. 포기와 걱정이 겹치는 순간, 도저히 상상도 못 한 곳에서 나온다. 그래서 사냥놀이도 하고, 대화(?)도 하고, 장난도 치니 친구라 생각했는지 무릎위에 앉기 시작했다. 집에 온 지 7일 만에 내 무릎에 앉은 것이다. 이런 어린 생명을 무릎에 앉혀 본 것이 얼마 만인가? 그게 너무 이뻐서 쓰다듬어 주니 내 무릎에서 잠을 잔다. 추울까 봐 담요를 덮어준다. 고양이가 추울까 봐 담요를 덮어준 건 오십 평생 처음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의 집안 점령을 위한 전략 중 하나였다는 걸 난 모르고 있었다. 이제부터 '단지'의 거실 점령이 시작된다.


거실 테이블에서 노트북으로 '극한직업' 이라는 유투브 채널을 보고 있는데 '단지'가 무릎위에 올라오더니 노트북 위에 자리 잡고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 노트북을 점령한 '단지' ]


노트북만이 아니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파 Back Joy라는 하중 분산 방석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젠 거기까지 점령당했다. 고양이들이 오목한 곳을 좋아한다더니 정말이다. 내 노트북, 방석까지 점령당했다.

[ '단지'는 아빠 방석을 차지해놓고 마치 '내 껀데 왜 그래?' 라는 표정을 짓는다 ]



한 집에 새로운 생명이 들어와 같이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결혼을 하고, 애들을 키운다. 시간이 지나 딸은 직장을 다니고, 아들은 의경으로 국가 의무를 다하는 중이다. 이제 애들에게 해줄 일은 거의 없다. "일찍 들어와, 근무중 조심해"라는 잔소리 말고는...

이런 시간, '단지'가 집에 왔다. 아내와 난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집안에 생명이 들어온 이상 돌봐야 한다. 보이지 않으면 찾아 해메고, 심심할까봐 사냥놀이도 해주고, 고양이 화장실 청소도 열심이다. 이런 것이 짜증날때 쯤 '단지'가 다가와 이쁜 짓(?)하면 짜증이 사라진다. 마치 우리 애들 키웠던 과정의 연속인 것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생명과 한 집에 같이 산다는 것은 '사랑' 아니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 '사랑'이 이쁠때만 생기는 감정이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단지'가 와서 10일이 지났는데 키우는 것이 아니라 '모시고 산다'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단지'가 집에 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