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이 일이 끝날 것인가 생각하지만, 막상 죽음이 눈앞에 오고 헤어지면
황망하게 빨리 닥치는 그 시간들 속에 당황하게 되는 것을
친정 부모님과 시아버님을 보내드리며 느꼈던 지라 기억하고 있었다.
그이가 작년 9월에 재발한 뒤로 내내 붙어 있다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간 그이와 떨어져 지내는 5일은
마음이 불편해 견딜 수가 없었다.
매일 병원에 들러 코로나 검사를 한 뒤 그이 곁에 가보면
의식은 없고 숨소리만 가득한 병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그의 얼굴을 쓰다듬고,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뭐라 말하고 싶은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미안하고 미안해서,
집에 함께 있지 못해서,
계속 곁에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그리고 진짜 가는 걸까? 하는 믿을 수 없는 마음과 두려움도 크다.
토요일(12일)에 재경이와 함께 장례식장을 알아보고 장지도 정한 뒤에 그이를 보러 병원에 갔다
신음소리 가득한 그는, 우리를 보고 인사하지는 못하지만 느낌으로 우리가 온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지고 이야기하면 뒤척임이 줄어드니까 말이다.
저녁에 돌아와 앉아있는데 그이 모습이 너무 아른거리고
불안해서 아이들에게 아빠를 데리고 오고 싶다고 했다.
"에휴!! 엄마. 엄마 편한 대로 하세요."
집에 아빠가 있는 동안 모든 일이 아빠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재경과 윤서의 삶도 사실 어찌 돌아가는지 나도 놓쳐버릴 때도 많았다.
병원에 그이가 간 뒤로 셋이서 밥을 먹는데
고요하고, 적막감이 도는 식탁에 편안함도 있다는 게 더 미안했다.
그 자책감과 그이의 빈자리와 내 역할이 사라진 것만 같은 그 허전함에
그이를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이가 갈 거라고 어쩌면 내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니까.
일요일에는 그리 해야지 생각하고 잠들었는데
아침 8시 반(13일)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최광일 님 보호자 되시죠? 임종의 호흡으로 느껴집니다. 직계 가족분들만 오세요."
재경, 윤서를 데리고 달려가
코로나 검사하고 모두 비닐 가운을 입고 그이 병실로 올라갔다.
힘이 모두 빠져 그저 숨만 가릉거리는 그이 곁에
우리 셋은 팔과 다리를 가만가만 주무르며
가만가만 이야기했다.
"아빠. 좋은 데 많이 데려가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해요."
"아빠, 윤서에 요. 나 많이 사랑해 주고, 내가 원하는 거 다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사랑해 아빠."
아빠의 좋은 점, 고마웠던 이야기 그리고 사랑한다고.
11시가 넘어가니 숨소리가 편해진 것도 같아 믿기지도 않았다.
'설마 이걸로 끝이라고?'
배도 고프고 씻지도 못한 재경과 윤서에게 혹시 길어질지 모르니
집에 가서 밥도 먹고, 좀 씻고 오라고 했다.
1시가 넘어가니 그이의 팔다리가 차가워지고 끈적거리는 느낌이
이상하다 싶어 계속 주무르는데 재경과 윤서가 돌아왔다.
집에서 대충 씻고, 편의점에서 라면과 김밥을 사가지고 왔다.
의식 없는 아빠 옆에서 라면을 먹던 윤서가 하는 말이
“엄마, 이상해요. 그렇게 울다가 또 배고프다고 아빠 옆에서 밥도 먹고. “
“응, 그게 삶이야. 죽음이 있어서 삶이 있고 삶이 있으니 죽음도 느끼지. 미안해할 수 있지만 당연한 감각들이니 먹어. 힘내서 아빠 잘 보내드리자. “
오후 2시 반
재경이와 윤서가 아빠의 양쪽에 딱 붙어 귀에 대고 사랑하고 고맙다는 말을 계속했다.
그이가 좋아했던 음악을 재경이가 틀어주었다.
나는 그이의 발과 다리를 주무르면서 조용히 말했다.
"수고했어. 여보. 이 땅에서 당신이 할 일 잘 마쳤으니 이제 편히 쉴 수 있을 거예요.
미안해 여보,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요. 사랑해요."
오후 3시
그이의 숨소리가 더 조용해지는 거 같아 동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전화로 인사해 달라고 했다.
듣는 건 가능하니까.
동생들. 어머니. 모두
그이에게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내 형으로, 내 아들로, 내 오빠로, 내 사위로, 내 매형이 되어줘 고맙다고 인사를 들었다.
3시 반.
내내 눈을 감고 있던 그가 눈을 크게 떴다.
허공을 응시하는 것처럼 오래 한 곳을 보고 있었다.
눈을 뜬 아빠가 반가운 윤서가 울면서 아빠를 불렀다.
그이 눈 옆으로 눈물이 조금씩 나왔다.
3시 45분
그가 눈을 감았다.
아주 편안한 얼굴로.
3시 50분
의사가 와서 그이의 사망시각을 알려주었다.
죽음이 오면
오롯이 혼자 맞이해야 하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우리가 위안이 되는 건
그이가 죽음이란 손님맞이할 때
옆에서 배웅할 수 있었던 것.
그와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배웅하는 것
나도 언젠가 떠날테니 말이다.
평소에 그이가 원하던 죽음의 모습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옆에서 작별인사하는 거라고 했다.
아침부터 그이 옆에 임종을 지킬 수 있어서 감사.
미리 장례식장과 장지를 정해놓아서 준비할 수 있어 감사.
어제 집에 돌아와
재경과 예전 그이 사진 뒤적이다 발견한 영상이 있었다.
그의 목소리와 내용을 듣다 또 울었다.
“모두 이별하는 까닭이다. “
네 눈이 그리도 이뻤던 것은
가을 햇빛 탓이었을 것이다
네 눈이 그리도 맑았던 것은
가을바람 탓이었을 것이다
아니다 우리 앞에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눈물이 하늘 강물이 너의 눈을
더 이쁘게 맑게 보이도록 했던 것이다
이유 - 나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