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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솔은정 Sep 08. 2024

소풍이라 말하려 했는데,  슬픔이 와 있다.

2022.03.13

여보,

고생 많이 했어.

아픈데도 하루하루 삶을 잘 살아내 줘서 고마워.  


 내가 뭘 한다고 하면

“당신은 잘할 거야”라고 늘 말해줘서 고마워.

의식 흐려져서

내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그때마다

늘 “예쁜 내 색시!”라고 말해줘서 고마워.   


 당신이 녹음해 놓은 거 들었어.

“좋은 아빠, 좋은 남편으로 각인되고 싶은데 잘 될까?”

물론이지.

당신은 좋은 아빠이고 좋은 남편이야.  

아들, 사위. 형, 친구, 회사원, 많은 역할들에 충실했지.

그중에 당신은 좋은 아빠와 좋은 남편으로 가장 남고 싶다고 했는데

그래요. 당신은 최고의 아빠고 최고의 남편이에요.

이 땅에서의 역할 잘 마쳤으니

이제 당신 자신으로, 빛의 존재로 돌아가요.


당신 덕분에  커피도 많이 마셔보고, 좋은 음악도 알게 되었지.

당신 덕분에 멋진 사진도 보게 되고, 모델도 되었지.

당신 덕분에 세상도 많이 만났지. 고마워요 여보.


난 당신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잘 알지~

아픈 거 너무나 싫어하고 주사는 끔찍이도 싫어하던 여보

이제 통증 없이, 불안과 두려움도 없이 편안하게 지내요~


 당신과 함께 준비했던 죽음을 통해서 내 삶은 더 찬란해질 거예요.  고마워요.

재경이와 윤서 잘 키우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을게요.

당신이 조금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요.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당신이 남긴 편지들, 기록들 내게 추억으로 전해줘서 고마워요,


 


2022년 3월 13일 15시 45분

그이는 평온하게 눈을 감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이의 빈자리는

이제 점점 더 크고 강하게 오겠지요.

또 그걸 느껴보며 살아보렵니다.



어디로 가는가 무엇이 되는가

속으로만 부르는 것들은

네 이름이 내 심장을 조여 온다

소풍이라 말하려 했는데

슬픔이 와 있다. (허은실, 저녁의 호명 시 중)


 


 


남편과 헤어질 준비를 작년 11월부터 함께 조금씩 하고 있었어요.  

가족사진도 찍고, 여행도 잠깐 다녀오고,

그이 친구들과 모여 식사도 하고, 생일잔치도 근사하게 하고,

회사에 가보고 싶다는 그이 소원만 빼고는 함께 했던 시간들로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한 거 같았어요.  


하지만 막상 이별이 오니 내가 준비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슬픔과 황망함과 허무함이 가늠한 것보다 크네요.

감사하게도 여러분의 위로와 응원 덕에

장례 절차도 잘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시국이 이런지라 덕분에 5일장으로

그이와 긴 이별의 의식을 치를 수 있어

그 또한 감사합니다.   


 

바쁜 시간 내서 와주시고, 꾹꾹 눌러 담아 보내주신 마음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이가 그리 부러워하던 내일은 내게는 오늘로 와 있음을

언제나 기억하고 여러분의 사랑과 응원으로

또 씩씩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여러분의 슬픈 일이나 기쁜 일에

저에게 연락 주시면

저도 제가 느꼈던 그 감동의 공감으로

얼른 달려가서 옆에서 함께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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