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
"엄마. 아빠 이제 병원으로 모시고 가면 안 되나요?"
집에 있는 동안
나도 힘들어서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고 싶지만 차마 말을 못 하고 있는데
그리 말하는 딸들에게 갑자기 서운하고 야속한 느낌이 들어 울고 싶었던 내 마음을 알까?
지난달 말 mri는 찍지 못했지만 다학제 진료는 예정대로 가기로 했다.
정신이 좀 돌아온 거 같던 그는 3월 1일부터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다.
혹시나 몰라서 입원준비를 좀 해서 가보기로 했다.
혈액종양내과. 신경외과. 영상의학과 선생님들이 계시는데
나에게 말씀을 건네신다.
"고생 많으시죠?"
그 한마디가 뭐라고 눈물이 터져 나올라 그런다.
입원해서 상태를 보고, mri를 찍어보자고 하셔서 입원실이 나는 것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다행히 저녁 무렵 빈 병실이 있어 입원도 가능해서 신경외과 병동으로 올라갔다.
집에서도 거의 자지 않던 그가 여기서도 잠을 안 잔다.
기저귀를 채워줘도 소변기에 누거나, 화장실에 가야만 일을 보니 그도 나도 너무나 힘들다.
낙상 금지라 침상에서 일어나면 안 되는데 자꾸 일어나려고 애쓰는 그를 붙잡기에는
내 체력도 한계였다.
3일간 잠을 함께 못 자서, 나는 너무나 지치기도 했고,
슬프기도 하고, 화도 나고,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이가 계속 화장실에 가겠다고 해서 잡다가,
그가 침대에서 떨어지고 나도 함께 넘어지는 바람에 간호사실에서 모두 달려오고 주치의 선생님도 오셨다.
"mri 찍기는 도저히 무리네요. 그리고 아무런 의미가 없을 거 같아요."
"그이가 잠을 안 자요. 선생님."
"임종을 앞둔 사람들 중 젊은 사람들. 청년들이 대개 잠을 안 자는데......"
그이는 젊구나.
남은 시간 동안 눈감고 자는 것이 아까운 걸까?
죽는다는 것이 너무나 무서워 눈을 감지 못하는 걸까?
혈액종양내과 선생님께서 전주에 있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조심히 잘 가시라고 90도로 인사를 하신다.
선생님도 눈이 벌게지고, 나는 울기만 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나는 그이에게 뭐라고 하나?
호스피스 병원으로 간다는 말을 어떻게 전하나?
그이가 제일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건 병원에 혼자 있다는 건데
내가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지 나는 두렵다.
2박 3일의 분당서울대 병원 입원생활을 정리하고 전주로 내려가기로 한 날.
짐을 모두 싸놓고, 휠체어에 그이를 잘 앉혀 놓은 뒤 서류 몇 가지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이가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여보, 고마워." 속삭이듯 말한다.
잠시 정신이 돌아온 그이가 너무나 반갑고 고마워서
"나도 고마워, 여보."라고 말하고 함께 울었다.
전주까지 잘 내려가려면 운전하면서 그이를 케어할 수 없어 재경이가 왔다.
오빠를 보겠다고 시누이도 왔는데. 나는 상냥하지 못한 얼굴과 태도로 그 둘을 맞이했다.
이 모든 상황들을 나 혼자 짊어진다는 생각들이 두렵고
내가 결정해야 할 것들에 대해 화가 나기 시작하니,
나의 태도는 침묵으로 포장한 분노로 똘똘 뭉쳐
웃지도 않고 아주 재빨리 차로 걸어갔다.
터트릴 수 없는 이 불안과 두려움을 분노의 걸음으로 표현하게 되는 미숙한 정신 상태를
다 보여주느라 재경과 시누이에게 남편을 맡기고 말이다.
재경이가 아빠를 겨우 붙잡고 남자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소변보는 걸 겨우 돕고 차로 왔다.
그들이 무슨 잘못을 한 게 아닌데.
나는 이 정도밖에 못하는 걸까?
잠도 못 자고, 씻지도 못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어 지쳤다고 해두자.
남편과 이제 진짜 이별해야 하는데, 내 마음에 아직 준비가 안되어서 너무나 무섭다고 해두자.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면 난 남편을 버리는 나쁜 아내가 되어버릴까 무서워서 결정을 못 내려 그렇다고 해두자.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고통 안에 있을 때는 끝이 없을 거 같은 쳇바퀴에 타고 있는 이 느낌이 너무나 싫다.
엄마, 아빠. 시아버님의 간병에서 경험했던 거라 그 경험이 다시 되풀이되고 있어
더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걸까?
3시간여를 달려서 전주 엠마오 호스피스 병동에 도착했다.
어머니와 동서가 와 있어서, 그이와 바깥에서 마지막일까 싶어 인사를 하고
그이를 데리고 병실로 올라왔다.
그이 옷 갈아입히는데 간병인 두 분이서 할 테니 복도에 나가 기다리라고 한다.
그이가 우두커니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
나도 복도에서 그를 의자에 앉아 가만히 쳐다보았다.
내가 미울까?
내가 야속할까?
호스피스 병원에 남겨두고 가면 그는 얼마나 무서워할까 싶다가
나도 좀 쉬고 싶고, 나도 좀 보살핌 받고 싶다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게 되니
그런 생각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고 죄책감이 들어 힘들다.
화를 자꾸 내는 진짜 내 마음 아래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이다.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불안,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일들의 중압감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