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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소리 Feb 25. 2023

국화꽃 21

맑은 뭇국 한그릇 때문에 그렇습니다


친구 어머니가 사년 모자란 백수를 사시고 가셨습니다

넓은 장례식장에서 저는 왠지 초라해짐을 느낍니다

부럽습니다

딱 20년전 가신 아버지께 못해 드린 뭇국 때문인것도 같습니다

야 이놈아 하고 야단치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습니다

친구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하늘은 맑고 깊은데 하얀 국화를 피웠습니다

구름마다 꽃마다 다른 모양입니다

하얀 국화가 가는 길은 더없이 넉넉합니다

국 속 무가 맑갛게 슬퍼지는 까닭은

아마도 옛 생각 때문이겠지요


밤새워 목탁 치던 비가 오는 아침에 피웠습니다

어느 시인처럼 소풍이라 할수도 없습니다

아버지 가시는 길 눈물이었지요

한 숟가락 얇은 고기 한조각이 부러워진 까닭은

육계장 빨간 국물보다 내겐 없는 시간

너무 일찍 피워버린 국화가 원망스럽기 때문입니다

맑은 뭇국 한그릇 때문에 그렇습니다


국화가 활짝 핀 오늘은 하늘을 볼수 없습니다

이쁘지만 편안하게 핀 국화꽃 송이들

한잔술 따르는 친구 얼굴이 편안하지만 슬픕니다

욕심부리는 마음조차 감싸주는 국화가 피웠습니다

처음으로 좋은곳으로 소풍을 가실겁니다

아마도 생전 처음 그럴겁니다



                        2023-2-25   장례식장 복도에서



천상병 시인님의 귀천이 생각나서 소풍이란 단어를 빌려 왔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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