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푼 산수 숙제가 남은 바보처럼
무슨 봄비가 소나기처럼 사납다
그렇지만 우습게도 시원한 느낌은 무엇일까?
또
앞마당 푸름속
병든 나무 한그루에 피어난 작은 잎새 하나가
왜 나를 슬프게할까?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
내일도 다름없이 똑같을 오늘
형상마저 희미해진 지난날의 숙제는 이젠 없는데
태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던 꿈은 어디가고
초록이 물드는 이 자리에 그늘도 없이
마당 한구석 비석처럼
벌거벗은 겨울 나목은 자리를 지킨다
누구나 그렇듯
젊은날 못다 푼 산수 문제 풀듯이 너무 쉽게
운명처럼 꿈과 삶을 바꾸어 버렸다
마치 울 아버지가 내게 그랬던 것 처럼
큰 그늘 없이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애쓰다
지쳐 포기하는 일 없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으로
나무는 나목이 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또 봄
수도없이 지나고
초록이 주는 생명의 힘으로 세상은 온통 푸른데
모진 바람을 견뎌낸 나목은
불행과 행복을 함께 제 몸에 매달은 채
아직 남은 꿈을 꾸면서 한겨울 나목처럼 서있다
그 한자리에 그냥 서있다
시원한 봄비 맞으며
초록이 앙상한 가지에 앉아 동무하는 이시간
벌거벗은 나목은 듬성 듬성한 초록 잎새 속
둥지 떠난 작은 새 한마리
언제든 돌아와 쉴수있는 굵은 가지가 되는
그런 오늘을 꿈꾸며
그자리에 서서 혼자 행복한 미소 짓는다
비록 나목이 되어 자리를 내줬어도
비록 새로운 둥지를 틀지는 못할지 모르더라도
비록 초록 빛나는 봄의 한가운데
혼자서만 한겨울 나목이 되었을지 몰라도
의미가 있다면 여윈 나목도 새롭지 않을까하며
봄비를 맞는다
산수 숙제 못풀어 벌서는 바보처럼
2018-5-6 기계실에서 바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