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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무 May 22. 2023

책임과 자유의 사이에서

자유란, 내가 책임질 것을 내가 선택하는 것

Photo by Benjamin Kerensa on Unsplash


개인적으로 데릭 시버스(Derek Sivers)라는 사람을 무척 좋아합니다. 아마존에서도 찾기 힘든 그의 책 “How to Live”를 읽으면서 많은 영감을 받기도 했고, 그의 창업 스토리를 보면서도, TED 강연을 보면서도 참 즐거웠습니다. 자유를 추구하는 그의 성격이 저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더 그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도 그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과 책과 영상에 대해 기록한 블로그 등이 많이 있으니 한 번쯤 검색해 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그런데 제가 딱 하나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의 설명 슬라이드 중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Refuse responsibility. Delegate everything.” 데릭은 언제든지 훌훌 털어버리고 떠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사업을 조정했다고 하더군요. 제가 자유로움을 가장 크게 추구하는 것은 맞지만, 저는 진정한 자유가 책임을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아빠로서의 책임을 훌훌 털어버리고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애 보라는 아내의 잔소리가 없는 해변이나 산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정말 즐거울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상황에서 아무 책임도 지지 않도록 자유롭게 있기만 하면 사람이 행복할까요? 이렇게 가만히 있다면 도리어 무척 빨리 심심해질 거 같은데 말이죠.


우리는 삶의 목적과 의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성취감을 느끼길 원합니다. 그래서 자유란 책임을 벗어던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책임질 것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은퇴의 한 가지 이유는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 것에 사용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수히 많은 비생산적인 회의와 채용을 위한 면접관의 역할에 내 시간을 쓴다는 것이 억울했습니다. 물론 월급을 받으니 할 일은 해야 했죠.


내가 하길 좋아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자료를 조사하고, 분류하고, 분석하는 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이렇듯, 내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많은 종류의 일 중에서, 내가 기꺼이, 즐겁게 업고 갈 수 있는 일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많은 책임을 지는 것과 동시에 자유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자유가 더 적은 책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믿습니다. 


왜 사람들이 직업 군인이 될까요? 왜 사람들이 소방관이 될까요? 이러한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사랑하는 책임을 기꺼이 질 수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그 책임이 밖에서 보기에는 어마무시하게 큰 무게의 책임이지만, 이들에게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책임이라는 거겠죠. 우리는 각기 다른 것에 책임감의 무게를 다르게 느낍니다. 


이것이 제대로 매칭되지 못하면 좌절할 정도의 부정적인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책임감을 즐거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분야에서 극기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은 항상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고, 스트레스는 매일 쌓여간다면 그건 뭔가 다른 해법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단순히 처음 시작하는 분야라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이 어렵고 익숙해지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거죠.


그래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내가 왜 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정답은 “내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데 책임이 무겁지만 들만한 무게라서 할만해”라는 답변과 비슷한 것이 나와야 합니다. 언젠가 죽음이 나에게 다가왔을 때, 후회가 되는 것들은 대부분 내 시간을 가지고 어떤 책임을 해결했는지가 큰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책임이 없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딱 맞는 책임질 것들을 딱 맞는 타이밍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결국 어떤 종류의 책임들이 나에게 가장 가볍게 느껴질 것인지 찾아보는 것이 내가 가장 빨리 자유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일지 모르겠습니다. 경제적인 자유. 무지무지 중요한 단어죠? 그런데 그렇게 자유를 얻어내고 나면? 그럼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삶을 살 건가요? 그런 삶은 존재하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을 거 같습니다. 내가 지고 있는 책임의 무게가 들만하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더 많은 책임을 선택할 수 있고, 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성취를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빠로서의 책임이 가벼운 느낌은 아닙니다. 사춘기에 대한 책을 지난주에 사서 읽고 있는데, 모두 맞는 말입니다. 다만 머리로 이해한 내용을 사춘기 아들의 언행에 대입해서 대응하기란 쉽지 않네요. 주말 동안 이미 머리에 피가 몰리는(?) 경험을 한번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로서의 책임을 벗어던지고 도망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갈수록 멋지게 성장해 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할 때가 올 거라 믿습니다. 벌써 첫째는 조금씩 WOW 한 순간들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 어찌 아름다운 인생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여전히 딸이 더 사랑스럽지만 말이죠.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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