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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무 Nov 24. 2023

가족이 된다는 것,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것

김장 시즌이 왔습니다

Photo by Esther Ann on Unsplash


오늘 저녁 저는 강원도로 출발합니다. 주말에 처가에서 김장을 하기로 했거든요. 아내는 조금 이른 퇴근을 하기로 했고, 저는 부지런히 가면서 먹을 음료수와 커피, 그리고 간식을 사고 차에 휘발유를 가득 채웁니다. 김장에 대한 재료 준비는 처형네가 가지고 오기로 했고, 비용은 엔빵 하기로 했죠.


김장에 참여하는 건 15년 결혼 생활 중에 5년째입니다. 초반에는 애들이 너무 어려서 가봐야 애들 때문에 방해된다고 거절을 하셨고, 막내 사위인 저는 그냥 김치를 받아먹기만 했죠. 감사하고 죄송스러운 일입니다. 이제 몇 년 도와드리지만 여전히 막내 사위는 가장 서툴어요.


청년 시절에는 김장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외가 친척들과 김장을 하고 가져온 김치를 맛있게 먹기만 했죠. 실제로 뒤돌아 생각해 보면 친가의 김장에는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습니다. 아니, 김장을 우리 집에서 했는지 조차 모르겠네요. 아, 이런 불효자식 같으니라고...


아마도 아내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김장을 평생 해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결혼은 둘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족들이 모이는 일입니다. 우리 부모님과, 내 동생네 가정과, 우리 가정. 거기에 처형네 가정, 큰형님네 가정, 장인장모님의 가정까지 다 연결되는 것이 바로 결혼입니다.


챙겨야 할 생일 문자가 대폭 늘어나고, 명절에 챙겨야 할 선물도 대폭 늘어나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 선물을 챙겨야 할 조카들도 왕창 늘어납니다. 우리 아버지는 술을 안 드셔서 제가 고등학교 졸업식 때 딱 한번 맥주를 같이 마셨는데, 강원도에 가면 장인어른과 매번 술 한잔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장인어른의 젊을 적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곤 하죠.


결혼은 이처럼 사랑하는 한 여자와 한 남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대가족이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전에는 잘 몰랐지만, 이제 80이 넘으신 장인어른의 등이 많이 굽어지셨음을 깨닫습니다. 장모님도 여기저기 아픈 구석이 많아지셨습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이제 곧 80이 되시는군요.


제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이 50을 먹고도 여전히 이기적이고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혼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챙겨야 할 어른들과 아이들이 많아졌으니 자연히 배려와 챙김이 조금씩 내 안에 자라났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제가 자녀가 없었더라면, 나이 50을 먹고도 여전히 아이들을 존중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아름다운 아기 시절부터 만만해지는 초등 시절, 건방지면서도 멋진 청소년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을 못 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아내에게 무한한 감사를.


문득 얼마 전에 만 70살이 된 작가가 쓴 글이 떠오릅니다. 70살이 되어 온몸이 나이 들어가고 있다고 소리치지만, 여전히 세상은 아름답고 해보고 싶은 일이 많은 자신은 아직 소녀 같다고 느낀다 말했습니다. 잔디를 밟은 때의 부드러운 맨발의 느낌과 가을 하늘의 푸른색 팔레트가 하얀색으로 번지는 것을 바라본다고 말합니다.


언젠가 더 나이 들면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힘들어질 수도 있겠구나라고 말합니다. 내 주변의 환상적인 자연을 만끽하고 그걸 바라볼 날이 언제까지 일지 알 수가 없구나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 지구에서의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슬퍼하지 말고 지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주변을 바라보고 깊은숨을 들이마시는 것부터 해보자고요.


사랑합니다. 우리 양가의 가족 한 명 한 명 모두.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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