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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무 Jan 23. 2024

크리스마스 이브에 프러포즈를

그녀는 나와 많이 달랐습니다

Photo by Dylan Sauerwein on Unsplash


우리는 데이트를 하며 처음 같이 한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 공연을 처음 보러 간 것도 그녀 덕분이었고,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뮤지컬을 본 것도 그녀와 함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마곡으로 이사 갔죠? 가을 낙엽의 길을 밟으며 손가락을 깍지 끼고 걸어본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하면서 우리는 서로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하나씩 깨달아 갔습니다. 그녀는 쉽게 화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이해심이 많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우리는 결혼 전에 싸운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연애 기간이 6개월로 짧았기도 했지요.


이미 17년 지나서 세세한 상황이 모두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2007년 12월 24일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수원에서 근무하고 있었기에 성균관대 역 근처에 원룸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서울 올림픽공원 근처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수원 성균관대 역까지 와서 만나기로 했죠.


저는 그날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습니다. 플랭카드를 준비해서 벽에 붙여놓고. 풍선을 불어 천장에도, 벽에도, 문에도 붙여놓고. 미적 감각이 부족한 제가 리본으로 장식까지. 나와 결혼해 주세요~라고 쓰인 플랭카드는 문 뒤에 숨겨놓고, 거기다 바닥에는 캔들로 하트 모양으로 나열하기까지. 


음… 지금 생각하면 아주 민망하네요. 뭐, 어쨌든 당시 제가 생각하는 프러포즈에 대한 수준은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성균관대 역에 방문하는 그녀를 마중 나갔죠. 지하철에서 나온 그녀는 조금 힘들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손을 잡아끌면서 얼른 제 원룸으로 달려갔습니다. 양초를 켜놓고 나왔으니 위험하잖아요?


방에 도착한 그녀는 무척 행복해했습니다. 아이처럼 즐겁게 웃으며 케이크 커팅을 하고, 풍선과 기타 장식들을 감상하고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핸드폰 시대였죠. 아이폰이 한국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삼성 갤럭시(옴니아)도 나오기 훨씬 전입니다. 그냥 디카로 찍었던 수준이지만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고생했네. 고마워. 사랑해. 

근데 나 좀 힘든데, 여기 너무 멀다~“


저는 솔직히 배려심이 별로 없는 편입니다. 그게 맏아들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남의 눈치를 잘 보지 않는 성향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20살에 대학진학 이후로 계속 혼자 살아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내가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을 그대로 추진하는 편이라 타인의 생각을 별로 고민하지 않는 아~주 불편한 단점이 있죠.


그날도 제가 계획한 스케줄과 프러포즈에 집중했지 그녀가 근무하고, 퇴근하며 만원 지하철에서 얼마나 고생하며 수원까지 왔을지 미리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가뜩이나 크리스마스 이브라 복잡한데, 케이크까지 들고 오려니 더 힘들었겠죠. 그 상황에 다짜고짜 손을 잡아끌고 남자 친구가 보여줄 게 있다면서 자기 집으로 끌고 가네?


음… 돌이켜보면 참 미안하군요. 저를 믿고 사랑하니까 그랬겠지만 참 그녀는 나와 달랐습니다. 나도 잘 안부전화를 하지 않는 울 엄마와 종종 통화도 하고, 내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을 챙기고, 내 동생과 조카들을 챙기고. 저는 생각도 못한 것들을 능숙하게 연락하고 챙기는 모습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에게 와줘서.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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