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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무 Jul 02. 2024

죽음이 이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날

모두 건강 챙기시길~

Photo by Zinko Hein on Unsplash


지난주에 2000명이 모이는 집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행사 중에 갑자기 한 분이 심정지가 온 겁니다. 행사 관계자가 10분 정도 심폐소생술과 흉부압박을 하시더군요. 거기에 119에서 출동해서 다시 10분 정도 더 흉부압박을 하고 병원으로 이동하셨습니다. 결과는 듣지 못했으나 나이 드신 분에게 20분을 흉부압박을 하면 아주 위험한 상태였을 거라고 하더군요.


눈앞에서 사람이 그냥 쓰러지는 모습은 정말 공포스러웠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암 투병 중이셨고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4년째 살아가고 계셨다고 하더군요. 어찌 보면 호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말을 들으니 그나마 행복하게 가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같은 날 아내에게 부고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아내와 1년 전에 같은 지점에서 근무했던 직장 동료가 암투병 끝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작년 9월쯤에 암이 발견되어 치료 중이었는데 1년도 채우지 못하셨습니다. 40대 후반이면 아직 젊은 나이에 자녀들은 고등학생에 불과한데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어젯밤 갑작스러운 자동차 사고로 무려 13명이 죽는 사고가 터졌죠. 그 시간에 시청역 앞에 우연히 보도를 걷던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죄입니까. 가해 차량의 운전자의 죄의 가중치를 떠나서 돌아가신 모든 분들에게 애통한 마음으로 조의를 표합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반드시 죽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삶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해야 하고, 하늘이 나에게 준 사명이 무엇인지 찾기를 애써야 합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면 대체 왜 살아있는 건가요? 그건 무덤에 들어가기 수십 년 전에 이미 죽은 거와 다름없습니다.


자녀를 바라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헬조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써야 할 것 같아서 불안한가요? 아니면 마냥 이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줬으면 좋겠나요? 우리 역시 영원히 자녀를 돌봐줄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수명이 다하는 날, 나는 자녀의 인생과 무관하게 세상을 떠날 겁니다.


가끔씩 내가 죽거나 아내가 죽으면 어쩌지 생각이 드는 때가 있습니다. 아직 미성년자인 아이들은 누가 보살필까. 어여쁜 내 아내는 얼마나 슬퍼할까. 나는 지금 무엇을 유산으로 남기고 죽을 것인가. 돈의 유산이 아니라 어떤 정신적인 유산을 남길 수 있을까.


건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매일 조금씩 걷고 뛰고 땀을 흘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건강한 식단을 위해 너무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밤늦게 술과 안주로 배를 채우는 걸 피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가진 몸뚱이를 평생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기왕이면 건강하게 유지해야죠?


정신의 건강도 중요하죠. 좋은 책을 읽고, 사색의 시간과 여유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에 한 스푼의 여유와 감사를 넣으면 관계에 도움이 됩니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서로에게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터놓고 대화를 하는 것도 좋은 시작입니다.


예기치 않은 사고와 질병은 언제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아픔과 고통은 남아있는 자의 몫이죠.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내 가족들을 위해서 건강을 삶의 우선순위로 놓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1억을 더 번다고 내 목숨이 1년 더 살게 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오늘의 결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오래도록 건강히, 자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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