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처음 만나고 6개월 뒤에 결혼을 했습니다. 첫눈에 반한 것은 아닙니다. 세 번쯤 만나고 나니 아,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는 모든 것을 후다닥 서둘렀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신천 성당 앞에서(신촌 아님) 처음 만나던 그때가 떠올라 혼자 피식 거리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정말 좋았습니다. 진짜 허니문 기간이었죠. 하지만 결혼이란 전혀 다른 삶을 살던 두 사람이 만나 한집에서 살아가는 것. 진짜 치약 짜는 방식부터 양말 뒤집지 않고 여기저기 뿌려 놓는 것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감수하고 이해당하며 같이 살아야 했습니다.
저는 결혼 이후 최대의 취미였던 게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왜 재미있는지 아내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자신과의 시간을 포기할 정도인가 라는 질문에 그건 아니지… 답하고 컴퓨터를 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정답이죠. 거기서 당신보다는 게임이… 하면 큰일 납니다.
16년이 흐르고, 아이가 셋이나 생기고, 그중 둘이 사춘기 기간인 시절입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아이들 저녁까지 같이 챙겨주고 식탁을 정리한 뒤에는 나만의 시간을 갖는 루틴이 생겨났습니다. 베란다의 미니 서재에 앉아서 책을 읽고, 소설을 읽고, 또 다른 읽을거리를 찾아다닙니다. 아내는 안방에서 스마트폰으로 이거 저거 찾아봅니다.
그런데 문득 이건 아니지 않나 싶더군요. 나만의 시간이 중요하긴 해도, 결혼 16년 차 이긴 해도, 저녁의 상당 부분의 시간을 따로 사용하는 것이 갑자기 미안해졌습니다. 집안일을 제가 대부분 하긴 해도, 아내는 낮에 열심히 출근해서 일했는데 저녁에 더 같이 있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설마 아내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길 원하는 것일까? 보통은 남자들이 그런 걸 원하고 여자들은 같이 공감해 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하던데. 음.
서로 다른 일에 집중을 한다고 해도 같은 공간에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책을 읽고, 아내는 핸드폰을 사용한다고 해도, 서로의 눈길과 서로의 발끝이 닿는 공간에서 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 안마해 달라고 베란다에 있는 나에게 외치지 않아도 부드럽게 요청할 수 있는 거리.
막내가 뭘 흘렸으니 닦아 달라고 말할 수 있는 거리. 허리가 아니라 목이 아프다고 투덜거릴 수 있는 거리. 딱 그 정도의 공간에서 살면 그게 바로 알콩 달콩이 아닐까요? 결혼 16년 차라고 무덤덤해지면 안 되죠. 앞으로 같이 살아갈 날이 30년은 더 남았을 텐데.
아무 소리 없이 각자의 화면을 바라보고 있어도 발끝으로 살살 간지럽힐 수 있는 거리. 머리카락을 쓰다듬거나 뱃살을 쿡 찔러볼 수 있는 거리. 방귀 소리가 들리고 냄새가 퍼지는 것에 깔깔거릴 수 있는 거리. 같은 공간이란 그런 거 같습니다.
이것 참. 저녁에는 모니터로 읽을거리가 아니라 종이책으로 읽을거리를 가져와야겠습니다. 그래야 안방에서 아내와 막내와 같이 알콩달콩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고요한 침묵을 공유해도 외롭지 않은 공간에서 여전히 이쁘네 하고 나지막이 감탄해 줄 수 있는 공간에서 말이죠.
오늘의 질문: 위 본문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안 나오는 거 아셨나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사랑도 멋진 거 같아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