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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재미있어서 해요

상상 속의 그대일까요?

by 김영무
slav-romanov-r38u2Uq1AXk-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 Slav Romanov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를 알아서 한다면 부모로서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까요? 자기주도학습이라는 단어는 학부모에게 마치 신기루처럼 느껴집니다. 초중고 학생들에게 왜 공부를 하는가라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답을 할까요? 답은 세 가지 종류밖에 없습니다.


1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2 성적이 좋아야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혼나지 않는다

3 공부 자체가 재미있다


1번 응답은 동기가 전혀 없는 상태를 의미하고, 2번 응답은 외부에서 동기를 찾는 것이며, 3번 응답은 자신의 내부에 동기가 있는 상태입니다. 고등학생 중 20%가 공부에 대한 동기나 의지가 전혀 없다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거나 바꿔보려는 의지가 전혀 없는 상태인 거죠. 어떤 행동을 해도 현재 상태나 미래가 바뀔 것이라는 믿음이 전혀 없는 상태. 무기력의 습관화가 이뤄진 상태라는 거죠.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주체가 되어 결정한 것이 아니면 의욕을 느끼지 못합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나 지위 같은 외적 보상이 아니라 자기 결정성에 대한 주관적인 느낌이라는 거죠. 얼마나 자율성이 보장된다고 느끼는지에 따라 동기의 정도가 결정된다는 겁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대기업보다 벤처기업에서 더 신나게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연차가 적은 직원이라도 자기 분야에서는 자기가 알아서 회사를 위한 최선의 전략을 도출하고 실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뭘 시키지 않았어요.


의무 복무제도를 도입한 한국 군입니다. 남자들은 제대 이후 부대 쪽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라 맹세를 합니다. 그 안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을 수도 있을 텐데 왜 그럴까요? 부대 생활 내내 자기가 주체가 되어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시키는 대로 해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죠.


자율성은 선택의 자유에서 뿌리를 내리고 성장해 나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선택의 자유를 주고 있나요?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무엇이든 대신해주려고 안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주어지지 않으면 자율성은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아이들은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수동적인 자세로 살게 됩니다. 열정과 도전 대신 안전과 포기를 선택하는 셈이죠.


많은 것을 돌봐주고, 좋은 결정을 내려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 부모는 아이의 삶의 전 영역에 개입하게 됩니다. 그게 사랑이고,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아이들은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으로 자라납니다.


아이들의 현재 나이를 감안하면, 뭔가를 잘하는 때가 아닙니다. 성취를 보이고, 미래 목표를 확실하게 잡을 때도 아닙니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탐색과 방황의 시기이며 가능성에 도전하는 존재입니다. 다양한 활동을 시도해 보고 어떤 느낌인지 경험하고 탐험하는 시기인 것이죠.


저는 아이들에게 알아서 해라라고 대응하는 편이고, 반대로 아내는 적극적으로 모든지 대신해 주려는 편입니다. 제 눈에는 왜 그렇게까지 무슨 시종처럼 해주려는지 이해가 안 갈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것을 당연스레 여긴 아이들은 더 당당하게 이것저것을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악순환이죠.


아이들의 자율성을 위해서라도 그들이 직접 선택하고 추진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이 승낙해 주고 허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신해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게 더 좋을 것이라는 판단은 내가 내린 것이지 아이들이 결정한 것이 아니니까요.


오늘의 질문: 여러분은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하셨나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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