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는 분노가 일상의 기본값처럼 자리 잡은 듯합니다. 층간 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 갈등, 도로 위 보복운전, 온라인 커뮤니티의 날 선 댓글 전쟁, 지하철에서의 사소한 시비 등 분노는 늘 우리 곁에 잠재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 전반에 흐르는 깊은 좌절감과 불안을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왜 이렇게 화가 많은 사회가 되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 있죠. 그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얽혀 있다고 봅니다.
심화된 상대적 박탈감이 분노의 주요 원인이 아닐까요? 경제 성장의 속도가 둔화된 시대에 살면서도, 높은 성공의 기준과 기대치는 여전합니다. 부동산 가격 급등, 고용 불안정, 교육 격차 등은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잉태하죠.
태어나 평생을 아파트에서 살아온 어린이가 이제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해야 합니다. 아파트가 아닌 주거 형태는 루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파트가 없는 남자와는 결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파트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죠.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은 작은 불이익조차 불공정하게 느끼게 만듭니다. 이는 곧 개인의 분노로 이어져 사회를 향한 불만으로 표출됩니다. 예컨대, 공정성이 결여된 채용 과정이나 부동산 시장의 불균형을 바라보며 좌절하는 청년들의 분노는 단순한 실패의 감정을 넘어섭니다.
사회 전반의 불신이 분노를 키웁니다. 정치, 언론, 제도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면서, 사람들은 사소한 불이익이나 무시를 ‘나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로 받아들입니다.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 개인은 자신의 불만을 표출할 건강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이 분노는 결국 파괴적인 형태로 폭발하게 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둘러싼 갈등이나 의료 파업에 대한 격렬한 찬반 논쟁은 불신이 개인 간의 갈등을 어떻게 증폭시키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의료 파업이 이제야 마무리되고 있지만 정말 봉합된 것일까요?
조급함이 일상을 지배하는 문화도 분노를 부추깁니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시간과 싸우는 삶 속에서, 작은 지연조차 쉽게 화를 폭발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배달 지연, 신호 대기, 심지어 엘리베이터가 늦게 오는 것까지도 인내심을 잃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인내심이 부족한 환경은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잊게 만들고, 이는 다시 분노를 낳는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오늘 당신 앞에 끼어든 그 차를 생각하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거기에 끼어들고 나서 감사하다는 깜빡이도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x 같은?
이러한 분노는 사회 곳곳에서 파괴적인 결과를 낳고 있죠. 최근 몇 년 사이 증가한 ‘묻지 마 범죄’는 분노가 무고한 타인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표출된 비극적인 사례입니다. 도대체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대상을 공격하는 심리는 무엇일까요?
정치적 대립은 극단적인 형태를 띠며, 온라인상에서는 익명성을 방패 삼아 혐오와 조롱을 쏟아내는 ‘댓글 전쟁’이 일상화되었습니다. 자극적인 욕설과 분노를 쏟아내는 유튜브 채널이 인기를 얻고, 복수를 내세운 콘텐츠가 대중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합니다.
990원 소금빵이 최근에 엄청난 갈등을 초래했죠. 경제유튜버 슈카의 ETF 베이커리 팝업 스토어의 빵은 빵플레이션의 시대에 소비자들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빵가게 자영업자들의 극심한 비판을 받기도 했죠. 절대 그 가격으로 만들 수 없다고요. 더 싸게 파는 것조차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에너지를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아닐까요? 사회적으로는 불안을 완화할 수 있는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개인적으로는 분노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분노를 초래하는 상대방이 정말 급한 무슨 일이 있겠지. 가족이 지금 죽느냐 마느냐의 상황일지도 몰라. 이렇게 마음을 다듬습니다. 그냥 내 기분대로 화를 내는 것에는 단 일의 장점도 없으니까요.
분노의 상당 부분은 ‘내가 무시당했다’는 감정에서 비롯되는 거 같습니다. 누군가 내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나의 감정을 존중해 준다면, 분노는 훨씬 쉽게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다만, 화가 나는 그 시점에 누군가에게 이해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스스로 이건 내가 무시당한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몰상식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분노 다스리기가 쉽죠.
분노가 만연하다는 것은 그만큼 억울함과 불신, 그리고 불안이 크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분노를 억제하려 하기보다, 그 근본 원인을 직시하고 이를 변화와 성장의 에너지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스스로에게 평화를 선물하고 싶다고 간절하게 원하면 실제로 효과가 있습니다. 내가 이 정도의 일로 분노 조절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야.라고 자신을 설득하는 겁니다. 나는 더욱 큰 마음과 아름다운 성정을 지닌 사람이야.라고 계속 스스의 현명한 태도를 칭찬하는 겁니다.
그렇게 할수록 당신은 그런 사람이 될 겁니다. 믿어 의심치 않아요.
오늘의 질문: 당신은 오늘의 분노를 어떻게 분쇄하였나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