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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책에서 햄버거까지

by 김영무
amirali-mirhashemian-jh5XyK4Rr3Y-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 amirali mirhashemian


33년 전 9월이 생각나는 아침이었습니다. 그 시기가 33년이나 되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년도를 세지 않고 네이버 날짜계산기를 두드려 33년이 흘렀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도 나이 들어 귀차니즘이 발동한 까닭일까요?


무더운 시기가 지나고, 어. 이것이 가을바람인가? 싶은 확연히 차이나는 온도의 바람을 느낄 때 대학 신입생의 낙천적이고 초긍정적이었던 90년대의 어느 가을이 기억납니다.


출퇴근 길이 아니라 산책 그 자체로에 의미를 두고 길을 걸어본 적이 언제인가요? 아이들과의 놀이를 위한 나들이가 아닌, 내가 고요히 자연을 바라보며 걸어본 적이 언제인가요?


서울은 공원이 지극히 부족한 도시 중에 하나라고 하죠. 하지만 굳이 산길이나 숲길을 걷지 않아도 골목길을 걸어가며 주변을 둘러보는 묘미가 있습니다. 저 집은 대문이 참 낡았네. 저 집은 빨래가 잘 널려있네. 저 집은 좁은 마당에도 저렇게나 큰 나무를 잘도 가꾸었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한 것도 너무나 오랜만입니다. 아이들에게는 모두 사줬지만 나는 평생 비싸서 못써본 에어팟. 맨날 저는 그냥 이어폰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맨날 정정시켜 줍니다. 에어팟이라고.


저는 그냥 3만 원짜리 무선 이어폰으로 만족하는데 막귀라서 그런 걸까요? 유선이 아니라 줄이 걸리적거리지 않기만 해도 너무나 만족스러운데 뭐 그리 30만 원짜리 에어팟을 사야만 한다고 우겨대는지 솔직히 이해가 되진 않습니다.


저번주에 처음으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음식을 먹어봤습니다. 아니, 지난 51년 동안 이걸 한 번도 안 해봤다고? 어쩌다 그렇게 된 거지? 혼밥을 지겹도록 많이 먹었는데도 늘 뭔가를 읽으면서 밥을 먹었기에 음악을 들으며 식사를 한 것은 정말 최초입니다.


그런데 왜 안 그랬는지 알겠어요. 정말 할만하지 않아요. 우걱거리며 씹는 소리가 음악을 완전히 망치네요. 이래서 내가 음악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뭔가 먹지 않은 것인가? 귀를 이어폰이 막으니까 씹는 소리가 정말 아찔해요.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일주일 동안 참고 참았던 햄버거를 먹는 날. 나이 51살씩이나 되어 그게 뭐냐고요? 글쎄요.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국민학교 시절부터 햄버거를 좋아했습니다. 당시에는 비싸서 자주 못 먹었지만, 이젠 일반 식당 요리보다 싼데 못 먹을 이유가 없죠.


맥도널드와 버거킹의 메뉴를 열심히 비교분석해 봅니다. 맘스터치나 롯데리아는 왜 고려대상이 아니냐고요? 그야, 프렌치프라이가 너무 부실하잖아요? 거기에 유학시절 자주 먹던 그 맛이 아니라 그렇기도 하고요. 인 앤 아웃이 한국에도 있으면 좋겠지만…


수제 버거 몇 번 먹어보긴 했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지는 않았어요. 이것도 맛알못이라 그런지? 딱히 더 비싸면서도 맛이 차이가 없는 수제버거를 먹을 바에는 더블쿼터파운더나 더블와퍼를 먹는 게 더 기분이 좋습니다. 아, 산책에서 시작해서 햄버거로 끝나는 오늘 오전이로군요.


오늘의 질문: 오늘 점심은 무엇으로 즐기실 예정이신가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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