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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축하해 본 적이 언제인가요?

by 김영무
clay-banks-POzx_amnWJw-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 Clay Banks


나 자신을 칭찬해 본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자축하는 이벤트를 열어본 적이 언제인지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 스스로에게 잘했어! 마구마구 칭찬해! 쌍따봉을 날린 적이 있기는 할까요? 아니면 평생 칭찬받을 일은 한 적이 없었던 걸까요?


왜 우리는 더 이상 축하하지 않을까요? 진정한 친구는 힘들 때뿐만 아니라 승리했을 때도 함께 축하해 준다고 합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대부분의 성취 지향적인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끔찍한 친구입니다. 저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 좋은 친구였지만, 제 자신에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축하가 곧 나태함이라고 생각하도록 조련되어 왔습니다. 우리의 승리를 인정하는 것이 우리를 나약하고, 오만하거나, '진짜' 일에서 멀어지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은밀히 비난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일 수도 있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책 '아웃라이어'에서 직업윤리 문화를 벼농사 유산에서 찾습니다. 논에서 더 열심히 일할수록 더 큰 보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벼논이 많은 한국의 근로 문화는 어쩌면 고래로부터 내려오는 무조건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라는 문화적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스스로를 축하할 일은 별로 없었겠죠.


가장 큰 이유는 아직 축하할 때가 아니라는 심리적인 부담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직 쉴 때가 아니야. 눈 돌리지 마. 뭐 세상을 구했나? 세상의 가난을 없앴나? 그런 거 아니잖아? 아직 더 배고프게 행동해!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식의 최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무한히 기다리는 방식으로는 세상의 99.9%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항상 상승하고, 이기고 승리해야만 최후의 승리까지 이어진다는 상상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건데 말이죠.


중간에 한 번이라도, 그리고 삶의 어느 시점에서든 불가피하게 찾아올 첫 번째 고꾸라짐에 인생이 무너집니다. 번아웃이 왔을 때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큰 상을 받았을 때 과연 이후에 이만큼의 업적을 다시 세울 수 있을지 두려워하게 됩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칭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친구, 바로 나 자신이 진심으로 나를 축하해 주었나요? 그 사람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타인의 박수는 공허합니다.


자기 자신을 칭찬하다 너무 많이 해서 자만심에 빠진 사람을 본 적은 없는 거 같은데요. 성취 지향적인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만심에 별로 빠지지 않는 거 같아요. 앞으로 할 일을 따져볼 시간도 부족한데 무슨.


자기 자신에게 작은 축하의 메시지를 더 자주 보낼 필요가 있습니다. 집안 청소를 끝낸 당신에게 칭찬을! 오늘도 운동하기에 체크를 한 당신에게 영광을! 오늘치 글쓰기 목표를 달성한 당신에게 축복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더 좋은 친구가 되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의 질문: 오늘 스스로에게 날린 칭찬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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