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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투성이 대한민국

by 김영무
marco-bianchetti-Ne2ANNXGW6M-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 Marco Bianchetti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받은 상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곱씹으면서 분노합니다. 그러나 타인에게 준 상처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죠.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니가 지나치게 예민한 거 아니냐고. 넌 너무 집요한 성격이라고. 별 걸 다 기억한다고.


세상에는 상처받은 사람만 있고, 상처 준 사람이 없는 것은 이처럼 사람들이 받은 상처만 가슴에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아있는 사회인 셈이죠.


가장이 회사가 어려워져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회사가 가해자인가요? 그 사장이 부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습니다. 그럼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를 한 노동자들이 가해자인가요? 가슴에 남은 상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명한 구분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적극적으로 상처받기로 마음먹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바로 상대방과의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에게 탓을 돌리는 사람이 그러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계약서를 쓰지는 않습니다. 다만 암묵적으로 어떤 가정과 기대에 동의했다고 생각하며 친밀감을 쌓습니다. 친해지면 대부분 상대방에게 어려울 때 도와주고, 힘들 때 위로해 주고, 내 편이 되어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내가 힘들어할 때 상대방은 대수롭지 않게 그럴 수도 있지 한마디로 위로를 그친다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 내 편이 되어 주기는커녕 반발하며 적대적으로 돌아선다면? 관계에 대한 기대와 가정이 깨지는 거죠.


그러면 나는 상처받았다라고 생각하고 피해자가 되는 것으로 끝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상대에게 내 기대를 이야기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거칠 수도 있습니다. 협상 끝에 다시 관계가 좋아질 수도 있지만 틀어진다고 해도 누구나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며 다른 생각을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상처받기를 선택한 사람과 극복하기를 선택한 사람이 나뉘는 것입니다.


상처를 받는 것은 보통 대인관계에서 발생합니다. 아무도 키우던 고양이에게 상처받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 어쩌면 고양이 집사님들은 일부 있을 수도? 다만, 상황에 따라 사회나 집단이 대상이 될 수도 있죠. 죽어라 일해도 승진 기회가 없다고 느껴질 때. 나 말고 모두 아파트를 소유한 것 같다고 생각할 때.


그럼 세상이 나를 상대로 사기를 친 건가요? 사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면서 절대 실패하는 일이 없을 거라는 보증서를 받지 않았습니다. 어떤 병도 걸리지 않을 거라는 확인증 같은 것도 없이 태어났습니다. 부자 집안에서 태어나기로 약속하고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마치 내가 원래는 그런 모든 혜택을 받기로 했는데 사기를 당한 것 마냥 피해자가 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게 바로 상처받기를 선택한 사람입니다. 세상은 그런 약속을 분명해준 적이 없는데 말이죠.


살아가며 실패 한번 없이 성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가는 이 어려운 길은 나만 걸어가는 것도 아니고, 성공이라는 어떤 성취를 얻기 위해서는 누구나 충분한 대가와 노력을 지불해야 합니다.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세상은 빛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상처받기를 선택하지 마세요. 상처 따윈 날 막을 수 없다는 자세를 견지하세요. 사람마다 성격과 마인드가 모두 다를 수밖에 없으니 나와 당연히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면 저 사람은 왜? 이런 생각이 사그라듭니다.


오늘의 질문: 오늘 어떤 상처받기를 거부하였나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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