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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7800원짜리 사치

by 김영무
홍콩반점 탕수육.jpg 홍콩반점 탕수육


지난주 금요일 밤. 막내딸의 밥을 차려주고 먹이고 치우고. 막내는 열심히 뽀로로 TV를 감상하고 저는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픕니다. 하지만 평상시 점심 한 끼만 먹고 아침과 저녁은 건너뛰는 식습관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었기 때문에 참았습니다.


이런 식습관으로 80kg에서 72kg으로 줄이고 유지하는 중이니 어쩔 수 없죠.


그런데 문득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3박 4일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들과 오래간만에 데이트를 한다고 어찌나 좋아하던지. 아들은 그만큼 신나 하진 않은 것 같던데. 거기서 맛집 투어를 돌고 있겠지? 좋겠네.


갑자기 뭔가 먹고 싶어 졌습니다. 홀린 듯이 배달앱을 켰습니다. 저는 가성비를 항상 추구하는 아저씨라서 솔직히 음식 배달앱을 통해 구매하는 음식의 종류가 많지 않습니다. 짜장면, 짬뽕, 알밥, 치킨 정도? 뭐를 시켜도 솔직히 나를 위해 시킨다기보다는 애들이 원하는 메뉴를 시키고 곁다리로 제 메뉴 하나 추가하는 수준이죠.


1인분을 시킨 지가 언제 적인지 기억나지도 않습니다.


중식 메뉴는 항상 홍콩반점에서 주문합니다. 가격도 좋고, 맛도 나쁘지 않습니다. 뭐 감탄할만한 맛집은 아니지만 평타 이상은 늘 보장해 주는 맛이죠. 이젠 기본 짜장이나 짬뽕을 시키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비싼 메뉴가 확실히 맛이 좋거든요. 고기 짬뽕이 개인적으로 최애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맛집 투어를 하고 있을 텐데 나 짬뽕만 시켜야 해?


솔직히 저는 평생 탕수육을 시켜본 적이 없습니다. 음. 그게 말이 되냐고요? 물론 여러 번 탕수육을 시켰죠. 하지만 제 의도로 시킨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먹고 싶어서 주문한 것뿐입니다. 실제로 도착해도 아이들이 나는 찍먹이니, 나는 부먹이니 아웅다웅하는 사이에 다 사라집니다. 한두 조각 먹으면 다행이죠. 원래 중식은 짜장과 짬뽕만 먹으면 충분해! 스스로 속삭입니다.


눈앞에 17800원짜리 탕수육 한 박스라는 아이콘이 어른거립니다. 음. 저녁 안 먹기로 했잖아! 벌써 8시가 넘었어! 살쪄! 소심한 갈등을 해봅니다. 그런데 맛집 투어를 가는 식구들도 있는데 나 이거 한번 시켜보면 안 돼? 갈등은 증폭됩니다.


눈 딱 감고 클릭하고 결재합니다. 이거 왜 이렇게 결재가 금방 돼? 아니, 주문을 취소할까? 아는 사람은 아시겠지만 홍콩반점은 초고속으로 요리가 시작됩니다. 취소 가능한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지나있습니다.


배달도 순식간입니다. 사실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지역에 홍콩반점이 있습니다. 진짜 조리부터 배달까지 평균 20분이면 도착합니다. 드디어 눈앞에 탕수육이 도착했습니다. 작은 알뜰 탕수육 아닙니다. 본판 한 박스입니다.


이거 진짜 나 혼자 먹을 수 있어? 아니, 나 혼자 먹어도 돼? 다시 갈등이 시작됩니다. 제게는 너무 큰 사치(?)입니다. 평생 처음입니다. 탕수육 한판을 눈앞에 두고 혼자 앉아있기. 그런데…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잖아? 남겨둬야 애들은 내일이나 올 텐데?


드디어 먹기 시작합니다. 아주 쫄깃하네요! 이거 튀김옷을 찹쌀로 했나? 왜 이렇게 쫄깃하지? 저는 개인적으로 찍먹파입니다. 부어서 먹는 사람들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접시 다 어지럽히며 먹는 게 뭐가 좋아요? 골고루 소스를 묻히기에도 찍어서 먹는 게 최곱니다. 다툴 사람 없어서 좋습니다.


따뜻한 상태의 탕수육을 먹는 것도 오랜만입니다. 아이들이 먹고 남은 몇 조각을 먹을 때가 되면 이미 탕수육은 전부 식어 있거든요. 마지막 조각을 먹을 때까지 따뜻합니다. 행복은 따듯함에 있는 거 같습니다.


전부 먹었습니다. 이걸 다 먹을 수 있나 싶었는데 딱 한 조각 잘라서 막내에게 양보하고 나머지는 전부 먹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이거 몸무게가 1kg은 늘었을 거 같은데. 후회하면서도 든든하고 즐겁습니다. 아, 내일 아침에 더부룩할 텐데. 아, 잔해는 깔끔하게 치워야지.


확실히 소소한 행복은 찾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스스로를 위한 소소한 행복을 한번 찾아보세요. 가족들 몰래 혼자만 맛있는 거 주문해 보는 것도 가끔은 해볼 만합니다.


오늘의 질문: 오늘 당신의 소소한 행복을 위한 선택은 무엇일까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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