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조건에 맞춰서

by 케빈은마흔여덟


12월 15일

자본주의와 장보기

소비 습관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품질과 내 취향이 우선이었는데, 주머니가 얇아지니 이제는 가격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은 참 세다. 물건의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넘어, 사람의 성향과 자존감까지 결정해 버린다.

다 떨어진 땅콩버터를 사러 코스트코에 갔다. 아내와 카톡으로 꼭 사야 할 품목을 엄격하게 정했다. 정수 필터, 바나나, 컵라면 24봉.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슬쩍 끼워 넣은 알리오올리오 소스 하나가 오늘 소비의 유일한 사치였다. 합리적인 소비였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계산대에 섰지만, 카트에 담긴 몇 안 되는 물건들이 내놓은 숫자는 무려 10만 원이었다. 숫자는 냉정해도 너무 냉정하다.


12월 16일

바뀌지 않는 성정

부친은 다정한 표현에 인색한 분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그분의 입술에서 들어본 기억이 없다. 자신감이라는 건 내면에서 길어 올리는 것이지만, 때로는 타인의 인정이라는 마중물이 있어야 힘을 얻는다. 하지만 부친은 칭찬에도 박했다. 늘 "남들이 흉본다"라는 말로 가족을 향한 지지를 대신하곤 하셨다. 집에서조차 온전한 인정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가 어떻게 단단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까. 나의 이 소심한 성격은 어쩌면 그 결핍의 그림자일지도 모르겠다.


퇴직 후 비용 절감을 위해 스스로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은 틀렸다. 내가 깎고 있으니까. 이제 스포츠머리 정도는 제법 봐줄 만하게 깎는 숙련공이 되었다. 완벽하진 않아도 남들에게 이상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준은 이미 지났다.

본가에서 누님의 부업을 돕고 있을 때, 곁에 앉은 부친이 나를 빤히 보며 물으셨다. "머리 집에서 깎았냐?" 그렇다는 대답에 돌아온 말은 역시나 "이상하다"였다. 칭찬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남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돈 주고 깎으라는 그 투박한 걱정을 부친은 늘 그렇게 표현하신다. 억울한 마음에 거울을 다시 확인했지만 머리는 멀쩡했다. 치매가 와도 그 고약한 성정은 쉽게 변하지 않나 보다. 이제 와서 무슨 기대.. 할 수 없다.

그런데 부친은 잊고 있는 모양이다. '아버지, 당신의 머리도 제가 깎아드렸거든요'


12월 17일

고사리손에 배운 속도

부친이 신경안정제를 끊은 지 한 달째. 오늘 본 부친은 한결 나아 보이셨다. 지난주만 해도 한쪽 다리를 끌며 위태롭게 걷더니, 이제는 느리지만 스스로 발을 떼신다. 안색도 밝아지고 종종 웃음도 지으시니 아픈 사람 같지는 않다. 증상이 호전된 건 아니겠지만, 이 정도만 유지되어도 좋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금천구청역 계단 아래에서 한 아이를 보았다. 분홍색 롱패딩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얼굴만 빼꼼 내민 아이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만히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느릿느릿 계단을 내려오고 계셨다. 할아버지의 한 손에 들린 자그마한 가방을 보니, 아마도 어린이집 하원 길인 모양이었다.


마지막 계단까지 내려온 할아버지는 가방을 든 손을 외투 주머니에 찔러 넣고, 비어있던 다른 한 손으로 아이의 손을 포개 잡았다. 차가운 난간을 붙잡고 내려오느라 꽁꽁 얼어붙었을 할아버지의 시린 손을, 아이의 작은 고사리손이 폭 감싸 안으며 온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아이는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할아버지의 시린 손을 녹여주며, 이내 할아버지의 느린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이는 벌써 알고 있었던 걸까. 사랑이란 상대의 속도에 나의 걸음을 맞추는 일이라는 것을.



12월 22일

숫자인가 신인가

"2시까지 올 수 있어?" 아내의 문자였다.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가자는 제안이었다. 올해 안에 글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 연말의 뒤숭숭함에 막혀 진도가 나가지 않던 차라, 흔쾌히 도서관을 나섰다.


쇼핑몰에 들어서니 한가로이 거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도 평범한 이웃일 텐데, 직장 없는 백수라는 자격지심 때문인지 괜히 위축되었다. 교보문고 럭키박스 코너에는 상술 가득한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8만 원 상당'이라는 문구에 마음이 흔들렸다. 만 원짜리를 고르려는 아내 옆에서 나는 자꾸만 이만 원짜리에 눈길이 갔다. 기왕이면 큰 것이 아이를 더 기쁘게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혹은 줄어든 내 존재감을 돈으로라도 보충하고 싶은 보상심리였을까. 단호하게 만 원짜리를 집어 드는 아내의 결단력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하고 비참한 마음이 교차했다.


코스트코에서도 우리는 철저히 목록에 있는 계란, 바나나, 식빵, 우유만 담았다. 예전처럼 카트 가득 사고 싶은 것을 고민 없이 담던 시절이 그리웠다. 누가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했나. 보이지 않는 신은 내게 풍요를 약속하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숫자인 돈은 당장의 욕망을 현실로 바꿔준다. 어쩌면 이 시대의 진짜 신은 숫자의 형상을 한 돈이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금세 다시 냉정을 찾았다.

내 옆에서 가계의 속도를 조절하며 중심을 잡아주는 아내가 있다. 덕분에 형편과 속도에 맞춰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고 있다. 풍요롭지 못한 주머니 사정에도 내가 무너지지 않은 건, 어쩌면 우리 부부가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맞춰가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신이 돈이라면, 사랑은 그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서로의 속도'가 아닌가 싶다.


딱 맞는 삶이 어디 있을까. 언제 풍요롭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나. 잘 벌 때도 주머니 사정이 좋다고 생각하지 못했으니, 생각해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체감은 비슷하다. 구질구질하게 한탄할 일이 아니다. 엊그제 계단아래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에게서 배운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형편과 속도에 맞춰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면 된다.


사는 건 그렇게 주어진 조건에 맞춰서 나아가는 여행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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