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3일
벌써 일 년이... 연말이 다가오면 기분이 묘해진다. 이뤄놓은 것 하나 없이 또 한 해가 저물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라앉는다. 무엇보다 힘든 건 앞날의 전망도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오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멈춰 서 있을 수만은 없다. 무거운 아침잠을 떨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 옆 공원은 짧아진 해와 짙게 드리운 구름 탓에 평소보다 더 어둡게 느껴졌다. 잎을 다 떨궈낸 앙상한 가지로 밤새 추위를 견뎌냈을 공원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가로등이 군데군데 온기를 비추고 있었다. 출근길을 서두르는 발걸음과 땀 흘리며 조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유유히 걸으며 떠오르는 해를 맞이했다. 얼마 전까지 붉게 타오르던 잎들은 세월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떨어졌고, 부지런한 공무원들은 그새를 못 참고 가을의 흔적을 말끔히 치워버렸다. 사색을 방해하는 뉴스 소리와 너무 깨끗해진 공원길을 걸으며, 어수선한 아쉬움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커피를 마시며 커뮤니티를 훑다 눈에 띄는 글을 발견했다. 제목은 “당신의 2026년은?”. 내년의 운세를 미리 엿볼 수 있을 것 같은 호기심에 이끌려 클릭했다. 1,200개 정도의 알파벳이 무작위로 나열된 이미지였다. 그 아래에는 “가장 먼저 보이는 세 단어가 당신의 2026년을 관통하는 주제가 될 것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노안 때문에 안경을 이마 위로 치켜올리고 찬찬히 글자들을 훑었다.
Magic, Blessing, Success
운세를 믿고 안 믿고는 본인의 선택이다. 전체 그림에 어떤 단어들이 숨어 있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내게 참 시기적절하게 찾아와 준 단어들이었다. 신을 믿지는 않지만, 우주에는 분명 어떤 질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과가 떨어지고 힘이 작용하면 물체가 움직이듯, 사소하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뜬금없는 바람일지 모르나, 마음이 불안한 지금 우연히 마주친 단어 덕에 용기를 얻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긍정적인 신호다. 그로 인해 다시 나아갈 힘을 얻었다면 운세는 제 역할을 다한 셈이다. 믿음의 여부와 결과의 향방은 결국 나의 몫이다. 내년에 나는 잘될 것이다. 마법 같은 축복 속에서 성공할 것이다. 그런 기분 좋은 희망으로 오늘 하루를 채워본다.
12월 24일
‘친구들끼리 이미 다 이야기했을 텐데, 아직도 선물을 기다리다니.’ 짐작은 가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아이의 동심을 깨뜨릴 수는 없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의 뜻을 지켜주기로 했다. 아이가 잠든 사이 조심스레 포장을 하고, 7년째 재활용 중인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준비한 선물을 놓아두었다.
그런데 트리 옆에 웬 과자가 놓여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에이스 크래커’다. 산타에게 주는 뇌물인지, 아빠 먹으라고 둔 간식인지 알 수가 없다. 영악한 녀석, 이용당하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지만 뭐 어떤가. 딸아이가 설레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면, 하루 정도 아빠가 이용당해 준들 어떠랴. 어른이 되면 좀처럼 느끼기 힘든, 아이들만의 순수한 행복이 아닌가. 이 크래커는 내가 맛있게 먹고, 내일 아이가 물으면 모른 척 발뺌해야겠다. 선물을 받을 아이가 더 설렐지, 기뻐할 아이를 지켜볼 내가 더 설레는 건지 알 수 없는 크리스마스이브다.
12월 26일
불행은 꼭 한꺼번에 닥쳐온다더니... 부친의 허리는 나아지는 듯 보였으나, 그건 그저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이었나 보다. 며칠 전부터 부쩍 통증을 호소하셨고, 결국 정밀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 어떤 진단이 나올지,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몰라 떨리는 마음으로 모친과 동행했다.
“골절인 것 같은데요.” 지난달 신장 문제로 찍었던 복부 CT와 오늘의 엑스레이를 대조해 보던 의사가 척추뼈 하나가 이상하다며 소견을 내놓았다. 입원해서 검사하고 필요하면 수술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당장 입원을 하면 간병은 누가 하며, 비용은 또 어떻게 감당할지 현실적인 부담이 앞섰다. 뇌경색에 치매 진단을 받았을 때 ‘이 정도면 다행이다’ 싶었는데, 끝이 아니었다. 막내인 내가 혼자 결정하기엔 벅찬 일이라 가족들과 상의 끝에 우선 진통제만 처방받고, 다음 주 MRI 결과를 본 뒤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골절이 아니라는 판정이 나오기만을, 다시 한번 희망 섞인 기대로 기다려 본다.
12월 27일
올해도 이제 단 나흘뿐이다. 연말이 성큼 곁에 와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무기력함에 젖어 토요일 온종일 집에서 빈둥대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러닝을 나섰다. 어제의 한기가 채 가시지 않은 공기를 뚫고, 신해철의 음악을 이정표 삼아 안양천을 달렸다.
문득 러닝의 묘미가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뛰는 동안 엉킨 생각들이 정리되고 호흡이 안정될 즈음이면, 매일 달리던 코스에서도 낯선 새로움이 발견되곤 한다. 계절과 날씨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지금 내 머릿속을 무엇이 지배하고 있는가’에 따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익숙한 풍경도 다르게 다가온다.
말라버린 잎을 차마 버리지 못한 나무와 반쪽뿐인 달이 꼭 지금의 내 모습 같았다. 하지만 계속 달리다 보면 어느새 숨이 트이듯, 지금의 이 을씨년스러운 풍경 너머에도 분명 다른 계절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12월 29일
부친의 허리 상태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MRI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본가에 가니 부친의 상태가 예사롭지 않았다. 호흡은 불안정했고 움직일 때마다 앓는 소리를 내셨다. 예약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허리가 불편하신지 자꾸만 누우려 하셨고, 채근할 때마다 “어딜 가냐”며 되물으셨다. “허리 아프셔서 병원 가는 거잖아요”라는 말을 다섯 번쯤 반복한 뒤에야 겨우 현관문을 나설 수 있었다.
가까스로 시간에 맞춰 병원에 도착했고, 미리 수납을 해둔 덕에 곧장 촬영에 들어갔다. 부친이 검사실로 들어가신 사이 대기실에서 모친과 이야기를 나누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엊그제 새벽, 부친이 자다 말고 맨발에 슬리퍼만 신은 채 밖으로 나가셨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잠든 사이 벌어진 일이라 아무도 몰랐는데, 행인이 이상하게 여겨 신고한 덕분에 다행히 큰 사고 없이 귀가하셨다고 한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틀이나 지난 오늘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 TV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우리 집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어디까지 더 내려가야 끝이 보일까. 부친이 당신만의 알 수 없는 세상에 갇혀 지내신 지도 어느덧 3년. 부친의 삶도 걱정이지만, 그 곁을 온전히 감내해야 하는 모친이 너무 안쓰러웠다. “정 안 되면 요양원도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조심스레 묻는 내 말에 모친은 “하는 데까지는 해보고...”라며 끝내 말끝을 흐리셨다. 모친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제대로 전달되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매정한 자식이라 서운해하셨을지도. 하지만 당장 내 눈앞에서 고생하시는 모친이 더 걱정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심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친의 허리는 당장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척추뼈 골절과 협착증이 섞여 있어 일단 약물 치료와 보조기로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 후로도 의사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덧붙였지만, 모친에게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 탓에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처방 약의 부작용과 다음 진료에 관한 안내였을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부친의 상태는 호전되기보다 악화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만큼 간호하는 모친의 하루도 엉망이 되어버렸다. 같은 말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고, 아이를 돌보듯 일상을 마주하며 신체적인 수발까지 온전히 모친의 몫이 되었다. 이 복합적인 상황을 내가 도맡아 해결할 수도 없고, 경제적인 형편 탓에 병원비조차 시원하게 내드리지 못하는 현실에 화가 치민다. 몸과 마음이 지쳐가면서도 ‘이것이 최선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또 자꾸만 작아진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하지 않던가. 지나친 낙관주의도 경계해야겠지만, 끝없는 비관주의 역시 사람을 무기력의 늪에 빠뜨린다. 누군가는 기대와 희망을 그저 덧없는 망상이라 치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이 계속되는 한, 마음속에 작은 희망 하나쯤은 품고 있어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나에게 기대란 더 나아지려는 의지이고, 희망이란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내딛는 용기다. 비록 부친의 기억은 조금씩 흐릿해지고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거라 믿고 싶다. 부친의 통증이 어제보다 덜하기를, 고단한 모친의 얼굴에 찰나의 미소라도 번지기를 기대해 본다. 마법 같은 축복이 우리 가족 곁에 머물기를 간절히 희망하며, 한 해의 끝자락을 조용히 넘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