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일
돈이 좋다. 날은 자꾸 추워지는데 보일러가 영 시원찮아서 전기 온풍기를 하나 장만했다. 선풍기형을 사려다 조금 더 투자해 골랐는데, 디자인도 예쁘고 성능도 제법이다. 다만 온열 기기는 전기요금이 무섭다기에 얼마나 자주 틀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관리비와 전기요금을 비교해 가며 합리적으로 가동해야 할 텐데, 문제는 고지서가 항상 한 달 뒤에 나온다는 점이다. 1월의 사용량을 2월 말에나 알 수 있다니, 그때 가서 가동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도 코미디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은 좀 따뜻하고 싶다. 등 뒤에서 전해오는 온기를 받으며 아이와 보드게임을 한바탕 해치웠다. 행복은 이런 소박한 온기 속에 있는 게 아닐까.
1월 4일
부친의 이발을 해드렸다. 지난번엔 장비가 부실해 영 마음에 안 들게 깎아드린 게 내심 걸렸는데, 비로소 장비는 갖춰졌나 했더니 이번엔 부친의 허리가 문제다. 앉아도 서도 불편해하시니 오늘은 '시간'이 관관이었다. 화장실 세면대 앞에 간이의자를 놓고 부친을 앉혀드렸다. 보자기가 마땅치 않아 김장용 비닐에 구멍을 뚫어 씌워드리고는 서둘러 전동 이발기를 들었다.
언제 이렇게 머리카락이 빠지신 걸까. 이제 흰 머리칼보다 하얀 두피가 더 많이 비친다. 아프기 전까지만 해도 머릿속이 빽빽하고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던 분이었다. 어딜 가면 한참 어린 사람이 반말을 한다며 정색하시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너무 어려 보이는 당신의 모습이 싫다고 하셨다. 이제 아버지는 흰머리가 가득해졌고 머리숱도 몰라보게 줄었다. 치매를 앓고 난 뒤로는 늘 잠에 취한 듯 눈을 반쯤 감고 계셔서 인상마저 흐릿하다. 더는 젊어 보이지 않는, 당신이 예전에 말씀하시던 그 모습이 마침내 되어버리셨다.
내 머리와 수염을 깎을 때보다 서너 배는 더 신경을 썼지만, 시간에 쫓겨 15분 만에 이발과 면도를 끝냈다. 이어지는 샤워 시간. 허리 통증 때문에 의자에 앉으신 채로 가까스로 탈의를 도왔다. 배만 볼록 나오고 팔다리는 가늘어진 몸, 복부 여기저기엔 인슐린 주사 자국이 당뇨와의 오랜 전쟁을 증명하는 상처처럼 남아 있었다. 자꾸만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는 몸이 넘어질까 봐 한 손으로는 샤워기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버지의 몸을 지탱했다. 물 온도는 왜 이리 눈치가 없는지, 차가웠다 뜨거웠다를 반복한다. “뜨거, 뜨거”와 “차거, 차거” 사이를 오가는 소동 끝에 간신히 샤워를 마쳤다.
거실로 나오니 기다리던 모친이 반기신다. 수고한 아들에겐 잘했다는 칭찬을, 고생한 남편에겐 멀끔해졌다는 격려를 건네신다. 정작 아버지는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면 멋쩍어서였을까. 그저 허리가 아프다며 빨리 눕기만을 원하셨다. 상태가 나빠진 건가 싶어 모친께 여쭈니, 처음 다쳤을 때보다는 나아진 것 같다고 하신다. 다만 부친의 눈에 모친이 보이면 응석을 부리듯 자꾸 잡아달라고 하시는 것 같다고. 꽃단장이 피곤하셨는지, 아버지는 이내 편안한 얼굴로 단잠에 드셨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아버지의 기억을 조심스레 깨워보았다. 아버지의 대화는 늘 딸아이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해, 오늘 날짜와 당신의 나이를 묻고는 곧 할아버지 이야기로 이어지는 루틴이 있다. “내가 벌써 여든넷이나 됐어?”로 시작된 이야기가 이어지면 티타임은 한참 동안 옛날로 돌아간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이장 이야기, 초등학교 시절, 군대 이야기까지. 레퍼토리는 비슷해도 매번 조금씩 덧붙여지는 이야기들 덕분에 집안은 잠시 화기애애해진다. 치매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열띠게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딱 지금만 같아도 좋겠다’는 욕심도 생긴다.
마침 메모장에 관한 글을 쓰던 중이었다. 기억의 여신에서 유래한 '메모'는 인간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 아버지의 기억을 예전처럼 돌릴 수는 없겠지만, 내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그 기억을 잠시나마 살려낼 수 있다면 이 소소한 시간도 더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나 역시 아버지의 살아있는 메모장인 셈이다.
1월 6일
요새는 병원 다니는 게 일이다.
“오늘 일찍 올 수 있어?” 아내의 다급한 연락. 얼마 전부터 아이의 눈가 피부가 붉게 올라오기에 물었더니, 아이는 아무렇지 않다며 내 관심을 피했었다. 친구들이 한 마디씩 보태자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는지 엄마에게 말한 모양이다. 급히 찾아간 피부과에서 의사는 진물이 날 때까지 부모가 무얼 했냐며 아내를 나무랐고, 아내는 순식간에 무관심한 부모가 된 것 같아 섭섭했다며 병원에서의 마음을 전했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의 건강만큼은 완벽히 챙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관심이 못마땅한 듯 매번 괜찮다는 말로 벽을 친다. 아빠의 이 진심을 아이는 언제쯤 알아줄까. 전문가들의 조언은 넘쳐나지만 막상 겪어보면 아이는 이론대로 자라주지 않는다. 다시금 부모님께 죄송해지는 시간이다.
1월 8일
글을 잘 쓰려면 어휘력을 위해서라도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많은 선배 작가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그래야 적재적소에 알맞은 표현을 골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멀리했던 세월이 너무 길어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그래서 나만의 루틴을 하나 만들었다. 글을 쓰기 직전에 아무 책이나 한 권 골라 급하게라도 읽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책 속의 단어들이 머릿속을 떠돌다 내가 글을 쓸 때 불현듯 나타나 적절한 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일종의 편법이지만, 부족한 어휘력을 채우기 위해 당분간은 이 방식을 고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1월 9일
써두었던 글의 투고를 시작했다. 세상에 출판사가 이렇게나 많은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먼저 길을 간 선배들은 300곳 정도는 거절당할 각오를 하라고 말한다. 역시 겨울은 춥고, 세상에는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1월 12일
아버지의 진료 과목이 자꾸만 늘어난다. 신경외과, 당뇨, 신장내과를 거쳐 이제는 정형외과까지. 잦은 병원 방문 덕분에 이제 나는 병원 내부 평면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월요일 아침부터 순식간에 휠체어를 대여하고 수납창구로 향했다. 대기자가 62명이나 된다. 30분 넘게 기다려 수납하고, 10분간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야 의사를 만났다. “골절 부위는 다행히 무너지지 않았네요.” 진료는 고작 5분. 다시 수납 대기표를 뽑으니 이번엔 68명이 기다리고 있다. 15분의 진료와 검사를 위해 3시간을 길 위와 대기실에서 보내야 하다니, 환자는 철저한 ‘을’ 임을 실감했다.
모친이 화장실에 다녀오시더니 마스크를 벗고 계셨다. 갑자기 코피가 쏟아져 마스크를 버렸다고 하신다. 겨울철 건조한 날씨 탓이겠거니 하면서도, 병간호로 점점 쇠약해지는 어머니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불안함이 엄습한다.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홀로 이 짐을 지고 계신 어머니의 건강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어릴 적 겨울은 즐거움과 낭만이 가득한 계절이었다. 뒷산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던 썰매, 외갓집 아랫목에서 나누어 먹던 고구마,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온 세상을 아름답게만 만들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나니 나도 여느 어른들처럼 겨울이 불편해졌다. 미끄러운 도로가 걱정이고, 잊을 만하면 도지는 허리병이 고통스러우며, 예전보다 훨씬 견디기 힘든 추위가 야속하다. 올해는 유독 마음에도 한기가 더해지니 그 어느 겨울보다 힘든 계절처럼 느껴진다. 새로 산 온풍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훈풍처럼, 내 마음에도 온기 가득한 볕이 구석구석 들어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