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고장 난 지퍼

by 케빈은마흔여덟

1월 15일

어머니의 고장 난 지퍼


어린 시절 겨울은 아랫목 고구마처럼 달콤하고 하얀 낭만이었는데

어른이 된 겨울은 미끄러운 길 위에서 시린 허리를 부여잡는 야속한 계절이다


병원 대기실 순서를 기다리다 마스크 너머 툭, 터져 나온 어머니의 코피

병간호에 쇠약해진 당신의 안색을 보며 마음속 예보는 또 한 번 아프게 빗나간다


칼바람 몰아치는 횡단보도 앞 주름진 손으로 지퍼를 만지다 이내 포기하는 당신

듬성듬성 채워진 똑딱이 단추는 못난 자식만큼이나

당신 가슴에 파고드는 한기를 막아내기 역부족이다


병원비 얼마냐며 건네신 봉투

생활비 걱정에 돌려드리지 못하고 넙죽 받았다

비루한 내 주머니는 유난히 시리고

부모라는 이름의 사랑은 왜 이리 빚만 커지는지


늦은 밤 울리다 만 부재중 전화 한 통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오만가지 상념에 헤매다

잘못 눌렀다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린 겨울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여전히 가늘게 떨린다


새로 산 온풍기조차 소용없는 내 마음 한 구석

당신의 고장 난 지퍼가 자꾸만 한기를 더했다

당신의 겨울은 부디 춥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간절한 훈풍이 당신 마음에 꼭 닿기를 바랍니다.

월요일 연재
이전 18화겨울, 마음에도 온풍기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