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일)
저녁 10시가 넘어서 부친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른 가족들의 전화라면 부친에게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앞서지만, 부친에게서 직접 온 전화는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번 새벽 외출 사건 이후로, 내 마음은 늘 불안이라는 경계 위에 서 있다. '혹시 또 가족 모르게 외출하신 건가?' 덜컥 겁이 났다. 급히 전화를 받아 들어보니 그와는 다른 걱정이 다가왔다.
“빌라가 분양이 끝났단다. 사기 치는 사람이 많아서 그냥 믿고 있으면 안 된다. 내가 가서 확인해 봐야 하니까 아침에 너라도 집에 와서 나랑 같이 가보자.”
상상도 지식과 기억이 있어야 만들어진다. 평생을 건축업에 매진했던 부친은 선망 증상 역시 부동산에 관한 것들이다. 점심 먹으러 갔을 때는 누가 집에 가압류를 했다며 걱정을 한가득 안고 계셨다. 아니라고 말해도 도통 믿지 않으시다가, 결국 등기부등본까지 확인해 드린 뒤에야 안심하셨다. 저녁 내내 분양과 관련한 이야기를 모친에게 하더니 끝내 나한테 전화해서 또 하소연을 하신다. 사실 얼마 전부터 없는 이야기를 긴가민가하며 이야기한 적이 자주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통화는 좀 느낌이 달랐다. 너무도 진짜처럼 믿고 계셨다. 사실을 말하듯 관련한 이야기를 막힘없이 하셨다.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에 서 계신 부친을 보며, 곁을 지키는 모친의 고단함이 무겁게 다가온다.
1월 19일
안 해도 되는 일을 억지로 하는 건 곤욕이다. 퇴직까지 한 마당에 겨울철 춥고 깜깜한 새벽에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되지만, 나는 출근하듯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인생이 더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에게만큼은 아직 아빠가 건재함을 알려주고 싶은 가장의 책임감 때문이다. 아직 회사에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 아이에게 경제적 안정감을 심어주고, 하기 싫은 일도 안 하고 살 수는 없다는 걸 은연중에 깨우쳐 주고 싶은 욕심. 내 개인적인 욕망은 가끔 지켜지지 못할 때가 있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새벽 추위에 이불을 덮고만 있을 수가 없다. 이 간절함은 나를 다시 세상 밖으로 밀어낸다. 내 아버지가 그랬듯, 나도 가장이니까.
오늘부터 하안도서관에서 지난해 독립출판지원 도서 전시를 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누가 관심이나 있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내 안의 작가라는 간절함은 또 달랐다. 어떻게 전시되는지, 누군가 내 책을 펼쳐는 보는지 너무 궁금했다. 도서관 1층 전시관 입구 세 번째에 내 책이 보였다. 그런데 옆에 앉아 있던 분이 나를 보며 물었다. “저 혹시 작가분 아니세요?” 나도 모르게 너무 노골적으로 표시를 냈던 모양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내 책으로 직진했으니 의심하기 충분했다. “아 네네” 뒤늦게 창피함이 몰려와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회사를 다닐 때만 해도 번아웃 속에서도 집안 눈치는 보지 않았는데, 이제는 거꾸로 집에서는 눈치를 보고 밖에서는 눈치 없이 다니는 건가 싶다.
1월 20일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기억을 바꾸라는 과학박사의 말이 떠오른다. 기억을 바꾼다는 것은 곧 다양한 경험을 하라는 말일 것이다. 사람은 결국 자기 경험을 통해 얻어진 지식이라는 경계 안에서 살아간다.
내 삶의 기억을 망라하는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입사, 결혼, 아이의 탄생…. 분명 좋았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지만, 막상 '최고'라는 단어 앞에 선뜻 꼽을 수 있는 일은 드물다. 환희는 더 큰 기쁨에 밀려나기도 하고, 그 영광 뒤엔 고된 시간이 마주하기도 한다. 최악의 시간 또한 묘하다. 당시엔 죽을 것만 같던 순간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무뎌지고, 다른 경험들이 덧칠해지며 그저 견뎌낸 추억이 된다. 그래서인지 '진짜 최악'은 12곳의 출판사에 정성껏 투고한 글이 연이어 퇴짜를 맞고, 카드값에 허덕이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삶은 매분 매초 새로운 순간을 데이터로 추가한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다가도, 극단적인 고통을 마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순간조차 겹겹이 쌓이고 흩어지는 사이, 더 이상 최고나 최악이 아닌 보통의 기억으로 자리 잡게 된다. 삶을 멀리서 조망하면, 그 굴곡진 기복은 그저 인생이라는 입체적인 지도를 만드는 울퉁불퉁한 등고선일 뿐이다. 어른이 되면 삶이 무료해지는 것은, 이 모든 등락의 경계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월 21일
"함께하지 못해 미안해"
고백하고 차이면 이런 기분일까.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도 아니고 '함못미'라니...
12개의 출판사에 투고를 했는데, 벌써 4곳에서 정중한 거절의 메일을 받았다. 초보 작가라 그런 걸까, 아니면 내 글이 아직 부족해서일까. 정확한 이유라도 알면 개선할 텐데 그것도 아니고, 아쉽게도 다른 더 좋은 출판사에서 성공하길 기원한다는 메시지뿐이다. 생전 처음 겪는 분야라 코치해 줄 사람 하나 없는 이 막막한 경계 위에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에필로그까지 글을 마쳤는데, 책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왕 발을 디딘 것이니 계속 나아갈 수밖에...
그래도 된다는 확신이 생기도록 성과가 눈에 보이면 좋겠다.
1월 25일(일)
필요하면 다 하게 되어 있다. 이메일 함은 언제나 읽지 않은 광고 메일로 수백 개씩 쌓여 있었지만, 글을 투고하고 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대부분 이메일로 투고해야 하기에, 나는 수년 만에 메일함을 정리했다. 이렇게까지 메일함을 자주 들여다본 적이 있었나 싶다. 수시로 들어가 회신이 있는지 확인하고 수신 확인 버튼을 누르게 된다. 학창 시절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던 그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기다림의 시간 또한 내 삶의 기록이자 책임이 되어가고 있다.
1월 26일
평소 먹방을 즐기지 않지만 유독 한 유튜버의 채널은 구독하고 있다. 굴곡 많은 삶을 꿋꿋이 이겨내고 선행을 이어가는 모습 때문이다. 최근 그 유튜버가 13살 팬의 요청에 응답해 어린이 병원에 5천만 원을 기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돈이 있다면 저렇게 살고 싶다는 동경을 품게 만드는 행보였다.
인생은 운이 절반이다. 특히 '어느 시대에 태어나느냐'가 재능을 꽃피우는 핵심이다. 쯔양 같은 유튜버도 먹을 것이 없던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저 배고픈 이였겠지만, 지금 시대이기에 그 재능이 빛날 수 있었다. 드라마 평론가 정덕현 작가도 본인의 악필 트라우마를 고백하며, 컴퓨터가 없던 원고지 시대였다면 자신은 절대 작가가 되지 못했을 거라 말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수없이 문장을 뒤섞고 수정해야 하는 초보 작가에게 원고지만 주어졌다면, 글쓰기는 꿈이 아니라 곤욕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AI의 출현은 출판 업계의 또 다른 변곡점이다. 앞으로 글 쓰는 영역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창의성도 의미가 없어지는 시대라고 하니 괜히 글 쓰는 일을 선택했나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 있겠나. 흘러 왔으니 일단은 가 보는 수밖에. 그래도 글에 풍기는 인간의 냄새는 내가 할 수 있는 고유 영역이지 않을까. 언젠가는 창작의 마지노선마저 AI에게 내어줘야 할지 모르나, 인간의 체온이 살아있는 글이라면 나는 계속 나아가도 되지 않을까.
이상하게도 위태위태한 순간들의 연속처럼, 삶은 늘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같다. 언제나 마주하는 그 찰나에는 가장 큰 기쁨이고 가장 큰 고통이지만, 지나고 보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 것에 왜 그리 온 신경을 쏟았나' 싶은 순간들이었다.
최근 느낀 이 모든 굴곡 또한 결국 가장이라는 책임감과 작가라는 간절함이 빚어낸 인생의 등고선이지 싶다. 높낮이는 요동치지만, 그 울퉁불퉁한 선들이 모여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입체적인 지도를 그려내고 있음을 느낀다. 안개 자욱한 경계 위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걸음들이, 다가올 나의 문장들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