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과 소속 사이
나는 MBTI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너도나도 자신의 MBTI가 뭐라서 어떻다더라 하는 말들이 온 천지를 도배했다. 커뮤니티마다 관련 글이 올라오고, 사람들 대화도 MBTI로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알아야 대화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재미 삼아 시도해 봤다. 결과는 INFJ. 내향적이고, 감각적이며, 감성과 판단을 중시하는 유형이라고 했다.
비슷하게 예전엔 혈액형으로 사람을 구분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기준은 너무 엉성했다. 코에 붙이면 코걸이, 귀에 붙이면 귀걸이었다. 한참 얘기를 나누다 보면
"너 혹시 O형이냐?", "아니"
"그럼 AB형이지?", "아니"
같은 대화가 오갔다. 네 가지 혈액형 중 둘을 틀리고 나면 그건 통계가 아니라 찍기 수준이었다. 질문 하나도 없이, 'B형은 CEO가 많더라' 같은 '카더라'에 근거한 방식은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웃고 넘겼다.
MBTI도 맹신은 금물이다. 유튜브 영상에서 예수그리스도가 INFJ지만 동시에 히틀러도 같다고 한다. 결과만 갖고 너는 어떤 유형의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 건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MBTI는 혈액형보다는 성향을 조금은 설명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수십 개의 질문을 통해 나온 결과는 의외로 나를 잘 설명해 주었다. 100% 일치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 부분 공감할 수 있었고, 나를 돌아보게 했다. 통계의 힘을 다시 느꼈다.
개성이 중요한 시대다. 사회는 남들과 다름을 강조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자신의 고유한 특징을 찾고자 한다. 그런데 의문이 들었다. 인간은 원래 무리에 속하고자 하는 본능을 지닌 존재다.
역사적으로 소외당하는 것은 곧 생존의 위협이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집단과의 연결을 추구한다. 다르다는 이유로 마녀사냥을 당하거나 따돌림당했던 역사도 있었다. 그렇다면 왜 이제는 개성을 이토록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걸까?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든 기준은 사람이 만든 것들이다. 전통, 규칙, 규범은 시대에 따라 변하며,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가 되어왔다. 그 기준은 한편으로는 '우리는 하나다'라는 소속감을 증명하는 도구였고, 동시에 각자의 역할과 우열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다. 입시제도는 시험으로 우열을 가리는 우리가 만든 제도인 것이다.
인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가지는 권리다. 국가마다 다르긴 하지만 법도 우리가 하면 안 되는 것을 정한 것이고, 사규는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다. 이런 규범들을 따르는 것은 단지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공동체의 일원임을 입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물건을 살 때 돈을 내거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우리가 만든 규칙을 지키는 것이고, 적어도 그 규칙이 적용되는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전처럼 '나도 같아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규범을 지킨다는 것만으로 '같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개성은 왜 필요한가?
내가 어릴 때만 해도 IQ가 130이면 ‘머리가 좋다’는 평을 받았다. 암기를 잘하거나 수학을 잘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때론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만 해도 인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런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한때는 우월함을 증명하는 도구였지만, 지금은 그 기준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긴 어려워졌다.
개성은 이런 기준들에 던지는 도전장이다.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말하는 용기, 정해진 틀 밖에서 자신의 길을 찾고자 하는 시도다. 그래서 개성이란 단순히 특이함이 아니라, 기존의 우열 구분 기준을 재검토하게 하는 하나의 목소리다.
채용 문화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한때는 대학, 성적, 이력서가 거의 모든 걸 결정했다. 좋은 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일도 흔했다. 하지만 지금은 개성 있는 이력이 눈길을 끌고, 창의적인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면접에서 뜬금없는 질문이 주어지기도 한다.
"당신이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작아져서 믹서기에 들어갔는데 1분 뒤 작동하면 어떻게 할 건가?"
이런 질문이 화제가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논리력, 위기 대처 능력, 시각의 다양성이 평가 대상이 된 것이다. 시대는 변화했고, 기준도 변했다. '머리가 좋다'는 말은 이제 창의력, 순발력, 잔머리까지 아우르는 표현이 되었다.
결국 개성은, 공동체 안에서 나의 쓸모를 증명하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규범을 지킨다는 것은 “나는 당신들과 다르지 않아요”라는 메시지다. 개성을 표현한다는 것은 “나는 이 안에서 이런 방식으로 더 나은 기여를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이다. 같음으로 소속되고, 다름으로 경쟁력을 증명하는 시대. 이제 그런 균형 위에 서 있다.
MBTI로 사람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나도 MBTI를 알기 전엔 감정보다 논리를 더 따르는 줄 알았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나이를 먹으며 그렇게 된 건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를 믿느냐 마느냐는 각자의 선택이다. MBTI라는 것도 결국 나의 성향을 찾고자 함과 동시에 같은 성향의 무리를 찾기 위함이기도 하다.
개성을 드러내고자 하면서도 여전히 소속을 원한다.
만약 그 결과가 내가 생각한 나와 비슷하다면, 그리고 그 안에서 내 취약점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보완해 더 나은 내가 될 수도 있다. 더 경쟁력 있는 구성원이 될 수도 있다.
내가 INFJ라는 결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남을 잘 챙기지만 자신을 돌보지 못해 번아웃에 취약하다’는 설명이었다. 일, 가족, 친구, 사람은 다 좋지만 정작 나를 챙기지 못했다. 감정적으로 공감하고, 이성적으로 조언할 수 있는 성격은 조직 내에서도 필요한 요소였다. 나 자신만 잘 돌볼 수 있었다면 번아웃도 조금 비껴갈 수 있지 않았을까. 소용없는 넋두리도 한번 해봤다.
개성을 중시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소속을 원하는 본능도 어쩔 수 없다. 그 안에서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고 싶고, 공동체의 일원임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각 악기가 독창성을 지니되 오케스트라의 하모니를 이루듯,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조화로운 개성’이다.
작가로서의 경쟁력으로 공감 가는 나만의 색채를 찾아가는 중이다
#고군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