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면

250407

by 케비놀로지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사실은 내가 나 자신을 미워할 권리를 아주 단호하게 박탈시킨다.

그 존재는 마치 묵직한 펜촉처럼 내 삶의 흰 여백 위에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이름을 새긴다.


나는 그들이 떠올릴 수 있는 누군가이고, 누군가의 기도 속에 머무는 사람이며,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향해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존재는 절대 가볍지 않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은 아무리 거칠고 덜그럭거리는 날들 속에서도 내가 끝끝내 살아내야 할 이유가 된다.


예전의 나는 창작을 무기 삼아 생존해 왔다. ‘살기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말하고, 연주했다. 숨을 쉬기 위해 악보 위에 음을 얹고, 이 세상에 나를 붙잡기 위해 단어를 꿰맸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창작의 이유가 ‘살기 위해’에서 ‘살아가며’로 넘어오고 있다. 마치 거친 숨을 몰아쉬며 수영하던 이가 어느새 가벼운 호흡으로 물 위에 떠 있는 느낌이랄까. 나도 그렇게 조금은 단단해지고 있다.


이제는 예술가답게 살려고 몸부림치기보다는, 사람답게 살자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그 다짐 안에 진짜 예술이, 오래가는 예술이 자라난다. 누가 봐도 멋진 뮤지션처럼 굴기보다, 세탁기 돌리고 밥 지어먹고, 목 늘어난 티셔츠는 집안 안에서 파자마 대용으로나 입는 삶. 그렇게 평범한 삶 속에 숨겨진 웃음과 눈물에서 나는 진짜 멜로디를 발견하고 싶다.


나는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된다. 내가 책임지지 못했던 수많은 감정과 관계, 선택들에 대해. 그 책임이란 결국 ‘나답게 살아내는 것’ 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거나 누군가의 틀에 맞추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작은 진심을 붙잡고 그것대로 살아내는 것.


그렇다고 너무 고상한 척 하긴 싫다. 나는 여전히 푸념하고, 가끔은 불평하고, 정리하기 귀찮은 것들은 옷장 깊숙이 짱박아버리기도 한다. 내가 사랑받는 이유가 결코 완벽해서가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오히려 더 감사하게 된다.


오늘도 예술과 삶의 경계를 깊게 고민하다가, 깔롱 부려보자고 거울 앞에 섰는데, 염병, 저지에는 김치국물이 튀어있고, 머리는 붕 떠있고 양 볼에는 허옇게 각질이 일어나 있더라. 현실의 나는 그렇게 감동적인 예술가의 자아와, 지극히 초라한 인간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둘 다 나인데 뭐 어때.


결국 오늘도, 나는 먹고 싸고 웃고, 그러면서 또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이게 진짜 사람답게, 예술가답게 살아가는 법 아닐까. 김치국물 묻은 바지 입고 짜증 나게 철학적인척 하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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