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코로나 시국에 독일로 떠나야만 했던 이유

'비합리적 신념'에 휘감겨 있던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by 케빈

2021년 9월 14일 월요일 저녁, 약 반년만에 심리상담 선생님을 다시 찾아뵙게 되었다. 첫 상담에서는 '어떻게 살 수 있는가?'라는 분초를 다루는 심폐소생술적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재활치료에 가까운 문제였다. 혼돈의 중앙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부터 고등교육에 대한 관심, 의료기기 사업, 의학공부, 정신건강 그리고 마이리얼트립 채용 지원까지 수많은 것들이 삶이라는 수면 위에 떠오르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혔다. 마치 폭우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여린 나뭇가지처럼.


근처 복불고기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지금껏 어떻게 지내왔는지, 요즘 감정과 사고의 상태는 어떤지, 신체건강은 어떤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등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대화 중후반부에 최근 강렬하게 찾아온 가족관계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서 질문을 하게 되었다. "가족이란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가치인지, 어떤 관계인지 잘 모르겠어요. 독립하는 게 그토록 중요하다면 그저 각자도생해 서로가 갈 길을 알아서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요? 이전에는 이 같은 부분에서 섭섭함을 느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어떤 감정도 들지 않네요. 이것이 내 앞에 놓인 운명이라면 덤덤히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 같아요. 마음의 문이 굳게 닫혀버린 것처럼요"


그러자 선생님이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다. "지난번에 아버지와 이야기 나누면서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니 굉장히 신념적이고 스스로 자수성가한 인생을 살아오셨더라고요. 그리고 이 같은 자신의 성장방식을 많이 강요했을 거예요. 이제 그 부분에서 상현씨는 많이 지쳤던 거고요. 특히나 성향적 측면에서 아버지는 굉장히 원칙적이고 신념적인 반면에 상현씨는 감성적이고 논리적인 것 같아요. 그 부분에서 끊임없이 마찰과 충돌이 빚어졌을 것이고요. 아까 마음의 문이 굳게 닫힌 것 같다고 했죠? 지금과 같은 관계에서 오는 분노와 좌절감이 계속해서 쌓이면 언젠가는 봇물 터지듯 터져,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큰 간극이 생길 수 있어요. 지금 그 직전까지 온 것 같아요".


이곳까지는 '아 그렇구나. 내가 힘든 게 그런 이유였구나'와 함께 약간의 울컥함이 치솟는 정도였다. 하지만 헤어지면서 선생님이 가볍게 건넨 문장 하나가 모든 걸 뒤흔들어 놓았다. "만약 아버지가 "상현아 네가 해보고 싶은걸 잘 찾아서 열심히 즐겁게 해 봐. 아버지가 뒤에서 든든하게 밀어줄게"라고 하셨으면 지금의 삶이 어땠을 것 같으세요?" 이 말 한마디를 듣는 순간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평생에 걸쳐 갈망했던 육성을 현실 세계에서 직접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이 누군가가 만들어낸 인공적 소리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폭풍처럼 다가오는 텅 빈 허무감 말이다.


선생님과 헤어지고 운전을 해서 집에 가던 중, 지난날의 삶이 한순간에 차르륵 흘러갔다. '지금껏 살아온 삶을 무엇이었는가?', '무엇을 위해 그토록 각박하고 치열하게 살았는가?', '어떻게 삶의 최우선 과제가 생존이 되었는가?' 그리고 아버지가 지금껏 남긴 크고 작은 상처들과 말들까지. 특히나 "절벽에서 살아온 사자들만 데리고 간다"라는 말이 뇌리를 관통했고 군대에서 조기 전역하게 되면 더 이상 아들로 생각하지 못한다는 문자가 심장을 찢어놓았다. 운전 중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대로 내가 밟을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액셀을 밟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삶을 이어나가도, 매끼를 삼각김밥을 먹어도 그곳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삶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무엇을 위해 그토록 많은 걸 나에게 보여주었는가?', '왜 굳이 나를 이런 통렬한 삶을 살도록 만들었는가?', '왜, 왜'. 이런 원망 섞인 비통한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더 이상 집에도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일단 뭐라도 챙겨야 했다. 바로 집을 떠나려 했지만 출근을 하고 그날의 일을 마무리했다. 너무 힘들었다. 그토록 어깨를 짓눌렀던 삶의 압박감, 아이 답지 않았던 아픈 아이, 혼자 슬퍼하고, 혼자 고민하고, 혼자 고군분투하면서 살아온 그 나날들.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던 것이 산산조각이 나서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나가 버렸을 때 느끼는 상실감, 이 드넓은 지구에서 나라는 인간이 마음 놓고 있을 공간이 없다는 슬픔, 군대에서 내 삶을 내 손으로 놓아 버렸을 때의 망연자실함. 이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덮쳐버렸고 나는 밑바닥을 쌓지 않고 그저 높이 올리기만 한 젠가처럼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 '비합리적 신념'에 휘감겨 있던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니, 살기 위해서는 벗어나야만 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진정으로 편안하게 휴식하고, 곰곰이 생각하고, 지나온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독일이었다. 그렇게 9월 26일 독일행 비행 편을 예약해 10월 10일 오전 1시 40분 카타르 항공을 통해 인천공항을 떠나 뮌헨에 도착 후 지금 뉘른베르크에 지내고 있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 친한 형과 만나선 나눈 대화가 참 인상적이었다. "이미 우리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굉장히 많은 흔적 남기고 있지만 그걸 인지하고 잘 가꾸는 사람은 드문 것 같아"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이곳 독일에서 지내면서 지난날 남겨놓은 표식들을 잘 긁어모아 유심히 관찰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선명하게 설정하고 싶다. 이전과 가장 다른 점은 설정 기준이다. 과거에는 그저 맹목적으로 성장과 성취 그리고 생존에 초점을 두었더라면 이제는 행복, 즐거움, 놀이에 삶의 방점을 찍고 싶다. 그 아무리 대단한 인류라 한들 찬란한 아침 하늘에 떠다니는 한 점 티끌에 불과한 삶인데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아등바등 살아가야 하는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좋아하는 것 하면서, 이 지구라는 행성의 여행을 최대한 재미나게 즐기면 그것이야말로 충만한 삶 아닌가? 오늘 이 삶이 끝날지, 내일 이 삶이 끝날지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 모두 한 줌의 재와 하얀 연기로 끝마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하루를 충실히 즐겨내야 하지 않을까?


코스모스적 관점과 현생인류적 관점을 함께 지닐 수 있기를.


여기가 우리의 보금자리고 바로 우리입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들어 보았을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삶을 영위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이, 우리가 확신하는 수 천 개의 종교와 이념, 경제 체제가,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가, 모든 영웅과 겁쟁이가, 모든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가, 모든 왕과 농부가, 사랑에 빠진 모든 젊은 연인들이,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가, 희망에 찬 모든 아이가, 모든 발명가와 탐험가가, 모든 스승과 부패한 정치가가, 모든 슈퍼 스타, 모든 위대한 지도자들이,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지구는 코스모스라는 거대한 극장의 아주 작은 무대입니다. 그 모든 장군과 황제들이 아주 잠시 동안 저 점의 일부분을 지배하려 한 탓에 흘렀던 수많은 피의 강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저 점의 한 영역의 주민들이 거의 분간할 수도 없는 다른 영역의 주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잔학 행위를 저지르는지를, 그들이 얼마나 자주 불화를 일으키고, 얼마나 간절히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하며, 얼마나 열렬히 서로를 증오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만용, 우리의 자만심, 우리가 우주 속의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에 대해, 저 희미하게 빛나는 점은 이의를 제기합니다.


우리 행성은 사방을 뒤덮은 어두운 우주 속의 외로운 하나의 알갱이입니다. 이 거대함 속에 묻힌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해 줄 이들이 다른 곳에서 찾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알려진 바로 지구는 생명을 품은 유일한 행성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종이 이주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다른 세계를 방문할 순 있지만, 정착은 아직 불가능합니다. 좋든 싫든, 현재로선 우리가 머물 곳은 지구뿐입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함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멀리서 찍힌 이 이미지만큼 인간의 자만이 어리석다는 걸 잘 보여 주는 건 없을 겁니다. 저 사진은 우리가 서로 친절하게 대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보금자리인 창백한 푸른 점을 소중히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백한 푸른 점-칼 세이건>에서


2021년 10월 15일 금요일 오후

청명한 가을 하늘이 얼굴을 내비친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한민국, ‘나치'와 다를 게 없다.